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8 11:59최종 업데이트 26.05.28 11:59
  • 본문듣기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월터 리드 국립 군의료센터에서 정기 건강 검진을 받은 뒤 떠나고 있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제정치는 한 장면씩 떼어 보면 그럴듯한 설명을 낳는다. 관세는 압박처럼 보이고, 전쟁은 응징처럼 보이며, 휴전은 확전 방지처럼 보인다. 정상회담은 대담한 거래 외교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장면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 놓으면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압박은 출구를 만들지 못하고, 전쟁은 문제를 끝내지 못하며, 외교는 그 빈칸을 메우지 못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전략의 연쇄가 아니라 패착의 순환이다.


이란전이 그 장면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줬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군사력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보도로 드러난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는 그 승리 선언에 균열을 냈다. 이란의 미사일 능력, 이동식 발사대, 호르무즈 주변 기지 접근 능력, 지하 미사일 시설은 상당 부분 남아 있거나 다시 작동 가능한 상태로 평가됐다.

미국은 이란을 때렸다. 그러나 때린 것과 이긴 것은 다르다. 폭격은 표적을 부술 수 있지만, 위협의 방식을 없애지는 못할 수 있다. 이란이 다시 호르무즈를 위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승리의 증거가 아니라 전략 실패의 증거다.

휴전도 마찬가지다. 휴전은 그 자체로 성과가 아니다. 전쟁이 없었다면 휴전도 필요 없었다. 확전 위험, 유가 충격, 미군 피해 가능성은 전쟁이 만든 후과였다. 그 후과를 잠시 낮췄다고 해서 전쟁이 성공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5월 말 현재까지도 협상은 출구로 나아가기보다 같은 원을 돌고 있다. 합의가 가까워졌다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휴전 위반 공방이 터지고, 호르무즈 해협을 열어야 한다는 미국의 압박도 다시 반복된다. 대화는 계속되지만, 문제는 계속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이것은 휴전의 성공이 아니라, 휴전이 아무것도 고정하지 못했다는 증거에 가깝다.

휴전이 성과가 되려면 이란을 묶었어야 한다. 호르무즈 위협을 줄여야 했고, 협상장을 미국 쪽으로 기울게 해야 했다. 그러나 드러난 흐름은 반대에 가까웠다. 휴전은 이란이 다시 움직일 시간을 줬고, 미국은 그 시간을 승리의 고정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다음 장면은 중국이다. 이란을 군사로 끝내지 못하고, 휴전으로 호르무즈를 안정시키지 못했다면 미국은 중국의 협조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실패를 대신 수리해 줄 이유가 없었다. 호르무즈의 안정을 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트럼프의 전쟁 실패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겠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세 장면은 따로 흩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전쟁은 이란을 끝내지 못했고, 휴전은 이란을 묶지 못했으며, 중국 방문은 호르무즈의 출구를 열지 못했다. 이것이 트럼프식 순환적 패착의 원형이었다.

트럼프가 위험한 이유

2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발리아스르 광장에 설치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호르무즈 해협이 그려진 정치 광고판 앞을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AFP 연합뉴스

여기서 트럼프를 둘러싼 오해가 생긴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 안에서 숨은 계산을 찾으려 한다. 거친 말에는 협상술이 있을 것이라 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에는 미치광이 전략이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미치광이 전략은 계산된 불확실성일 때만 전략이다. 목표와 비용, 그리고 행동 뒤 남을 질서가 연결돼 있을 때만 불확실성은 카드가 된다.

계산 없는 예측 불가능성은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위험이다. 트럼프가 위험한 이유는 그가 늘 치밀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치밀하지 않은 사람이 세계 최강의 군대와 동맹망을 쥐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더 위험한 것은 그 치밀하지 않음을 주변이 계속 전략으로 읽어준다는 점이다.

동맹과 파트너들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미국의 약속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유럽은 트럼프의 압박 속에서 미국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자각을 키웠고, 대만과 일본은 미국의 안보 약속이 미중 거래의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을 마주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지만, 전쟁 뒤 분명한 전략적 결말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적대국은 버티고, 경쟁국은 가격을 매기며, 동맹국은 불안해한다. 트럼프식 예측 불가능성은 신뢰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위험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한국에도 곧장 이어진다. 한반도는 이제 미중 관계, 중동 위기, 에너지와 해상 통로, 무역 협상이 서로 맞물리는 판 위에 놓여 있다. 최근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도 미중 정상회담 결과, 한반도 문제, 중동 정세, 경제와 무역 문제가 함께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반도는 이미 더 큰 거래판 안에 들어와 있다.

트럼프가 다시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장면은 트럼프에게 익숙하고, 김정은에게도 정치적 효과가 크다. 대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한반도에서 긴장을 낮추고 핵과 미사일 문제를 관리하려면 대화는 필요하다.

문제는 대화가 안전장치를 만들지 못한 채 사진과 선언으로 소비될 때다. 핵 동결, 제재 완화, 주한미군, 방위비, 연합훈련, 확장억제, 미중 협상 속 한반도 문제가 한꺼번에 거래판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겉으로는 큰 합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성격이 다른 문제들이 하나의 장면 안에 뒤섞이는 일이다.

방위비는 돈의 문제이고, 주한미군은 억지의 문제이며, 핵 동결은 생존의 문제다. 이것들을 하나의 거래 묶음으로 만들면 한반도 안보는 협상장의 장부 항목으로 전락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계산 없는 거래가 평화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일이다.

그래서 한국의 대미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트럼프의 머릿속 큰 그림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큰 그림이 없을 때도 한반도 안보가 흔들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세우는 일이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것

11일(현지시간)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DC 인근 미 국방부 청사에 도착한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손을 내밀고 있다.AFP 연합뉴스

한국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북미 대화의 사전 합의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북미 대화는 필요할 수 있지만, 한반도 군사질서, 평화체제, 제재, 주한미군 문제까지 한국과의 조율 없이 정해져서는 안 된다.

주한미군, 확장억제, 연합훈련, 제재 완화, 핵 동결 문제에서 한국 동의 없이 넘을 수 없는 선을 미국과 미리 확인해야 한다. 한국을 지나쳐 한반도 질서를 정하는 대화는 평화가 아니라 위험한 우회로가 된다.

그다음 필요한 것은 의제의 분리다. 방위비, 주한미군, 연합훈련, 확장억제, 제재 완화, 핵 동결은 서로 다른 성격의 문제다. 돈으로 다룰 문제, 군사 억지로 다룰 문제, 비핵화 협상으로 다룰 문제를 한 장부에 올려놓아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위험한 거래는 나쁜 조건의 거래만이 아니다. 다른 성격의 문제를 한꺼번에 묶는 순간, 한반도 안보는 큰 거래의 부속 항목으로 밀려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외교적 안전판을 넓혀야 한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중심축이어야 하지만, 한반도 문제를 미국 대통령 한 사람의 거래 감각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일본, 유럽, 호주 등과의 안보·경제 협력, 유엔과 다자 외교, 중국과의 소통 채널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미국이 흔들릴 때 한국도 함께 흔들리지 않으려면, 동맹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동맹을 받칠 외교적 다리를 더 세워야 한다.

동맹은 신뢰 위에서 오래 간다. 그러나 신뢰는 맹목과 다르다. 미국과의 협력은 한국 안보의 핵심 축이지만, 동맹국 대통령의 충동까지 전략으로 불러줄 필요는 없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것은 동맹 그 자체이지, 미국 대통령의 즉흥성을 전략으로 해석해 주는 태도가 아니다.

트럼프를 읽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그의 괴팍함이 아니다. 괴팍함은 때로 전략처럼 보인다. 더 큰 문제는 그 괴팍함 뒤에 정교한 계산이 없을 때다. 그 순간 예측 불가능성은 협상 카드가 아니라 무능의 다른 얼굴이 된다.

한국은 트럼프의 숨은 전략을 찾는 데서 출발하면 늦다. 그의 머릿속에 없는 큰 그림을 상상할 것이 아니라, 계산 없는 권력이 한반도를 흔들 수 있다는 전제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무능이 전략처럼 포장되어 한국 안보를 흔들기 전에, 우리의 안전장치를 먼저 세워야 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