26.06.07 17:47최종 업데이트 26.06.0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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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아이답지' 않은 아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 어딘가 조금은 '이상한 아이들'을 들여다봅니다.[기자말]
아이는 생후 9개월에 첫 해외여행을 갔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해외여행은커녕 비행기조차 타본 적 없던 남편과 나는 아이와 함께 참 많이도 여행을 다녔다. 유년 시절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이.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해외여행을 하며 발리 한 달 살기를 하기도 했고, 팬데믹 기간에는 인적이 드문 캠핑장을 찾아 전국을 여행했다. 아이 덕분에 우리는 각 지역의 유적지, 박물관, 특산물을 속속들이 알게 됐다. 그래서일까. (나의 합리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는 역사와 지리와 음식에 관심이 많은 아이로 자라났다.

여행을 통해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경험'이었다. 삶은 결국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기회비용의 문제이다. 재테크로 아이에게 '똘똘한' 집 한 채는 못 물려줘도 아이가 낯선 곳, 새로운 곳을 여행하며 자신만의 취향과 사유를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러한 문화적 자본이 앞으로 아이가 뿌리를 뻗어나갈 수 있는 단단한 토양이 되리라 믿었다.


가끔은 내가 사회인이 돼서야 겨우 경험한 것들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누리는 아이가 부럽기도 했다. 비단 우리 아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저출생으로 인해 모든 아이가 '소황제'가 된 시대에, 요즘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많은 것을 누리며 자란다. 결핍이 없는 것이 결핍처럼 보일 정도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아이의 반 친구들과 나눠 먹을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간식을 사 왔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여서 아이의 책가방에는 친구들이 건네준 각 나라 간식이 하나둘 쌓여 갔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 지 몇 달 안 돼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왔을 때였다. 아이는 여느 때처럼 친구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챙겨 학교에 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아침에 가져간 선물이 그대로 들려 있었다. 그 이유를 듣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간식을 나눠주면 여행 못 갔다 온 친구들은 부러울 수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앞으로 선물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안 나눠주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어."

아차 싶었다. 내 아이의 경험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상대적 박탈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3월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만난 담임 선생님 모습이 생각났다. 어떤 아이도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생님은 숙제도 따로 내주지 않았는데, 집에서 숙제를 일일이 챙겨주기 어려운 가정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아이가 선물을 그대로 들고 돌아왔을 때의 부끄러움이 다시 떠오른 것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서였다.

남매의 남다른 여름방학

중학생 옥주와 초등학생 동주는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다.그린나래미디어

중학생 옥주(최정운)과 초등학생 동주(박승준)는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다. 재개발로 곧 철거가 진행될 동네에서 옥주와 동주 그리고 아빠, 세 식구가 작은 봉고차에 짐을 싣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허름한 반지하를 떠나 봉고를 타고 가면서 옥주는 아빠에게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할아버지한테 말한 거 맞지?"

할아버지에게 다 말씀드려 놓았다고 자신 있게 답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빠는 할아버지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으로 콩국수를 먹으면서야 방학 동안 여기서 지내도 괜찮은지 넌지시 묻는다.

이혼 후 아이 둘을 혼자 키우고 있는 아빠는 봉고차 트렁크에 '짝퉁' 나이키 운동화를 한가득 싣고 다니면서 판다. 한때는 사업을 위해 중국을 오가기도 했고, 지금은 중장비 운전 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는 아빠는 다정하고 넉살이 좋지만 어딘가 허술해 보인다.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한마디로 아빠는 무능력하다.

마냥 해맑아 보이는 동주와 달리, 사춘기인 옥주에게는 할아버지 집에서의 생활이 썩 편해 보이지 않는다. 옥주는 2층 방 한 칸에 모기장을 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 뒤 동주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옥주는 누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동생이 귀찮다. 누나에게 쫓겨난 동주는 까만 자개장이 놓인 좁은 방에서 할아버지와 아빠 사이에 몸을 누인다. 세 식구는 마치 원래부터 그 집의 일부였던 것처럼 할아버지 집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여기에 남편과의 불화로 고모까지 친정에 머물게 되면서 적막했던 집은 오랜만에 북적인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지루하거나 심심할 틈이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학이면 '학원 뺑뺑이'를 돌고, 학기 중에는 가기 어려웠던 여행을 떠나거나 다양한 체험 활동에 참여한다.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보력, 그리고 부모가 그동안 쌓아온 문화 자본은 아이가 누리는 경험의 폭과 질을 결정한다. 요즘 부모는 아이의 관심사와 발달단계에 맞게 경험을 설계하는 기획자가 되어야 하고, 이는 아이의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영화 속 남매의 여름방학은 사뭇 다르다. 옥주와 동주의 하루에는 여백이 많다. 영화 속에서 옥주는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할아버지 집을 탐색하거나 2층 창가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낸다. 동주는 아빠의 자격증 시험 퀴즈를 내주고 할아버지의 정원 텃밭 가꾸기를 돕기도 한다. 까무룩 낮잠이 들어 있는 동주에게 아빠는 "일어나, 학교 가야지"라면서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자신에게 했던 장난을 그대로 따라 한다. 할아버지의 집이라는 공간에서 아빠의 추억 위에 아이들의 추억이 하나둘 덧씌워진다.

아빠와 고모를 도와 살림을 하고, 아빠와 고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동생과 할아버지를 챙길 줄 아는 옥주는 의젓하고 속 깊은 아이다. 동시에 옥주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투명한 욕망을 품고 있다. 중학생 옥주가 이번 여름 방학에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쌍꺼풀 수술이다.

아빠가 돈을 못 빌려준다고 하자 옥주는 아빠가 판매하는 나이키 운동화를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내놓는다. 거래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구매자는 정품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말한다. 운동화를 몰래 빼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워진 옥주는 도망치지만 결국 경찰에 붙잡힌다. 그 과정에서 아빠가 짝퉁 운동화를 팔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행한 아이들'이라는 시선

영화는 아이들을 대상화하거나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그린나래미디어

아빠는 못 미덥고, 엄마와는 쉽게 만날 수 없고, 고모는 이혼 위기에 놓여 있고, 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다. 언제까지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영화를 보면서 옥주와 동주 남매가 처한 불안정한 상황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한편으로는 만약 이게 현실이라면 아이들이 저렇게까지 방학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방학 내내 공부도 하지 않고, 특별한 체험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도 괜찮은 걸까. 어느새 나는 '불행한 아이들'이라는 시선으로 옥주와 동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상아 교사의 <어느 교실의 멜랑콜리아>는 작은 교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에세이집이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출발선의 불평등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아이의 세상은 넓어지지만 경험의 기회는 결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교사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실패는 노력 부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는 저자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과 여건의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행이 숨 쉬듯 당연한 아이들이 있는 한편, 어디를 놀러 가본 경험 자체가 드문 아이들도 많다. 각종 체험시설에 많이 다녀서 오감이 살아있고 배경 지식이 풍부하게 차 있는 아이들이 있는 한편, 기껏해야 유튜브 속 화면이 전부인 아이들도 있다. 호기심이 스쳐 지나간 빈자리를 경험으로 꽉 채울 수 있는 아이들이 있는 한편, 경험의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아이들도 있다." -<어느 교실의 멜랑콜리아>

박상아 교사는 지금 시대에도 여행 한 번, 박물관 한 번, 동물원 한 번 못 가본 아이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경험의 동아줄은 학교일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이 목에 가시처럼 콱 하고 걸렸다. 어떤 아이들에게 학교는 단순히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박 교사가 "무한한 책임만 존재할 뿐 교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시대에 체험학습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한 명의 교사로서 가끔 학교의 경험이 전부였을 아이들을 떠올리면 서글퍼진다"라고 복잡한 심경을 전한 이유다.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집 어린이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가보지 못했다. 소풍의 추억이 없는 것이다. 2022년 속초로 체험학습을 갔던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수학여행과 같은 현장체험학습 운영이 급격하게 위축됐다.

물론 학교에서의 경험과는 다른 결이겠지만,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가지 못해도 어떤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부모 10명 중 6명(63.3%)은 역사 체험, 생태·자연 체험, 예체능 체험 등 사설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이용한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말하면 10명 중 4명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아마 옥주와 동주는 그 4명에 속했을 것이다.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을 때 아이들의 경험은 부모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고, 경험의 불평등 역시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경험은 계급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경험의 불평등 문제를 고민하는 것과 경험의 기회를 얻지 못한 아이들을 불행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나는 후자의 시선에 가까웠다. 아이들이 갖지 못한 것, 부족한 것에만 눈길이 갔다. 이러한 관점을 바꾸게 된 계기는 카메라가 아이들을 비추는 시선을 인식하면서부터였다.

영화 속 카메라는 여름방학 동안 남매가 맞닥뜨리는 사건들을 그저 담담하게 따라간다. 아이들을 대상화하거나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나,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안 불행해. 반지하방에서도 웃고 떠들고 다 해"라는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속 황동만의 대사처럼, 아이들은 결핍 속에서도 웃고 춤추고 울고 싸우며 조금씩 자라난다. 어쩌면 아이들을 결핍과 불행이라는 틀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때 묻은 어른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런 시선이 아이들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지도. 아이들의 삶을 평가하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남향으로 지어진 할아버지의 2층 양옥집에는 볕이 잘 든다. 영화에는 옥주가 햇살 아래 있거나, 옥주에게 햇살이 비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지금 옥주와 동주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이 만큼의 따스한 관심과 배려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hongmilmil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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