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5 14:04최종 업데이트 26.06.0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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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한국 사회의 학교폭력 대응은 날이 갈수록 가해 학생에 대한 엄벌주의로 수렴하고 있다. 교육부의 '제5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도 가해 기록의 대입 반영과 보존 기간 연장 등 처벌의 가시적 효과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정부가 추진한 촉법소년 상한 연령의 하향 조정(만 14세→13세) 논의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소년 범죄 전반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교화보다 형벌권의 조기 행사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사건의 역사적 인과 관계와 구조적 원인을 소거한 채,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단죄와 분리만이 정의라고 믿는 탈맥락화된 엄벌주의의 함정에 빠진 결과다. 비극의 본질을 성찰하는 것이 아닌, 당장의 대중적 분노에 부응하는 행정편의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학교폭력

아래 표가 보여주듯 각종 학교폭력 주요 지표는 계속 악화되고 있어 이런 행정적 처방은 교실의 비극을 멈추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

학교폭력 주요 지표 추이 (2023~2026)교육부 보도자료 및 교육통계서비스

학교폭력 실태조사 피해응답률(좌)과 학교급별 실태조사 피해응답률(우). 2020년 코로나19이후 학교폭력 피해응답률이 증가했다.교육부 ‘제5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

학교폭력에 아무리 엄정하게 대응해도 피해 응답률은 계속 상승하고, 행정심판 청구 건수 역시 폭증하고 있다. 처벌 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폭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이 학교 담장을 넘어 법정으로 전이되는 사법적 전유(專有) 현상만 심화할 뿐이다.

학폭은 개별 인성 결함 넘어선 집단 역학의 산물

영화 <우아한 거짓말> 스틸컷CJ E&M

엄벌주의는 학교폭력이 개인의 폭력성 때문이라는 관점 위에 서 있다. 가해 학생을 격리하고 교정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단순히 개인의 인성 문제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이한 감독의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4)은 이 현상을 섬뜩할 정도로 차분하게 짚어냈다.

피해자 '천지'를 서서히 고립시킨 것이 가해자 '화연'의 거짓된 친절이라면, 그 잔인한 배제의 기류에 동조하거나 침묵한 주변 친구들의 암묵적 공모는 '화연'의 거짓보다 더 참혹하다. 영화 속 아이들이 집단 내 생존을 위해 누군가를 제물로 삼는 방식은, 성인 사회에서도 작동하는 미세한 권력관계가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떻게 한 개인의 영혼을 유린하고 공동체를 폐허로 만드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교폭력이 개별적인 인성 결함을 넘어 서열화된 교실 구조와 방관을 강요하는 집단 역학의 산물임을 임미나의 <학교폭력의 구조적 배경과 공동체 회복에 관한 연구>(2022)는 명징한 사회과학적 서사로 풀어낸다.

법정으로 간 학폭... 사법행정 보조자로 전락한 교사

처벌 중심의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를 하나의 '규율 공간'으로 축소하고, 이러한 관리 체계는 폭력의 근본 원인을 성찰하기보다 행정 효율성에 입각해 사안을 신속히 처리하는 데 몰두해왔다. 특히 갈등 해결의 주도권이 교육적 권위에서 사법적 판단으로 옮겨가게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갈등을 중재하는 교육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채, 법적 절차의 무오류성을 담보해야 하는 사법행정의 보조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학교 안의 갈등이 법정 투쟁으로 전환될수록, '우리 안의 파시즘'(임지현, 2000)이라는 일상적 권위주의가 해체되기는커녕 관료주의적 관리 체계라는 견고한 장막 뒤로 은신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폭력을 방관하고 서열을 정당화하는 교실의 뒤틀린 문화는 법리적 다툼 뒤에서 오히려 더 단단하게 굳어진다. 동시에 집단적 성찰의 기회 역시 박탈시킨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기저에 흐르는 구조적 배경을 직시하며, 그 해법을 다시 학교 안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가해 학생에게 면죄부를 주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만 돌리는 구조 결정론은 자칫 가해자를 익명화하며 그가 저지른 개별적 폭력의 무게와 의미를 희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폭력을 배양하는 토양은 사회 구조일지라도, 그 위에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폭력을 실행하기로 결단한 것은 결국 지극히 구체적인 가해자 개인이다. 학교폭력 해결은 가해자가 구조라는 익명성 뒤에 숨지 않도록, 보편적 인권이라는 거울 앞에 선 '단독자'(에마뉘엘 레비나스, 1961)로서 자신의 반문명적 행위를 직시하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학폭 문제 근본적 해결을 위한 세 가지 제도적 결단

한국 사회의 학교폭력 대응은 날이 갈수록 가해 학생에 대한 엄벌주의로 수렴하고 있다. 이는 비극의 본질을 성찰하는 것이 아닌, 당장의 대중적 분노에 부응하는 행정편의주의의 산물일 뿐이다.셔터스톡

해법은 응보적 정의를 넘어 가해자의 윤리적 주체성을 복원하는 '회복적 정의'(하워드 제어, 2015)에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제도적 결단을 제안한다.

첫째,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개정해, 징벌적 조치 이전에 '회복적 대화 모임' 수행을 법적 필수 절차로 명시해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고통을 직접 목격하고 사과하며, 자신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법적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사법적 장치를 통한 엄벌은 이 과정이 실패한 후에 진행해도 절대 늦지 않다.

둘째, 회복적 정의의 실현 과정에서 교사의 교육적 권한과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사법적 절차에 휘말릴 걱정 없이 교사가 현장에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교권을 회복시켜야 한다.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 복귀할 때 비로소 무분별한 처벌의 외주화를 막으며 교실 안의 인성교육으로 건강한 시민성을 꽃피울 수 있다.

셋째, '학교폭력 관계회복 지원단'과 '또래 조정'(peer mediation)을 전문적인 갈등 조정 기구로 제도화해야 한다. 가해자를 법적 처벌을 감내해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결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능동적 존재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학교폭력의 구조적 원인에 주목하는 동시에 개인의 윤리적 결단을 엄중히 묻는 가장 실천적인 접근이다.

은재호 정치·행정학자본인

필자 소개 : 은재호는 국무총리 소속 한국행정연구원에 재직하며 한국갈등학회장과 다수 정부 부처의 갈등관리심의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가교육위원회 국민의견수렴·조정전문위원회 위원과 한국외국어대학교 EU융합전공 겸임교수로 일하며 연구 현장과 정책 현장을 이어주는 정책 중개자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주의 디자이너'를 '참칭'하는 그의 저서로는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국민통합 전략과 실행방안 연구>(2017), <혁신적 포용국가의 국가론적 지위와 이행전략>(공저, 2019), <공론화의 이론과 실제>(2022), <경세제민의 공공리더십>(공저, 2024), <여론 속의 여론>(공저, 2025)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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