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5 17:25최종 업데이트 26.06.05 17:25
  • 본문듣기
스타의 매력은 단순한 외모나 화제성만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어떤 장면에서 어떤 태도가 드러나는지, 그 순간들이 인물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능, 영화, 드라마, 유튜브 등 다양한 콘텐츠 속 인물을 하나씩 살펴보며 그 사람이 왜 지금 호감을 얻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매력이 어떤 순간에 드러나는지를 관찰해 봅니다.[편집자말]
데뷔 30년 차 가수 이적은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집, 그림책, 산문집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그중 가장 주목받은 책은 2023년 출간된 산문집 <이적의 단어들>이다.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해 이야기로, 이야기에서 삶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는 책이다. 그의 가사에서 느껴지듯 이적은 단어를 세밀하게 다루는 사람이다.

그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많지만, 최근 시즌 2로 돌아온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웹예능 <적수다>에서는 그 능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말하는 이적의 언어감각은 흔히 말하는 달변과는 조금 다르다. 말을 술술 이어가거나 재치 있는 입담을 뽐내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강점은 언어를 매개로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이는 데 있다.

형식부터 흥미로운 '적수다'

최근 시즌 2로 돌아온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웹예능 <적수다>.사피엔스스튜디오

<적수다>의 형식부터가 흥미롭다. 출연자를 패널이라 부르지 않고 '호적수(좋은 승부를 벌일 수 있는 상대)'라고 부른다. 누군가가 질문하고 누군가가 답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주어진 단어나 명제에 대한 각자의 정의와 경험을 꺼내놓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적수다>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소설가, 편집자, 출판 마케터 같은 출판계 인사들과 가수, 작사가, 연주자 같은 음악계 인사들이다. 그리고 이적은 이 두 업계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때로는 화면 너머 시청자들까지도.


그래서인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과시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잡다하지 않은 수다'를 떠는 자리처럼 보인다. 매회 한 시간이 넘는 영상을 보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또 "오늘도 시간을 허비했구나" 하는 허탈감이 들지도 않는다. 그런 묘한 매력 때문일까, <적수다>를 매주 챙겨보게 된다.

각 에피소드에는 '오늘의 단어'가 제시된다. 시즌 2에서는 지금까지 '집'(13화), '섬세와 예민'(14화), '손절'(15화)이 등장했다. <적수다>는 잘 정리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형 예능과도 다르고, 특정인의 삶을 풀어내는 일반적인 토크쇼와도 결을 달리한다. 하나의 단어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꺼내 놓는다. 그렇게 단어는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각자의 삶과 만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시즌 2 첫 화의 주제였던 '집'이다.

이적은 대화를 시작하며 우리가 말하는 집이 단순히 건물을 뜻하는'하우스(house)'가 아니라는 점을 짚는다. "집에 가고 싶다"라고 말할 때의 집, 영어로는 '홈(home)'에 가까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돌아갈 곳, 마음 붙일 곳, 보금자리에 가까운 의미.

세심한 개념 구분에 이어 대화는 자연스럽게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 관계 속에서 생기는 갈등과 그 해결 방식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날 출연한 호적수들의 집에 함께 사는 구성원들은 모두 달랐다. 3대가 함께 사는 40대 미혼 조아란 출판 마케터, 아내, 아이들과 함께 사는 이적, 친구들과 함께 사는 김은하 PD, 그리고 자매와 자취 중인 송소희까지. 각자의 소개만으로도 우리 시대에 '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시즌 2로 돌아온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웹예능 <적수다>.사피엔스스튜디오

이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자매와 함께 사는 송소희의 에피소드였다. 동생이 해외 직구한 단백질 바를 말없이 먹어버려 큰 원성을 샀던 일, 치킨과 함께 먹으려고 개수까지 맞춰 시킨 할라페뇨를 아무 생각 없이 먹어버려 또 한 번 동생의 분노를 샀던 일. 사연 자체는 웃기지만,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다.

나 역시 미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일본 과자를 미국 아마존에서 세일가로 발견하고 주문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아이가 스무 개가 넘는 과자를 다 먹은 후, 심지어 몇 개는 다 먹지도 않은 채로 부스러져 있는 모습에 분노했던 적이 있었다.

<적수다>의 호적수들은 언니인 송소희의 입장에만 몰입하지는 않았다. 동생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했을지, 또 언니 송소희는 왜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 양쪽의 마음을 번갈아 짚어냈다.
차마 함께 사는 사람에게 대놓고 할 수 없는 말들을 타인에게 고백하고, 또 상대방의 입장을 듣는 경험은 점점 깊은 대화가 사라져가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식의 흐름의 수다가 좋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도, 혼자 사는 삶도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만들지 않고 상반된 감각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되 대화에 참여하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던져주는, 영어 표현으로 하자면 'food for thought(곱씹을 생각거리가 넘치는 수다의 장)'이다.

'적수다'를 기다리는 이유

어떤 사람은 <적수다>를 보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이런 진행 방식 때문에 <적수다>를 기다린다. 단어 하나를 붙들고 여러 사람의 경험을 들어보고, 서로 다른 감각을 비교하고,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이런 수다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 이적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균형감 있는 태도는 '섬세와 예민'을 주제로 한 다음 화에서도 이어진다.

최근 시즌 2로 돌아온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웹예능 <적수다>.사피엔스스튜디오

소설가 백온유는 '섬세'는 타인을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말이고, '예민'은 스스로를 설명하는 말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조아란 출판 마케터는 '예민'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세심하게 받아들이는 입력(input)의 과정, 섬세는 받아들인 감각을 타인에 대한 배려를 더해 전달하는 출력(output)의 과정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대화는 '예민'과 '과민'을 혼동하는 사회, 그리고 예민함이 부정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의 세태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무던함은 반드시 좋은 가치일까. 예민함은 극복해야 할 성향일까. <적수다>의 수다는 이렇게 단어 하나에서 시작해, 그 단어에 담긴 가치 판단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적수다> 시즌 2에서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호적수들이 각자 책을 한 권씩 가져온다는 점이다. 대화의 키워드와 연결되는 문장이나 구절을 소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책 속 문장을 빌려 생각을 보태고 때로는 자신의 경험을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 기존 책 소개나 책 해설 콘텐츠와는 다른 지점이다. 단상들이 산문으로 이어졌던 <이적의 단어들>의 개정판 집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미처 알지 못했거나 묻혀 있던 책에 쏠쏠하게 영업당하는 재미도 있다. <적수다>에 소개된 책들 중 소설가 백온유가 추천한 김혜진의 <9번의 일>, 조아란 마케터가 소개한 31년생 할머니 임봉근과 91년생 손녀 임다운의 편지를 엮은 책 <오늘 내일하는 사이>, 소설가 박상영과 출판사 대표 이연실이 동시에 추천한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내 독서 리스트에 바로 추가했다.

지금까지 열거한 장점들은 이적 개인의 매력이라기보다 <적수다>라는 판의 매력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미 있는 수다'의 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이적의 언어감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책을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내세우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이어주는 매개로 놓는다. 때로는 철학이나 역사적 지식의 단편을 소개하며 호적수들의 경험과 생각, 상황에 대한 입장을 이끌어낸다.

<적수다>의 호스트 이적은 다른 호적수의 발언을 검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발언을 점검한다. 호적수들의 이야기를 존중하면서도, 한 사람의 발언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정답처럼 굳어지지 않도록 한 번 더 여지를 남긴다. "그런데 이런 면으로 보면" 혹은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말을 자주 덧붙인다. 그래서 <적수다>의 대화는 깊고 좁은 지점을 파고들면서도 쉽게 거칠어지지 않는다. 솔직함과 배려가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적수다>를 보고 나면 묘하게 수다를 떨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말도, 내 경험을 자랑하기 위한 말도 아닌, 의미 있는 수다. 내가 무심코 써온 단어들을 깊고 넓게 사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다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12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시즌 1에서 기억에 남았던 단어들을 떠올려본다. '다정'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한 <적수다> 1화, '쓸모와 무쓸모는 누가 정하냐'는 물음에서 시작된 3화, 술, 담배, 쇼츠, 커피 등 우리를 '중독'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이어졌던 수다(6화), '나잇값'을 한다는 것에 대한 12화까지.

앞으로도 <적수다>를 통해 이어질 이적의 의미 있는 수다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런 수다에서 사유로 발전해 더 깊어질 <이적의 단어들> 다음 편까지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