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9 13:25ㅣ최종 업데이트 26.05.29 13:25
  • 본문듣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종로동 사직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관계자가 기표용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2026.5.28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종로동 사직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관계자가 기표용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2026.5.28연합뉴스

6월 3일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다. 이날 유권자들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 등을 선출한다. 지역에 따라 한 번에 여러 장의 투표용지를 받아야 하는 만큼, 시각장애인들에게 지방선거는 다른 선거보다 더 높은 장벽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필자는 이번 선거에서 일정상 거소투표를 신청했다. 투표용지를 받아든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전 선거 때 제공되던 보조용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투표용지와 함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보조용구가 제공돼 비교적 독립적인 투표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보조용구가 포함되지 않아 결국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지난 28일 영등포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는 점자 보조용구를 제공하고 있지만 지방선거에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지방선거는 선출 대상이 많고 투표용지 종류가 다양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은 독립적인 투표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비밀선거의 원칙 역시 흔들린다. 누구를 지지하는지, 어느 정당에 표를 던지는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타인이 알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선거의 기본 가치는 자유롭고 비밀스러운 의사 표현에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기본 원칙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본투표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투표소에서 여러 장의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에 들어가더라도 보조용구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방선거는 선출 대상이 많아 투표 과정 자체가 더 복잡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장애인에게도 보장하라

실제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유로 선거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 마장동에 거주하는 한 시각장애인은 지방선거 투표를 위해 투표소를 찾았다가 결국 투표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여러 장의 투표용지를 받은 뒤 어느 칸에 기표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웠고,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주변 시선까지 부담스러워 다시는 선거장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사동에 사는 또 다른 시각장애인은 가족의 도움을 받아 투표했다가 씁쓸한 경험을 했다. 배우자와 정치적 성향이 달랐던 그는 나중에서야 자신이 원한 후보와 다른 선택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그는 선거 때마다 투표 자체를 망설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에게 투표는 단순히 투표소까지 가는 문제가 아니라, 독립성과 비밀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특히 점자형 투표 보조용구는 시각장애인들이 타인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후보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장치다.

장애인의 참정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지방선거에서 점자형 보조용구가 제공되지 않는 현실은 시각장애인의 실질적 참정권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제도 운영의 편의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 보장이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방선거를 포함한 모든 선거에서 시각장애인용 보조기구 제공 범위를 점검하고, 입법을 통해 실질적인 접근권 보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4년 뒤 치러질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시각장애인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 온전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비밀선거는 일부 국민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이어서는 안 된다.

6.3 지방선거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