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3 22:57최종 업데이트 26.06.0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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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가 끝난 3일 오후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개표사무원들이 투표용지를 분류하고 있다.연합뉴스

4년마다 돌아오는 지방선거는 시민들에게 의무감과 더불어 피로감을 유발해온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투표소를 나서는 발걸음이 예전만큼 가볍지 않아 보인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충만함보다, 잘 모르는 채로 찍고 나왔다는 찜찜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찜찜함은 선거가 반복될수록 시민들을 지치게 만든다.

이것은 시민의 무관심이나 정치 혐오로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된 실망의 축적에 가깝다.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공약들, 당선 이후 조용히 사라지는 약속들, 4년이 지나 다시 나타나 "이번엔 다르다"고 말하는 얼굴들... 시민들은 열심히 알아보고 찍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한다.

지방선거는 그 피로감이 특히 깊이 쌓이는 선거다.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교육감…. 투표용지를 몇 장씩 받아 들고 기표소에 들어서면 낯선 이름들이 빼곡하다. 성실한 유권자라면 며칠 전부터 공약을 찾아봤겠지만, 대부분은 그럴 시간도, 여유도, 솔직히 그럴 이유도 찾기 어렵다. 결국 당 색깔이나 기호, 혹은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이름에 의존한다. 그것이 시민의 잘못은 아니다. 시스템이 시민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 선출 과정은 교육적이었을까?

그중에서도 교육감 선거는 유독 낯설다. 정당 표시도 없고, 기호도 추첨이다. 누가 진보이고 누가 보수인지, 누가 단일 후보이고 누가 독자 출마인지, 알아내려면 별도의 공부가 필요하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는 무려 8명이 난립했다. 직선제 도입 이후 역대 최다다. 8명 중 자신이 찍은 후보의 이름을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시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이 혼란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서울 진보 진영에서는 단일화 경선을 진행했다. 여러 후보가 참여해 절차를 밟았고, 현직 정근식 교육감이 단일 후보로 선출됐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민주적이었다. 그런데 경선에서 패한 한만중 후보가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정근식 후보와 한만중 후보는 서로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둘 다 자신이 "민주진보 단일후보"라고 홍보물에 적었다. 진보 교육감을 표방한 홍제남 후보는 단일화 절차를 문제 삼아 처음부터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인천은 결이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민주진보 진영은 단일화 절차를 거쳐 임병구 후보를 단일 후보로 선정했다. 그런데 현직 도성훈 교육감은 처음부터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3선에 도전하는 현직의 조직력과 인지도를 앞세워 단일화 구도 바깥에서 독자 레이스를 펼쳤다. 결과적으로 진보 표는 두 후보로 나뉘었고, 단일화 절차를 성실하게 밟은 임병구 후보는 사실상 사표의 무게를 떠안았다. 경기도 역시 단일화 과정에서 잡음이 없지 않았다. 지역마다 양상은 달랐지만, 절차보다 생존을 앞세우는 후보들의 선택은 어디서나 엇비슷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승패를 떠나, 이 장면들이 불편했던 이유는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킬 것. 절차를 존중할 것. 경쟁에서 지더라도 결과에 승복할 것.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조율할 것. 민주주의란 그 지루하고 불편한 과정을 견디는 훈련이라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말해왔다.

그런데 바로 그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선거 과정에서 가장 먼저 그 원칙들을 내려놓았다. 단일화 결과에 불복하고, 상대를 고발하고, 현직 프리미엄을 방패 삼아 공동의 약속 바깥에 섰다. 낯이 뜨거웠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적당한 말을 찾기 어렵다.

교육감 직선제를 위협하는 건 누구일까?

이 불편함은 단순한 도덕적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적인 정치적 함의가 있다. 국회에서는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논의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광역단체장과 러닝메이트로 묶는 방식, 혹은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우리나라에 교육자치제도를 이식한 미국에서 50개 주 중 24%인 12개 주만 교육감을 직선으로 선출한다.* 우리와 같은 경로로 교육자치제도를 이식받은 일본은 1956년 교육장(우리나라의 교육감) 직선제를 전면 폐지했다.**

직선제를 지지하는 쪽은 "교육자치는 일반 행정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독립성을 보장받으려면, 직선제가 그 명분에 걸맞은 민주적 정당성을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 단일화 불참과 경선 불복으로 얼룩진 선거 과정은, 직선제 폐지론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논거를 공짜로 제공한 셈이다. 직선제를 지키고 싶다면, 직선제를 지지한다는 사람들부터 직선제답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문제는 교육감 선거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지방선거 전반에서 반복되는 공천 잡음, 단일화 파행, 선거 후 공약 이행률 논란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선출된 권력이 유권자보다 자신을 선출해 준 조직과 진영에 더 책임지는 구조. 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시민의 피로감은 선거가 거듭될수록 더 깊어질 수 있다.

대안은 정말 없는 것일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수록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불편함을 느끼는 시민이 늘어난다는 것은, 동시에 변화의 요구가 축적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가장 현실적인 단기 대안은 결선투표제 도입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두 후보가 결선을 치르는 방식으로, 후보 난립에 따른 사표 문제를 줄이고 단일화를 선거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후보들이 스스로 단일화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유권자가 두 차례에 걸쳐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된다.

조금 더 나아간 구상으로는 인구비례 지역선거인단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읍면동 단위에서 인구 비례로 선거인단을 뽑고, 그 선거인단이 교육감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얼굴을 알고 평판을 검증할 수 있는 가까운 인물을 선출하는 것이고, 선거인단은 임기 동안 지역 교육 현안을 교육감에게 전달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맡는다. 8명의 낯선 이름 앞에서 멍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나 대신 숙의하는 구조다.

더 근본적인 방향으로는 추첨 시민의회와의 결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일랜드는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의회가 낙태법처럼 민감한 의제를 숙의해 권고안을 만들고, 그 결과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식을 실험했다.*** 선출이 아니라 추첨으로 구성된 시민 패널이 교육 의제를 설정하고, 교육감은 그 의제를 집행한다. 능력주의로 무장한 엘리트가 아니라 인구·성·세대·계층을 고르게 반영한 평범한 시민들이 교육의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다. 선거에 지친 시민들에게 "뽑는 것" 말고도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조이기도 하다.

어느 방향이든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변화는 언제나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이번 선거에서 많은 시민들이 느꼈을 그 찜찜함—낯선 이름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찍고 나왔지만 그것이 내 의사를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느낌—이 바로 그 인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피로감은 무관심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신호일 수 있다.

교육감이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절차를 지키고, 결과에 승복하고, 시민과의 약속을 임기 내내 갱신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직선제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고,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지 않기 위한 핵심적인 전제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교육감만의 과제가 아니다. 지방선거가 주는 피로감은 시민이 정치를 멀리할수록, 정치는 시민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진다. 다음 지방선거 전에 자치분권 개헌, 행정통합 논의와 더불어 선거제도에 대한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숙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https://ballotpedia.org/Superintendent_of_Schools_(state_executive_office)
** 박명호·이익주(2015). 한국형 교육감 선임제도의 모색을 위한 시론. 정치·정보연구, 18(1), 221쪽.
*** 송호진·정은주(2026.4.4.). 아일랜드 보통시민 99명, 풀뿌리 개헌을 논하다. 한겨레신문.

6.3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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