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9 09:35최종 업데이트 26.05.29 09:36
  • 본문듣기
5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부근에 서울시교육감에 출마한 조전혁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5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부근에 서울시교육감에 출마한 조전혁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권우성

선거철이 되면 거리 풍경이 달라진다. 출퇴근길 길목마다 나란히 선 선거운동원들의 간절한 눈빛, 평소 고압적이던 '갑'들이 유권자 앞에서 고개를 낮추는 계절이다. 현수막의 공약들이 당선 후 빈말이 될지언정,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콤하게 포장되어 흔들린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법이고, 선거는 그 소란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시끄러움이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고 상처를 주는 '소음'이 될 때,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다수의 폭력이 된다.

올해 서울 시내 곳곳에 내걸린 "퀴어 동성애 교육 추방"이라는 현수막이 유독 눈에 걸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34년째 교육 현장에 있다. 그것도 지금은 학교 운영을 책임지는 현직 고등학교 교장이다. 솔직히 말한다. 나는 단 한 번도 학교에서 '동성애 교육'이라고 부를 만한 수업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 후보들이 '추방'하겠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른바 보수 진영으로 분류되는 몇몇 후보들조차 이 구호를 비판하고 나선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유령과의 전쟁

공교육 과정을 아무리 뒤져봐도 동성애를 권장하거나 옹호하는 커리큘럼은 없다. 오히려 2015년 마련된 '성교육 표준안'에는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아예 배제되어 있다. 어느 교과서에도, 어느 차시에도, 교장으로서 내가 결재한 어떤 수업 계획서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추방'은 어떤 집단이나 사상을 영역 밖으로 내쫓을 때 쓰는 물리적이고 강압적인 단어다. 당연히 추방할 대상이 실재해야 성립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교육 체제 어디에도 '동성애를 가르치는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유령을 쫓아내겠다고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형국이다.


실체 없는 유령과의 전쟁은 허망할 뿐이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언제든 제멋대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 실체가 없는 적을 만들어 유권자의 공포와 혐오를 자극하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학교 현장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모 후보가 말했듯 특정 표심을 결집하려는 얄팍한 포퓰리즘이다. 복잡한 교육 문제를 '선악 구도'로 단순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선거 공학이다. 진짜 비극은 그 정당성 없는 정치 공학의 소모품으로 우리 아이들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그림자와 싸우는 동안, 교실 한구석의 아이들은 고립된다. 한국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 시도율이 약 46%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2014년))가 있다. 오랜 교직 생활 동안 나는 이 숫자 뒤에 가려진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학교가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가르쳐주지 않으니, 아이들은 모국어 대신 구글 검색창을 뒤지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맨다. "동성애 교육 추방"이라는 구호는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겠는가. '너의 존재는 추방되어야 할 죄악'이라는 낙인이다.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다.

이름을 지우면 존재도 지워지는가

조전혁 전 의원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 출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전혁 전 의원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 출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서울시는 성문화센터 운영 매뉴얼을 개정하며 '연애'를 '이성교제'로, '성소수자'를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로 바꿨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행정 행위가 특정 존재를 지워버리는 선언이 된다. 이 개정은 몇 차례의 TF 회의로 졸속 처리되었다. 유네스코가 권고하는 포괄적 성교육 기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결정이 그렇게 통과되었다.

2024년 경기도에서는 '선정성'이라는 모호한 잣대로 2500여 권이 넘는 성교육 도서가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눈을 가린다고 해서 존재하는 세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악성 민원에 밀려 아이들의 알 권리를 차단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교육 행정이 스스로의 철학과 책임을 내던진 '자기 포기'이자 민주주의의 후퇴다.

교육 행정의 수장은 교육 전문가여야 한다. 교육 정책은 합리적 연구와 철학에 기반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동성애 교육'이 실제로 어느 학교 어느 교과서 몇 쪽에 있는지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없다면, 당신들이 추방하겠다는 실체는 무엇인가?

존재하지 않는 적과 싸우는 데 교육 행정의 에너지를 쏟는 동안, 진짜 현안들은 방치된다. 당장 우리 직업계고 아이들의 안전한 일자리와 취업률, 고교학점제 안착, 추락한 교권과 현장의 행정 부담,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 교육까지. 34년 차 교장인 내가 매일 마주하는 현장에는 '유령 추방'보다 훨씬 시급하고 본질적인 과제들이 쌓여 있다.

요즘 유튜브 채널 '쓱~보고가'의 랩 가사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만들었다는 곡 <혐오는 정의가 아니다>의 한 소절이다. "혐오는 멋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 타인의 눈물 위에 민주주의는 쓸 자리가 없다. 민주주의는 사람답게 살자는 약속이다." 선거철 거리마다 혐오를 내거는 정치인들에게, 그리고 그 소음에 노출된 유권자 모두에게 이 가사는 서늘하게 묻는다. 당신이 지키겠다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교육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짜 아이들을 지키는 길은 존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이 '모든 국민'에 예외는 없다. 성별도, 배경도, 성적 지향도 교육받을 권리 앞에서는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모든 학생이 배제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환경, 그것이 헌법이 명령하는 교육의 표준이며, 새로운 교육 수장이 반드시 만들어야 할 교실의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6.3 지방선거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