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재판정에 선 진보당 당수 조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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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 국면에서 야당과 겨루기보다는 아예 야당의 출마 기회를 봉쇄하자는 자유당의 작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그해 7월 22일 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제주·남원·담양·안동 등을 제외한 전국의 면의원 입후보자 2만 3430명 중에서 자유당 후보는 1만 4591명인 데 비해, 민주당 후보는 551명이었다. 국민회는 16명, 공화당은 4명, 진보당은 1명, 기타는 8명, 무소속은 8159명이었다.
읍의원 후보 1720명 중에서 자유당은 692명, 민주당은 130명, 공화당은 30명, 농민회는 3명, 무소속은 892명이었다. 시의원 후보 967명 가운데서 자유당은 295명, 공화당은 9명, 국민회는 5명, 진보당은 1명, 무소속은 526명이었다.
시장 선거의 경우에는 전체 26명 중에서 자유당이 5명, 민주당이 3명, 무소속이 18명이었다. 읍장의 경우에는 전체 104명 중에서 자유당이 30명, 무소속이 67명, 민주당이 7명이었다. 1870명이 정원인 면장 선거에는 자유당 후보가 780명, 무소속이 1036명, 민주당이 50명, 진보당과 공화당 각 1명이 나섰다.
진보당은 시의원 후보, 면의원 후보, 면장 후보를 각 1명 배출했다. 대선에서 2위를 차지한 정당에 대한 집중 견제가 주효했던 것이다.
특별시 및 도 의원 후보자들의 소속 정당을 알려주는 기사에는 민주당은 등장해도 진보당은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그해 8월 12일 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자유당 후보자는 452명, 민주당은 276명, 국민회는 43명, 농민회는 20명, 기타는 30명, 무소속은 873명이었다.
기초건 광역이건 자유당 다음으로 무소속이 많았다. 민주당이나 진보당 소속으로 출마하려고 하면 경찰이 필사적으로 저지하기 때문에, 아예 정당 공천을 포기하고 무소속을 택한 후보가 많았다.
이승만 세력이 몰락한 이유
이 점은 조봉암의 찬조연설이 어정쩡했던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봉암이 지지한 후보는 무소속 출마자였다. 조봉암이 그를 지원한 사실은 그의 실제 소속이 어디였는지를 시사한다. 조봉암이 그를 명확히 지지하지 못한 것은 그가 공식적으로 무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조봉암이 대놓고 지지했다면, 이 지역 경찰들이 자극을 받아 그 후보의 신변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민주당의 입후보 기회는 현저히 차단되고 진보당의 입후보 기회는 사실상 거의 차단된 이 선거는 자유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역사와 경계> 2022년 제124집에 실린 전성현 동아대 교수의 논문 '이승만 정권기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본 지방자치제의 의미'에 따르면, 시읍면장 선거에서는 자유당이 과반수를 간신히 넘긴 가운데 자유당과 무소속이 거의 절반씩 나눠 갖는 결과를 나타냈다.
시읍면 의원직은 자유당이 67.7%, 무소속이 28.6%, 민주당은 2.0%를 가져갔다. 도의원직은 자유당이 57.0%, 민주당이 22.4%, 무소속이 18.9%를 차지했다. 외형상으로는 자유당과 제2당의 차이가 크지만, 무소속에 포함된 정당 후보들을 감안하면 그 차이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노골적인 입후보 방해로 지방선거 압승을 거둔 자유당은 4년 뒤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4할 사전투표라는 기법을 앞세웠다가 일거에 몰락했다. 1956년 지방선거는 겉으로는 이승만의 승리이지만, 이는 이승만에 대한 혐오 정서를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승만 세력이 몰락한 이유를 보여주는 자료 중 하나가 1956년 지방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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