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정민
"참을 만큼 참았다."
이번 스타벅스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을 요약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아무리 물을 보관하는 용도의 텀블러를 활용한 이벤트를 한다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다 군인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광주의 시민들을 기리는 날에 '탱크데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어떠한 의도도 없었다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스타벅스 코리아나 이 회사의 실질적 소유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이전에 보인 문제적 행보가 없었다고 생각해 보자. 나를 포함하여 어쩌면 사람들은 '설마'를 반복하며 이게 정말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를 계속 의심했을 것이다. 보통의 회사라면 홍보물 하나가 세상이 나오기까지 여러 직급의 결재를 거쳤을 것인데 그 과정에서 아무도 이상한 걸 몰랐을까. 그리고 이런 식의 홍보를 해서 스타벅스에 무슨 이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분이 쏟아진 분명한 이유는 있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이번 논란 이전에도 문제적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가령 스타벅스 코리아는 세월호 참사 추모일에 하필 '세이렌 머그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세이렌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노래로 배를 난파시키는 존재로 나온다.
물론 세이렌은 스타벅스의 오랜 상징이고 실제로 여러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다고는 한다. 그런데 왜 하필 기다렸다는 듯 4월 16일이었을까. 보통은 날짜를 보고 놀라서라도 피해 가지 않을까(신세계 그룹은 26일 "스타벅스 코리아가 처음 제안한 날짜는 4월 20일이었으나 행사 업체 측에서 16일로 확정 통보해 온 것"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자신의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여러 설화를 만들었다. 가재 요리 사진과 함께 "가재야 잘 가라 미안하다 고맙다"는 글이 담긴 게시물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 추모 방명록에 적은 문장을 따라 하며 비꼰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스타벅스코리아 마케팅 논란에 사람들이 공분한 이유

▲스타벅스코리아는 5.18민주화운동 46주년인 18일 ‘5.18 탱크데이’, ‘책상에 탁!’과 같이 5.18을 연상시키는 부적절한 문구를 사용해 논란이 되자 해당 행사를 중단하고 공식 사과했다.
스타벅스코리아
어디 그뿐이랴. 정용진 회장은 자신의 SNS 게시물이 임시로 삭제 조치가 되었을 때도, 대중 외교와 관련한 기사를 발견했을 때도, 그다지 관련도 없고 해묵기까지 한 '멸공'이라는 단어를 쓰며 자신의 정치적 인식을 드러냈다. 심지어 극우 성향 개신교계 행사인 '빌드업코리아'에 축하 영상을 보내고 커피를 후원한 전력도 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단순히 행사의 성향 때문만이 아니다. 이 행사는 미국 극우 진영이 한국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교두보처럼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다지 상관없어 보이는 독립된 사건들이 일관된 의미를 보이며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하나의 거대한 근거가 된다. 사람들이 이번 마케팅 논란에 대규모 불매운동과 정 회장에 대한 성토로 응답한 건 그래서일 것이다.
정용진 회장이 경솔한 언행과 극우적으로 해석될 가치관을 드러내며 소위 대기업 오너 리스크를 만들어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정용진이 저런 사람이었나?'라고 의아해하다가 '저런 사람이구나'라고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나칠 정도로 반복이 되면 '어디까지 하나 두고보자'라는 마음이 들게 된다. 나는 이 마음이 대중들 사이에 거대한 공감대가 되었다고 본다. '다음에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 말이다.
다시 화두에 오른 '일베 폐쇄'

▲조수진 변호사(노무현재단 이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날 촬영된 사진이라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조 변호사는"오늘 연인원 50명 정도의 일베로 추정되는 청년들이 봉하마을 기념관에 들어와 곳곳에서 일베 티셔츠를 입은 채 상징 손가락 표시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라며 "이게 놀이인가? 아니다.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제발 혐오 표현 처벌하는 법 좀 만들면 안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조수진 페이스북
이 일의 연장선에서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을 포함하여 그간 벌어진 유사한 사건들이 혐오적이고 극우적인 내용을 담은 소위 '일베 문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름부터 일베식 조롱의 언어를 담은 래퍼 '리치 이기'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가사를 써왔는데, 심지어 그가 노 전 대통령 서거일에 공연을 하겠다고 예고하여 논란이 있었다. 다행히 노무현재단의 개입으로 공연은 취소되었지만 그럼에도 꽤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까지 찾아온 이들도 있다. 노무현재단 조수진 이사는 지난 23일에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방문객들이 찾아와 조롱·비하적 행동을 했다고 알렸다. 50여 명의 청년들이 봉하마을 기념관에 들어와 '일베' 티셔츠를 입은 채로 일베를 상징하는 손 모양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조롱과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과 징벌배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간베스트처럼 조롱과 혐오를 방치 및 조장하는 사이트에 대한 필요 조치를 하기 위해 공론화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사이트 폐쇄' 또한 포함되었다.
그렇다고 일베를 그대로 둘 것인가

▲2016년 5월 31일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상징물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던 모습. 조각상은 일베를 상징하는 자음 'ㅇ'과 'ㅂ'으로 회원을 인증하는 손가락 형상이다.
권우성
이재명 대통령이 띄운 화두에 여러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일베가 문제인 건 맞지만 사이트 폐쇄가 답이 될 수 있느냐는 의견들이 있었다. 현행법상 실질적인 폐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 일베를 없앤다고 집단화된 극우와 혐오행위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의견. 사라진 일베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서 몰래 조롱의 표식을 심으며 '탱크데이' 같은 논란을 또 만들 것이란 의견. 자칫 잘못하면 표현의 자유를 자의적 기준으로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 등등. 나는 대체로 이 모든 의견에 동의한다. 그 말들은 모두 맞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법적으로 일베 폐쇄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아예 방법을 찾지 않을 것인가. 법은 필요하다면 고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이트를 폐쇄한다고 해도 일베식 혐오와 조롱이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하여 일베를 내버려둘 것인가. 폐쇄된 일베를 뛰쳐나간 사람들이 어딘가에 다시 똬리를 틀고 극우 집단을 형성할 것이기에 일베를 가만둘 것인가. 표현의 자유 침해 위험이 있다고, 조롱과 혐오가 판치는 커뮤니티가 그대로 존재하게 내버려둘 것인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일베를 없앤다고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런 커뮤니티가 사회의 개입 없이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는 건 괜찮은가. 그게 세상에 괜찮은 신호로 보일까. 나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가 '일베 폐쇄'까지 포함하여 이 사이트를 어떻게 할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결론을 '폐쇄'로 정해둔다기보다 저런 사이트가 지금 이 세상에 저대로 존재하게 내버려두지 않겠으며, 필요하다면 폐쇄까지 하겠다는 의지 표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일베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은 내가 대학생 때였다. 그런 내가 이제 40대를 앞두고 있다. 참을 만큼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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