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즌 2로 돌아온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웹예능 <적수다>.
사피엔스스튜디오
소설가 백온유는 '섬세'는 타인을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말이고, '예민'은 스스로를 설명하는 말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조아란 출판 마케터는 '예민'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세심하게 받아들이는 입력(input)의 과정, 섬세는 받아들인 감각을 타인에 대한 배려를 더해 전달하는 출력(output)의 과정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대화는 '예민'과 '과민'을 혼동하는 사회, 그리고 예민함이 부정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의 세태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무던함은 반드시 좋은 가치일까. 예민함은 극복해야 할 성향일까. <적수다>의 수다는 이렇게 단어 하나에서 시작해, 그 단어에 담긴 가치 판단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적수다> 시즌 2에서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호적수들이 각자 책을 한 권씩 가져온다는 점이다. 대화의 키워드와 연결되는 문장이나 구절을 소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책 속 문장을 빌려 생각을 보태고 때로는 자신의 경험을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 기존 책 소개나 책 해설 콘텐츠와는 다른 지점이다. 단상들이 산문으로 이어졌던 <이적의 단어들>의 개정판 집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미처 알지 못했거나 묻혀 있던 책에 쏠쏠하게 영업당하는 재미도 있다. <적수다>에 소개된 책들 중 소설가 백온유가 추천한 김혜진의 <9번의 일>, 조아란 마케터가 소개한 31년생 할머니 임봉근과 91년생 손녀 임다운의 편지를 엮은 책 <오늘 내일하는 사이>, 소설가 박상영과 출판사 대표 이연실이 동시에 추천한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내 독서 리스트에 바로 추가했다.
지금까지 열거한 장점들은 이적 개인의 매력이라기보다 <적수다>라는 판의 매력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미 있는 수다'의 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이적의 언어감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책을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내세우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이어주는 매개로 놓는다. 때로는 철학이나 역사적 지식의 단편을 소개하며 호적수들의 경험과 생각, 상황에 대한 입장을 이끌어낸다.
<적수다>의 호스트 이적은 다른 호적수의 발언을 검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발언을 점검한다. 호적수들의 이야기를 존중하면서도, 한 사람의 발언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정답처럼 굳어지지 않도록 한 번 더 여지를 남긴다. "그런데 이런 면으로 보면" 혹은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말을 자주 덧붙인다. 그래서 <적수다>의 대화는 깊고 좁은 지점을 파고들면서도 쉽게 거칠어지지 않는다. 솔직함과 배려가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적수다>를 보고 나면 묘하게 수다를 떨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말도, 내 경험을 자랑하기 위한 말도 아닌, 의미 있는 수다. 내가 무심코 써온 단어들을 깊고 넓게 사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다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12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시즌 1에서 기억에 남았던 단어들을 떠올려본다. '다정'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한 <적수다> 1화, '쓸모와 무쓸모는 누가 정하냐'는 물음에서 시작된 3화, 술, 담배, 쇼츠, 커피 등 우리를 '중독'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이어졌던 수다(6화), '나잇값'을 한다는 것에 대한 12화까지.
앞으로도 <적수다>를 통해 이어질 이적의 의미 있는 수다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런 수다에서 사유로 발전해 더 깊어질 <이적의 단어들> 다음 편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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