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제조 암묵지 기반 AI모델 개발 사업’ 사업설명회가 열렸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유튜브
노동계는 다음의 네 가지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 AI 기술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과 노동의 소외 문제다. 양대 노총은 AI가 숙련노동자의 암묵지를 학습하고 재현해 내는 과정이 그동안 인간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고숙련·비정형 업무까지 자동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노동자의 전문성과 현장 재량권을 크게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인력 감축과 대규모 구조조정의 빌미가 될 수 있다. AI는 어디까지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돕는 지원 수단으로 한정되어야 하며, 기술 운용에서 인간의 통제와 개입 원칙이 제도적으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암묵지 데이터의 소유권과 수익의 공정한 배분 문제다. 노동자의 숙련과 노하우는 장기간에 걸친 헌신의 산물이다. 기업이 이를 가져가 AI 개발에 활용함으로써 이윤을 독점하고 현장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한 '지식 수탈'과 다름없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단계에서 반드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하며, 구체적인 권리 보장 조항과 함께 공정한 보상 및 수익 배분 체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셋째, 현장 노동자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 강화와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암묵지를 정밀하게 추출하는 과정에서 시선 추적 장비를 도입하거나 행동 및 음성 데이터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면, 이는 노동자에 대한 상시 감시 체계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특히 이렇게 축적된 민감한 데이터가 향후 채용이나 성과 평가, 인위적인 구조조정 등 인사관리의 압박 수단으로 악용될 경우, AI는 생산성 혁신의 도구가 아니라 노동자를 통제하는 장치로 전락할 수 있다.
넷째, 사업의 기획과 추진 절차 전반에서 노동계가 배제된 채 정부 주도로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술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만큼, 사업 추진에 앞서 노사 협의와 깊이 있는 사회적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마침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AI 전환에 따른 노사상생위원회'가 지난 22일 발족했다. 노사정이 모인 경사노위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에 사업을 진행해도 늦지 않다. 국가 수준과 사업장 수준에서 노조 참여 거버넌스 구축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AI 기술 강국 넘어 '정의로운 AI 강국'으로

▲지난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AI 전환에 따른 노사상생위원회’가 발족했다.
ESLC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유튜브
노동계가 AI 산업 발전과 기술 혁신 자체를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과 현장 노동자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는 길이 조화를 이루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실현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노동계는 ▲노동자와 노동조합 참여의 법제화, ▲암묵지 데이터에 대한 명확한 권리 설정 및 공정한 보상 체계 마련, ▲AI를 활용한 과도한 노동 감시와 평가 규제, ▲노사정 사회적 합의 기구의 실질적 가동, ▲유럽연합의 AI 법(EU AI Act)과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부합하는 노동 보호 체계 구축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본질적인 질문은 '누구를 위한 AI 전환인가'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도체·데이터·제조업이라는 물리적·기술적 기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위에 사회적 신뢰와 제도적 정당성이 함께 구축되어야만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
현장 명장들의 암묵지 데이터에 대한 명확한 권리 설정, 공정한 보상 체계, 철저한 노동자 보호 장치가 마련될 때,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이윤 독점으로 끝나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 확대와 노사 상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이 단순한 'AI 기술 강국'을 넘어 인간의 가치를 포용하는 '정의로운 AI 강국'으로 발전하는 길이다.
▲우상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본인
필자 소개 : 우상범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단체교섭·사회적 대화·노조 조직화·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 및 노사관계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합니다. 최근에는 산업구조 변화 속 노동권 보호와 지속가능한 노사관계 구축 방안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보고서 및 논문으로는 <택배노동자의 노동 및 안전보건> <인공지능과 노동> <플랜트건설의 노사관계 조정시스템 구축 방안> <비정규직 이해와 노조 조직화 방식>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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