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31 10:58최종 업데이트 26.05.3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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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있던 것들 중 하나야."
"기네스를 부어 버려야겠네."

펍 한쪽, 맥주를 마시던 남자들이 경멸의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시선에 들어온 사람은 한 젊은 여인. 2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펍에 있는 이들과 외모와 말투가 다르다. 그녀는 얼마 전, 시리아 내전으로 고향을 떠나 가족과 함께 영국의 더럼으로 이주한 난민이었다. 버스가 들어오던 날, 한 무리 남자들의 거친 행패로 부서진 카메라 수리를 위해 도움을 청하러 이곳에 들어서던 중이었다.

펍의 주인은 난동을 피우는 무리를 자제 시키고, 짐을 옮겨주며 난민들을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60대 초반, 선한 얼굴이었지만 그는 어딘가 지치고 우울해 보였다. 그녀는 보상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으나, 그에게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인에게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말로 위로를 건네며 돌려보냈다.

"술 파는데 들어와도 되나?"
"저것들 남들 안 볼 때는 별짓 다해."

문을 나서는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마치 벌레를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혐오의 말들이 난무하는 그들 앞에는 잉글리시 비터가 밝고 아름다운 갈색을 빚어내고 있었다.

부자 나라, 가난한 동네

'나의 올드 오크' 포스터영화사 진진

2023년 개봉한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는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다. 켄 로치는 평생 스크린으로 소외된 노동자 계급과 가난한 이들의 삶을 대변해 온 영국 영화계의 거장이며 양심으로 불려 온 감독이다.

그는 아일랜드 내전 속 형제의 비극을 그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과 심장병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노동자를 통해 영국 복지 문제를 비판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

<나의 올드 오크>는 한때 광산으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쇠락한 마을에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적대와 갈등, 그 속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희망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유일하게 남은 펍, 올드 오크를 중심으로 펍 주인 TJ와 영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시리아 난민, 야라를 통해 전개된다.

과거 석탄 광산으로 부유했던 영국 북서부 도시 더럼. 하지만 이 마을은 1980년대 정부의 구조조정과 이에 저항하는 파업으로 황폐해졌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뒹굴고 아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주민들의 유일한 낙은 올드 오크에 모여 맥주 한 잔을 기울이는 것뿐.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난민까지 들어오고 집값까지 폭락하니, 주민들의 심기가 좋을 리 없었다.

영화 속 삶은 우리가 아는 선진국 영국의 모습이 아니다.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쓰러지고 아픈 사람들은 치료비가 없어 눈물 짓는다. 주민들은 난민들을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지만, 사실 그들 또한 국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또 다른 난민'이었다.

하지만 그런 비참한 현실 속에서 연민의 시선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올드 오크를 지켜온 TJ는 묵묵히 그리고 기꺼이 난민들의 손을 잡아준다. 심지어 매장에서 폄훼와 차별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기도 했다. 야라가 용기를 내어 TJ를 찾은 이유도, 이런 그의 품성을 알아차렸기 때문 아니었을까.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영화사 진진

올드 오크

야라의 카메라는 시리아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아버지가 남겨준 선물이었다. 도울 방법을 찾던 TJ는 올드 오크의 뒷방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얼마나 잠겨있던 것일까.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방치된 테이블과 집기들은 이곳에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방에 들어간 야라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벽에 걸린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에는 광부로 세대를 이어온 더럼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영제국의 핵심 동력이었던 광산업은 20세기 중반 석유, 가스 산업의 발전과 값싼 석탄의 수입으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마거릿 대처 정부는 보조금으로 연명하던 탄광의 폐쇄를 발표하고 당시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영국 광부 노조를 해체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광부들에게 탄광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었다. 수 세기 동안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그리고 자식으로 이어지는 삶의 터전이자 정체성이었다. 이들은 "탄광을 닫는 것은 공동체를 죽이는 것이다(Close a pit, Kill a community)"를 외치며 파업에 들어갔다.

웨일스, 요크셔, 더럼 등 탄광 중심 지역에서 1년 가까이 파업은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저축을 털고, 무료 급식소(soup kitchen)를 운영하며 악착 같이 버텼다. 이때 광부의 아내들을 중심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연대가 파업을 지탱하는 힘이 됐다.

하지만 생활고와 정부의 강력한 탄압 앞에 노동자들은 무릎 꿇고 말았다. 1985년 아무 소득도 없이 복귀한 이들은 탄광이 폐쇄되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더럼의 탄광 또한 1994년 문을 닫으며 도시는 급격하게 슬럼화되었다.

올드 오크 뒷방에 걸려있는 빛바랜 사진들은 더럼 광부 노동자들이 어깨를 걸고 싸웠던 찬란한 기억들이었다. 그러나 뜨거웠던 연대의 공간은 이제 문이 굳게 잠겨있다. 열려있는 공간은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경멸과 혐오의 언어를 배설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밥 그리고 맥주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이미지영화사 진진

오랫동안 닫혀 있던 뒷방을 연 건, 카메라였다. 두리번거리는 야라에게 TJ는 삼촌이 남긴 카메라를 중고로 파는 대가로 고장 난 카메라를 고쳐오겠다고 제안한다. 난민의 현실을 담고 있는 야라를 보며 TJ는 치열한 파업 현장을 기록했던 삼촌을 떠올린 게 아닐까.

'굶주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사진 속 TJ 어머니가 남긴 말들을 보며 야라는 미소를 짓는다. 전쟁으로 피폐한 나날, 시리아의 엄마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웃들과 밥을 먹고 버텼다며.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더럼의 노동자와 시리아 난민을 버티게 했던 힘은 함께 먹는 '밥심'이었다.

얼마 후, 야라는 동네 아이들과 시리아 사람들이 외부와 소통하지 못한 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TJ에게 올드 오크 뒷방을 무료 급식소로 만들어 모두 함께 밥을 먹자는 제안을 한다.

좋은 의도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TJ는 단칼에 제안을 거절했다. 뒷방을 개방했다가는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앞방 단골들마저 떠날 것이 분명했다. 과거 매일 수백 명씩 밥을 해 먹이던 어머니의 밥심을 믿고 있었지만, 자신의 밥줄인 맥주를 포기하긴 힘들었던 것이다.

올드 오크에서 자주 보이는 맥주는 카스크 에일(Cask ale)이다. 카스크 에일은 영국의 전통 방식으로 양조한 에일 맥주를 말한다. 이 맥주는 원래 저항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 대형 맥주 회사들이 전통 에일을 없애고 획일적인 라거 맥주로 시장을 장악하려 할 때, 캄라(CAMRA : Campaign for Real Ale)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전통 에일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캄라는 대자본에 저항하며 영국 전통 에일 복원과 확산에 앞장섰다. 카스크 에일 인증 기준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며 어떻게든 펍에 거품 없는 적갈색 에일이 올라올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 맥주가 사라지면, 영국의 정체성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이런 카스크 에일이 영화 속에선 배척의 상징으로 전락한다. 펍에 모여 카스크 에일을 마시는 주민들은 영어를 하지 못하고 맥주도 마실 수 없는 난민들을 향해, 자신들과 섞일 수 없는 존재라고 낙인을 찍고 있었다. TJ 또한 그 경계에서 고뇌한다. 맥주는 분명 분열을 의미했지만, 그에게는 오랜 친구들과 자신을 연결하고 있는 유일한 끈이기도 했다.

열린 뒷방, 점차 '우리'가 되어간 사람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이미지영화사 진진

야라의 제안을 거절한 후, TJ는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간다. 그의 곁에는 유일한 가족, 반려견 마라가 있었다. 마라는 혼자 남은 TJ가 삶을 포기하려 할 때, 기적처럼 찾아와 그를 구원해 준 존재였다. 그런데,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찰나,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마라가 근처에 있던 대형견에게 물려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마라를 처음 만났던 해변가에 묻어주고 돌아온 TJ. 슬픔에 잠긴 그를 찾아온 이는 다름 아닌 야라와 그녀의 엄마였다. 야라의 엄마는 상실감에 젖어 종일 외로웠을 TJ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건넸고, 밥을 비울 때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얼마 뒤, 마침내 뒷방이 열렸다. 야라의 엄마가 건넨 밥심이 그를 움직였다. 모두가 약자고, 모두가 소외된 이 동네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굶주린 아이들에게 힘을 주겠다는 TJ의 진심이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되자, 올드 오크는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연대를 하려는 거지, 자선 활동을 하려는 게 아니야.'

인종과 종교가 다르지만,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순간, 올드 오크의 문은 완전히 열렸고 그제야 진정한 공동체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홀에 모여 카스크 에일을 마시던 사람들도 일부를 제외하고 점차 '우리'가 되어갔다. 뒷방이 열리자, 배타적 정체성을 상징하던 맥주도 서로를 이어주는 본연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한 대형 커피 회사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이벤트를 벌였다는 논란에 올랐다. 그 회사를 운영하는 그룹의 수장은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다'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생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라는 사실을(관련 기사 : 5·18단체, 정용진 사과에 "서로 이해하자?... 제2의 조롱이냐").

국가 폭력에 맞서 저항했던 광주가 있었기에, 지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당시 고립된 광주에서 시민들을 버티게 한 것은 어머니들이 나눈 '주먹밥심'이었다. 지난 12.3 내란 사태 때, 차가운 거리에 나온 시민들을 보호해 준 힘도, 역시 밥심이었다. 밥심은 재난과 폭력에서 우리를 지켜내 온 연대의 실존적 증거였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이미지㈜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는 난민들이 오크(참나무)로 만든 깃발을 들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더럼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깃발에는 광부들이 지켜냈던 '용기, 저항, 연대'가 영어와 아랍어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깃발 아래서 갈등의 무대였던 '올드 오크'는 비로소 사라졌다.

이 행진은 1871년부터 존재했던 '더럼 광부 축제'를 재현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난민들은 서로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대오를 이루며 걷는다. 그들의 발걸음은 '우리'와 '그들'의 경계가 사라진 '진짜 공동체'를 상징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5월의 광주가 떠올랐다. 양동시장 상인들이 나르던 주먹밥과, 더럼에서 소외된 이들이 함께 나누던 밥, 그리고 내란 사태 때 시민들을 위해 선결제한 빵과 커피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혐오와 조롱은 늘 존재해 왔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올바른 시민 정신과 묵묵한 연대였다.

이제는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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