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당시 월성원전과 맞붙어 있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경북 경주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의 (오른쪽부터) 월성1,2호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이희훈
에너지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한국이 꺼내 든 해법은 늘 원전이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는 고리 1호기 건설을 예정보다 앞당겼고,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불안이 커졌을 때도 유럽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내는 동안 한국은 다시 원전 확대를 택했다. 그 선택은 이제 에너지 안보 자체를 위협하는 역설로 돌아오고 있다.
"지금 카타르에서의 LNG 공급이 불안한 상황에서도 유럽은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47.4퍼센트나 돼서 충격을 훨씬 덜 받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에너지 안보를 말하면서 오히려 에너지 안보와 국가 안보의 위협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죠."
원전 확대가 계속되는 진짜 이유가 하나 숨어 있다. 김영희 변호사는 그 이유를 핵산업계와 관료 조직, 건설사, 언론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에서 찾았다.
"핵산업계, 핵공학자, 관련 관료 조직, 대형 건설사, 그리고 광고비를 받고 홍보성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요. 정부는 그 기사들을 다시 '여론'으로 받아들이고요."
신한울 3·4호기가 완공되면 울진 한울 단지에는 원전 10기가 들어선다. 세계 어느 단지도 경험한 적 없는 밀집 규모다. 2011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원전 10기의 위험이 1기의 10배가 아니라 최대 19~20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⁴
여러 원자로가 전력망과 냉각 설비, 비상 장비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고가 연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 대한 위험 평가는 신한울 3·4호기 허가 과정에서도, 고리2호기 수명 연장 과정에서도 법적 요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빠졌다.
원전은 국가보안 1급 시설이다. 비행금지 구역이고, 발전소 앞에서는 사진도 찍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보안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보다 내부 문제를 감추는 데 주로 사용되고 있다고 김영희 변호사는 지적했다.
"원전 주변에서 방사능 감시 경보가 울려도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이 '오작동'이라고 하면 시민들은 그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소송을 해보면 원자력안전위원회도 규제기관이라기보다 한수원을 걱정해주는 기관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규제 대상인 한수원이 오히려 '갑'이고 규제를 해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을' 같아요. 사실상 통제가 안 되고 있는 거죠."
휴전선으로 갈라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이 위험은 훨씬 더 구체적인 얼굴을 갖는다.
"고리나 울진처럼 원전이 10기씩 밀집된 지역은 전쟁 시 원전 위협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북한 잠수함이 동해에서 고리 원전을 공격하면 막기 어려워요. 전쟁이 나면 원전은 타격 1순위 표적입니다. 한 나라를 사실상 괴멸시킬 수 있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고요."
원자로를 직접 공격하는 것만이 핵발전소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아니다. 원전은 전기와 냉각수가 끊임없이 공급돼야 작동한다. 원전 밖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송전선이 끊기거나, 냉각을 위해 바닷물을 끌어오는 취수구가 막히기만 해도 원자로는 과열되고 핵연료가 녹아내릴 수 있다. 전쟁에서 이런 시설들은 원자로 자체보다 훨씬 쉬운 표적이 된다.
그중에서도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는 특히 취약하다. 원자로는 두꺼운 콘크리트 건물 안에 있지만, 저장조는 그 바깥에 있다. 드론이나 미사일 공격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저장조에 불이 나거나 냉각이 끊기면 원자로 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방사성 물질이 한꺼번에 쏟아질 수 있다.
원전을 위험에 빠뜨리는 방식은 물리적 공격 외에도 있다. 2010년 이란 핵시설에는 '스턱스넷'이라는 악성코드가 침투했고, 핵연료 생산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기기 약 1000기가 파괴됐다. 해킹이 실제 시설 파괴로 이어진 세계 최초 사례였다. 김영희 변호사는 한국의 사례도 들려주었다.
"원전 앞에서는 사진도 못 찍게 하면서 정작 원전 설계 도면이 인터넷에 돌아다닌 황당한 일도 있었어요. 한수원은 최근 5년 동안 285건의 해킹 시도를 받았고, 2020년과 2024년에는 한수원의 협력업체를 통해 72만 건 자료가 유출됐습니다. 그중 11만 건은 한수원의 원전 관련 기술 자료였어요.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준이었죠."
'화장실 없는 집'
원전의 시간은 공격과 사고의 순간이 끝난 뒤에도 무한에 가깝게 이어진다. 발전을 마치고 남은 핵연료, 즉 사용후핵연료는 아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지하 깊은 곳에 10만 년 이상을 격리해야 한다. 10만 년이라니. 뭘 어떻게 해도 인간의 시간 안에 붙들 요량이 없는 단위 아닌가.
전 세계에서 고준위 핵폐기물 최종 처분장을 실제로 운영하기 시작한 나라는 핀란드뿐이다. 한국에는 아직 공식 지정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없다. 사용후핵연료를 법적으로 고준위 폐기물로 규정하려면 '폐기'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정작 폐기물을 보낼 최종 처분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갈 곳을 찾지 못한 사용후핵연료는 지금도 각 원전 부지 안 임시 저장조에 계속 쌓이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아홉 차례 처분장 부지 선정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핵폐기물을 버릴 곳 없는 원전은 오래전부터 '화장실 없는 집'에 비유돼왔다. 원전 전기가 싸다는 통념 역시 이 구조 위에 서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비용이나 사고 비용이 전기 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니까 원전 전기가 싼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죠."
2026년에는 고리 원전 임시 저장조 포화율이 95퍼센트가 넘을 것으로 예측한 통계도 있다.⁵ 최근 국회에서는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 시설을 사실상 합법화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도 통과됐다. 김 변호사는 이 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진행 중이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아홉 번이나 최종 처분장 부지 선정을 시도했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갈 데가 없으면 임시는 결국 영구가 되는 겁니다."
문제는 그 저장조들이 원자로를 감싼 콘크리트 건물 바깥에 있다는 점이다. 미사일과 드론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로.
전기에도 색깔이 있다면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전. 설계수명이 다해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와 계속운전 절차를 밟고 있는 2호기, 그 옆으로 3·4호기의 모습이 보인다.
김보성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영희 변호사는 조용히 말했다.
"저는 전기에 색깔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원전 전기는 빨간색, 태양광 전기는 초록색. 그러면 사람들이 조금 더 빨리 의식이 바뀌지 않을까요?"
그 빨간 전기의 대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울진과 경주, 부산 기장과 울산 울주 같은 원전 밀집 지역의 주민들이다. 원전 유치를 논의했던 삼척과 영덕 주민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바로 옆 울진을 보라고. 거기 사람들이 정말 잘사는지 보라고. 건설 토목업자들만 배를 불리고 정작 주민들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었다.
김영희 변호사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그들의 희생 위에서 전기를 쓰고 있다고. 그런데 이 희생은 생계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핵발전소는 평상시에도 미량의 방사성 물질을 내보낸다. 정부는 기준치 이하라서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김영희 변호사는 반문했다.
"아무리 기준치 이하라 해도 그걸 늘 마시고 살면 사람이 멀쩡하겠어요?"
서울대 의학연구원이 정부에 제출한 역학조사 결과, 원전 반경 5킬로미터 이내 여성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30킬로미터 밖(대조지역) 여성의 2.5배였다. 정부와 법원은 원전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한수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월성 원전 부지 내 지하수 10여 곳에서 삼중수소(방사성 수소)가 발견됐으며, 이중 월성원전 3호기 지하수 고인물에서는 기준치의 약 18배인 리터당 71만 3000베크렐이 검출됐다. 그런데 이 일은 2021년 언론을 통해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위험은 이처럼 흐려지고 감춰진 채 특정한 지역과 세대에 침전된다. 어떤 지역은 전기를 숨 쉬듯 소비하고, 어떤 지역은 오염과 재난의 위험을 온몸으로 떠안는다. 지금 세대의 전기는 다음 세대에게 수만 년 동안 사라지지 않을 폐기물의 시간을 남긴다. 김영희 변호사가 에너지 문제를 결국 정의의 문제로 바라보는 이유다.
그런데 이 모두는 평시의 이야기다.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전부 서막에 불과해진다. 전 세계를 통틀어 원전이 가장 빽빽하게 들어찬 나라에서 전쟁이 난다면.
나는 이재명 정부가 신규 원전 계획을 철회할 기회를 아직 잃지 않았기를 바란다.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지금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이들에 대한 응답이 아직 남아 있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희음: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하면서 르포와 시, 에세이를 쓴다. 기후-생태운동, 동물운동, 평화운동을 여러 해 이어왔다. 르포 <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 <김용균, 김용균들>(공저)을 썼고 ,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를 펴냈으며, 에세이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 기후 시집 <여름, 연루> 등을 동료들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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