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푸리에스 유적지의 그리스 시대 액젓 발효조 내벽. 붉게 남아 있는 흔적은 오푸스 시그니눔(Opus Signinum) 방수 코팅층으로, 가룸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적용된 당시 최첨단 FOOD TECH의 산물이다. 이는 고대 지중해 발효산업의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평가된다.
이찬재
발효 탱크에서 자연의 섭리만큼이나 나의 감탄을 자아낸 것은, 고대인들이 귀한 자연의 산물을 담아내기 위해 고안한 첨단 산업 기술이었다. 그 핵심은 돌 발효 탱크 내벽을 감싸고 있는 놀라운 '방수 처리 기술'에 있었다.
지중해의 햇살과 시간을 듬뿍 머금고 호박색으로 익어가는 맑은 가룸은 당대 최고의 부가가치를 지닌 귀족들의 사치품이었다. 이 귀한 액체가 돌 틈이나 땅으로 스며들어 한 방울이라도 손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대인들은 수조 내벽에 정교한 방수 처리를 했다. 발효 탱크 유적의 단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붉은빛이 감도는 독특한 마감층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용 도료가 아니었다. 잘게 부순 도자기 조각과 붉은 토기 가루를 구운 석회, 모래, 흙과 정교한 비율로 혼합해 수조의 벽면과 바닥에 두껍고 꼼꼼하게 발라 올린 것이다. 물과 염분의 침투를 완벽히 차단하는 이 고대의 방수 코팅 기술을,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오푸스 시그니눔(Opus Signinum)'이라 부른다.
현대의 대형 식품 공장들이 시멘트 탱크의 누수를 막고 위생을 확보하기 위해 무독성 에폭시 수지나 특수 화학 코팅을 쓰는 것처럼, 이들은 무려 2500년 전에 이미 도자기 가루를 이용해 액체 발효 식품 전용의 산업용 표면 처리를 상용화하고 있었다.
이 붉은 방수층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당시 엠푸리에스에서의 가룸 생산이 어촌 마을 아낙네들의 가내 수공업 수준이 아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고도의 건축 공학과 화학적 이해, 그리고 대량 생산을 위한 산업 시스템이 총동원된 당대 최고의 푸드테크(Food-tech)였다.
흙을 불에 구워 만든 도자기를 다시 부수어 가루로 내고, 그것을 석회와 섞어 미생물이 살아 숨 쉬는 발효의 요람을 코팅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흙과 불, 그리고 그릇.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발효라는 위대한 화학적 변화를 통제하기 위해 늘 '도자기(세라믹)'라는 매개체를 곁에 두어 왔다.
이곳 엠푸리에스의 붉게 코팅된 돌 구덩이에서 시작된 발효의 시간은, 이제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위해 또 다른 거대한 도자기 속으로 옮겨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로마 제국의 혈관을 타고 흐르던 물류 패키지, '암포라(Amphora)'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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