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9 09:18최종 업데이트 26.05.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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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지금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수도권 과밀과 지방소멸, 청년 유출과 지역경제 침체는 더 이상 개별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자치분권 기반의 5극3특 중심 국가균형성장"을 국정의 핵심 전략으로 제시하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자치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철학과 정책 논리를 가진다. 지방분권은 권한과 책임을 지방정부와 주민에게 이양하여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정치적 과제이다. 반면 국가균형발전은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역 간 격차를 조정하고 재배치하는 경제·공간 정책이다. 즉 하나는 "자율성"을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조정과 개입"을 강조한다.

자치분권과 국가균형발전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면서 대통령 소속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분리 운영하였고, 문재인 정부도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으로 설치하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두 위원회를 통합하여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이재명 정부 역시 이 체계를 유지하면서 '5극3특' 전략을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학계와 분권운동 진영에서는 우려가 있었다. 서로 다른 철학과 정책 목표를 하나의 위원회가 동시에 추진할 경우, 결국 가시적 성과가 큰 균형발전 전략 중심으로 정책이 쏠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었다. 지금 현실은 그 우려가 상당 부분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시대위원회'의 논의 구조 속에서 자치분권은 "5극3특"이라는 초광역 발전 담론에 밀려 정책의 독자성과 추진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현재 국정과제를 보면 자치분권 정책은 국가균형성장이라는 큰 틀 속의 일부 과제로 배치되어 있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의 123대 국정과제 자료에서도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자치분권 역량 제고"는 23개 균형성장 과제 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주민자치회 활성화, 주민선택 읍·면·동장제 시범 실시, 주민소환제 개선, 지방의회법 제정, 자치입법권 강화, 국가사무 지방이양, 지방재정 확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개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통치구조 자체를 바꾸는 정도의 중차대한 국정과제이다.

현 정부의 자치분권정책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부산 영도구에서 열린 제31회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6.5.27연합뉴스

특히 이재명 정부의 자치분권정책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주민주권형 분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과거 지방분권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권한배분 중심이었다면, 이번 정부는 주민자치회, 주민참여, 주민소환제 개선 등 주민 참여 민주주의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권 이양이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 확대를 지향한다.

둘째, "재정분권"을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국세-지방세 비율을 7:3 수준으로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6:4까지 확대하며, 교부세율 상향과 자주재정권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첨부 자료에서도 지방재정 확충을 통한 자치재정권 확대가 핵심 과제로 제시된다. 이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보조금 집행기관이 아니라 독자적 정책 주체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셋째, "지역 맞춤형 자치"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획일적 지방행정이 아니라 특별자치도, 초광역권, 지역특성형 권한이양 등을 통해 지역별 다양성을 제도화하려 한다. 이는 기존 중앙집권형 국가운영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자치분권정책의 방향

그러나 이러한 자치분권정책이 실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비중을 확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 정부의 정책 담론은 대부분 "5극3특", 초광역 경제권, 메가시티, 공공기관 이전, 광역교통망 구축 등 국가균형발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균형발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그러나 균형발전이 중앙정부 주도의 공간 재편 전략으로만 추진될 경우,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주민참여 민주주의는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초광역권 체계가 강화될수록 기초자치와 주민자치가 형식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역이 주도한다"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중앙정부가 초광역 권역을 설계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구조가 될 위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이인삼각"의 관계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두 정책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관계이다. 균형발전 없는 지방분권은 지역 간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 재정과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역은 자율성을 부여받아도 실질적 정책 역량을 갖기 어렵다. 반대로 지방분권 없는 균형발전은 중앙정부 주도의 개발정책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지역 주민의 참여와 자율성이 없는 균형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의 방향은 명확하다.

우선 '지방시대위원회'의 기능과 구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치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협력하되 독립적 추진체계를 가져야 한다. 최소한 위원회 내부에서라도 자치분권 기능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자치분권이 균형발전의 하위 수단으로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일(기능)-돈(재정)-틀(제도)"의 실질적 분권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사무 몇 개를 이양하는 수준이 아니라 교육, 복지, 지역산업, 돌봄, 교통 등의 핵심 기능을 지역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 재정과 조직 권한도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기본사회정책과 자치분권정책의 결합이 필요하다. 이것은 이재명 정부가 가진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 중 하나이다.

기본사회와 자치분권

지난 2025년 12월 8일, 김경수 당시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장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지방시대위원회 보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본사회는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국가 운영 철학"이다. 그리고 그 실천의 공간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역이다. 교육, 돌봄, 주거, 의료, 교통, 문화 같은 기본서비스는 주민의 삶의 현장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결국 기본사회는 자치분권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실제로 기본사회와 자치분권은 철학적으로도 연결된다. 기본사회가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국가 운영의 중심에 둔다면, 자치분권은 그 권리를 주민 스스로 결정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민주주의의 구조이다. "기본사회는 자치분권국가 실현의 내용이며, 자치분권국가는 기본사회 실현의 토대"라는 관점은 매우 중요한 시대적 함의를 가진다.

따라서 앞으로는 '기본사회위원회', '지방시대위원회', 교육·복지 관련 부처 간의 정책 연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기본서비스를 지방정부 단위에서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 맞춤형 돌봄, 공공의료, 지역교육 혁신, 생활SOC, 주민참여형 복지체계는 모두 자치분권과 기본사회가 만나는 지점이다.

결국 자치분권은 단순히 지방정부 권한 확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를 바꾸는 문제이며, 국민의 삶의 질을 어디에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철학의 문제이다.

"5극3특"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단지 산업과 인프라가 아니라 주민의 참여와 자율,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하다. 진정한 지방시대는 중앙정부가 지역을 개발하는 시대가 아니라, 주민과 지방정부가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시대여야 한다. 강한 지방이 강한 대한민국을 만든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다시 "자치분권"이어야 한다.

소순창교수포럼 사의재
* 필자 소개 : 소순창 교수는 오랫동안 정부개혁 및 자치분권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이다. 학계에서 한국지방자치학회 학회장, 이재명 정부에서 국정기획위원회 자문위원, 문재인정부에서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평소 자치분권정책을 학문적으로 연구했고, 자치현장에서 경험하였던 것을 정부정책에 반영하려고 노력해왔다. 현재는 이재명 정부에서 '기본사회위원회 지방정부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 기본사회와 자치분권의 정책을 지방정부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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