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6 10:39최종 업데이트 26.05.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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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산 상구룡재단에서 산신제를 드리는 모습. 오른쪽이 봉래산 산신 할매, 일명 영도 할매다.영도문화원

영도대교, 흰여울문화마을, 해맞이동네. 부산의 이름난 관광지들이 모여 있는, 최근에는 도시재생 사업으로도 이름난 영도에는 오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비탈을 따라 형성된 마을을 따라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는 봉래산이 자리한다. 그리고 그곳에 산신 할매가 살아, 영도 사람들을 굽어살핀다는 전설. 봉래산 산신 할매가 영도를 너무 아낀 나머지 영도를 떠나 뭍으로 나가는 사람은 3년 안에 망하게 만들어 다시 영도로 돌아오게끔 심술을 부린다는 이야기가 이 전설의 완성이다.

한국 근대식 조선업의 발상지인 영도는 꽤 오랫동안 조선업과 선박 수리 산업, 원양 어업, 그리고 항만 물류 산업이 번창했다. 요식업과 서비스업이 함께 번성하는 것 역시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조선 경기 불황으로 수리조선업이 영세화되고, 2000년대 한일 어업협정의 영향으로 원양어업이 감소하면서 영도의 급격한 쇠락이 시작됐다.


20년 전만 해도 여전히 "쇠와 땀 냄새" 그리고 "깡깡" 소리로 가득했다던 그곳은 지금 일할 공간을 내어주지 못해 빈집, 빈 창고와 폐공장만이 남아 있다. 부산에서 소멸 위험도가 가장 높다는 영도. 봉래산신 할매도 어느새 지쳤는지, 이제 그곳에는 드는 이 없고 나가는 이를 붙잡을 수도 없다.

영도 주민들의 삶은 오랜 기간 조선업을 중심으로 짜여 왔다. 산업이 쇠락하면서 주민들의 생활 구도가 무너졌고, 이는 영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그 결과는 살고 죽는 문제로 이어진다. 30년 사이 인구 절반이 감소한 영도구는 전국에서도 사망률이 높고, 기대수명은 짧은 곳 중 하나다. 사망률 감소 속도는 더디고, 기대수명은 정체 중이다.

부산 원도심 연령표준화사망률 추이(1998-2024, 왼쪽)와 기대수명 추이(2009-2024, 오른쪽). 각각 국가데이터처 '사망원인통계'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별 기대수명지표' 참고.문다슬

부산 원도심의 흥망성쇠

영도구의 상황은 산업 쇠락과 함께 부산 근대화의 상징인 '원도심'의 쇠락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부산 원도심은 영도구, 중구, 동구, 그리고 서구를 포함한다. 서구의 아미·충무 생활권은 영도구와 함께 사망률 감소 속도가 더뎌지고 기대수명이 낮아지고 있다(참고 :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6011118361949378).

부산 원도심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전형적인 식민지 도시였다. 무역이 용이한 곳에 항구가 만들어지고, 이곳으로 일본인들이 이주하면서 근대 시설이 집중됐다. 곧 원도심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가 됐지만, 동시에 서구 고지대 일대에는 조선 빈민층이 주거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무역과 상업의 요충지에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성매매 집결지도 만들어졌다. 시간이 흘러 한국전쟁 중 임시수도 기능을 하면서 서구는 정치·행정의 중심지로 변모했지만, 동시에 피란민들이 모인 '피란도시'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부산항 중심의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인근에 일자리를 잡은 노동 인구가 함께 증가하기 시작했다. 서구는 이후 산업화 시대에도 부산과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의 거주지 역할을 해왔다. 냉동창고, 조선업, 원양어업, 공동어시장, 국제시장 등 일자리를 구하기 쉽고, 출퇴근이 쉬운 데다가 집값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화에 따른 지가 상승과 산업 용지 부족과 함께 지방세 중과,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82-1991)에 따른 성장 억제 및 관리 도시 지정 등 여러 조건이 맞물려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1985년 즈음부터 서구 주민 수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도시계획에 따라 원도심의 중심 기능이 분산되고 재편되면서 원도심은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제 노동자들은 원도심에서 생활을 이어 가지 않는다. 떠날 이들은 떠났고, 새로 오는 이들은 드물다. 남은 주민의 시간을 멈춰 세울 수는 없으니 평균 연령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생활 인구와 체류 인구는 등록 인구 대비 3~4배에 달한다. 서비스업 입지계수도 부산에서 유일하게 낮아졌다. 아미·충무 생활권에서는 이러한 중첩된 지역의 시간과 경험이 기대수명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부산의 절망의 죽음

미국의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은 1990년대 말부터 미국 비히스패닉 백인 저학력 중년의 전체 사망률이 증가세로 역전한 현상을 확인하고, 이를 '절망의 죽음(deaths of despair)'이라 이름 붙였다. 케이스와 디턴은 절망사가 제조업 일자리 감소, 노동시장의 비공식화, 임금 정체, 지역사회 해체와 같은 노동계급의 물적 토대가 약화하면서 나타난 누적 효과라고 설명했다.

절망의 죽음은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하지만 시민들의 존엄한 생활을 뒷받침하는 복지를 보장하는 곳에서는 노동계급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불리해지더라도, 이 절망이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절망의 죽음은 자본주의와 정치적 결정이 결합한 구조적 산물에 가깝다.

절망의 죽음은 주로 특정 인구 집단의 약물중독, 자살, 알코올 관련 사망으로 축소되어 이해되곤 하지만, 이 죽음이 지역이라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쇠락의 영향이 집중되는 인구 집단과 절망의 질병은 지역의 조건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영도와 서구에서 정체 중인 사망률의 감소와 기대여명의 증가를 절망의 죽음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영도는 조선업이라는 산업적 관계 속에서 위치한 곳으로, 이 산업 관계는 공장과 노동자, 그리고 이들 가족 전체의 얽힘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용접하고, 누군가는 녹을 벗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들이 먹을 밥을 지으며 생활을 영위해 온, 영도의 절망은 수리조선업을 중심으로 맺어진 여러 층위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느리지만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이 산업 관계는 한편으로 생산과 재생산 관계와 필연적으로 교차한다. 오랫동안 노동자에게 주거 공간을 내어줬던 서구의 절망의 죽음은 생산 장소에서 재생산 장소로 이어지는 연쇄적 경로를 거친 결과다.

절망의 죽음, 정치적 죽음

제9회 지방선거를 10여일 앞둔 23일 오후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일원에서 '내기 살고 싶은 지역, 투표로 만듭니다'라는 주제로 부산시선관위의 '광안리 M 드론 라이트쇼' 활용 투표 참여 홍보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부산의 절망의 죽음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부산 원도심의 흥망성쇠가 국가적 '계획'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 이 죽음은 정치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가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한 부산시장 후보는 청년의 자산 형성을, 다른 후보는 민생 지원과 일자리 창출을, 또 다른 후보는 출퇴근길 반값 교통비를 1호 공약으로 내걸었다. 시민의 자격을 물어 차별하거나, 한시적 지원을 수단 삼는 제도들은 언제나 가장 불리한 사람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아 왔다. 어쩌면 부산의 절망의 죽음은 그 표지일지도 모른다.

부산은 유독 '고령화'를 핑계로 죽음의 문제를 뒷전에 둔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결국 부산의 절망의 죽음이 불평등의 문제라는 사실은 역대 선거에서 건강과 죽음은커녕 보건의료가 주요 공약으로 내걸린 적이 없다는 한탄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지금 부산에 필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고, 사람들이 그 노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지역사회를 복원하는 일이다. 지역사회를 떠나지 않고도 충분한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럼으로써 그곳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권력을 되돌려주는 것.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그런 결단을 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SC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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