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공덕회 자원봉사자들의 쓰레기 수거 모습
자제공덕회
1966년 대만 화롄(花蓮)의 작은 사찰 보명사에서 정옌 스님과 30명의 주부로 시작한 자제공덕회는 오늘날 전 세계 60여 개국에 지부를 둔 대규모 국제 구호 기구로 성장했다. 초기에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소규모 봉사 단체로 출발한 자제공덕회는, 1990년 정옌 스님이 "박수치는 두 손으로 쓰레기를 줍자"고 역설한 것을 계기로 거대 비영리 단체로 성장한다.
현재 자제공덕회는 대만 전역 8626개 자제 재활용센터를 운용하며 20만 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한다. 또한 2024년 12월 31일 기준 전 세계 누적 봉사자 1686만 명, 누적 기금 861억 원을 달성하며 국제 구호 기구로써 발돋움 중이다.
자제공덕회가 구축한 자원 순환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산하 사회적 기업인 대애감은과학기술(大愛感恩科技, DA.AI Technology)에 있다. 2008년 12월 설립된 대만 최초의 친환경 제품 생산 전문 비영리 기업으로 자제공덕회가 경영하는 자원 순환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대만 전역에 설치된 자제 재활용 센터에서는 매년 약 2000톤에 달하는 페트병을 수거하여 정밀한 세척 및 분류 과정을 진행한다. 현재까지 이 시스템을 통해 재생된 페트병은 약 5억 3600만 개를 상회한다.[15]
자제공덕회의 재활용 센터를 통해 수거된 원료는 대애과기의 고도화한 공정을 거쳐 재활용 폴리 칩, 폴리에스터 섬유 및 직물로 가공된다. 이 생산 공정은 네덜란드 피터슨 컨트롤 유니온으로부터 '글로벌 재활용 표준(GRS)' 인증을 획득하며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렇게 가공된 원료는 친환경 담요와 의류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다시 자제공덕회의 구호활동을 통해 사회적 취약 계층지원에 환원한다. 특히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제작된 친환경 담요는 독일 TÜV 라인란트와 미국 환경보호청(EPA)으로부터 탄소 발자국 인증을 받으며 환경적 부하가 적은 제품임을 입증받았다.
지역사회와 함께 운영되는 재활용센터, 산하 사회적 기업, 사찰 재단이 협력해 환경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자제공덕회의 사례는 화롄의 작은 사찰, 그리고 정옌 스님의 불교적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옌 스님과 소수의 주부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은 이제 사찰이 지역과 협업하여 어떻게 지구촌의 지속가능성을 책임지는 핵심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지 그 실천적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생애 주기 복지 기관으로 변신한 고창 선운사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자헌 스님은 지역 에너지 자립이나 취약계층 지원, 환경 보전 활동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불교 가르침의 현대적 표현일 뿐이라고 말한다. 수행과 사회적 실천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자비 정신은 법당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완성된다고 역설한다.
자헌 스님은 한국 불교 내부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 같은 비종교적 행위를 불교와 사회가 상생할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봤다고 전했다. 교단 주도하에 주최되는 불교박람회와 템플 스테이 등 다양한 복지 문화 행사가 그 예시이다. 비록 직접적인 설법과는 상이한 방식이겠으나, 지역사회에 한 걸음 다가감으로써 공동체의 지속과 함께 불교의 지속가능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는 수행과 포교라는 종교적 본질을 넘어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실천하는 불교를 지향한다. 이러한 신념은 2007년 9월 고창군 종합사회복지시설 수탁 운영으로 첫 발을 내디뎠고, 이후 2011년 12월 30일 선운사 산하 독립 법인인 사회복지법인 선운사 복지재단이 공식 출범하며 선운사는 본격적으로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2014년 선운사는 종교 시설의 한계를 벗어나 지역민 전체를 위한 선운교육문화회관 건축을 결정한다. 지상 3층 규모의 선운교육문화회관은 베이커리 카페와 갤러리,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 및 아트홀 등 고창 지역 주민의 문화생활을 장려하고 있으며 현재도 지역 오케스트라, 노인 대학 등 고창군 문화 활동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17]
선운사는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선운사 복지재단을 설립하여 다양한 지역 내 복지시설을 수탁 운영 중에 있다. 2012년에는 고창군으로부터 고창군사회복지시설을 위탁받아 고창군종합사회복지관과 선운기초푸드뱅크, 고창군노인복지관의 실질적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2024년에는 고창군 육아종합지원센터를 맡아 지역 어린이집 관리, 육아물품 지원사업과 동시에 2013년 개원한 고창보듬이나눔이어린이집의 운영과 병행하고 있다.
조기룡 교수는 "선운사가 일회성 지원에 앞선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제공을 통해 불교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영유아 돌봄부터 청소년 성장 지원, 노인 복지에 이르기까지 지역 주민들의 생에 전 단계에 사찰이 함께하는 복지 시스템을 구축한 것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25년 8월 30일 고창 선운교육문화회관 잔디마당에서 지역 주민의 참여로 구성된 작은 음악회가 진행중이다.
선운교육문화회관
광명 금강정사의 행원 사회적협동조합
1997년부터 경기 광명시 금강정사는 신도회를 중심으로 지역 취약계층 밑반찬 배달, 주민 무료 급식 등 지역 공동체 봉사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동시에 많은 인력과 재정의 문제로 봉사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2012년 신도회가 정부의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금강정사는 단순 기부활동을 넘어선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모델의 가능성에 처음으로 주목한다. 이후 2013년 영리법인 ㈜행원을 거쳐 2017년 행원 사회적협동조합을 조직해 사회 기여를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된다.
사회적협동조합 행원 전형근 상임이사는 비영리 협동조합의 철학과 운영 측면 모두에서 사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익 추구가 불가능한 사회적 기업이기에 자리를 잡기까지 사찰 차원의 지원과 주도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전 상임이사는 다음과 같이 과정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주지스님이 행원의 역할을 아무리 강조해도 사회적기업 이해 부족으로 쓸데없는데 돈을 쓰고 조합을 개인 것으로 치부하는 오해 속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팽배했습니다. 주지스님이 지속적으로 행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조합은 자기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묵묵히 헤쳐 나오면서 조합의 사업이 확장되고 흑자로 전환되고, 지역에서 역할과 평판이 좋아지면서 이 사업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행원의 자산규모는 2019년부터 지속적으로 성장해 마지막 공시 2024년에는 출자금의 약 8.6배에 달한다. 금강정사의 주도와 지원으로 10년의 적자 상태를 딛고, 2023년 흑자 전환을 거친 행원은 2026년 현재, 사찰의 도움 없이 완전히 독자적인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고, 2022년에는 광명시에서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우수 기업 인증을 받는 등 사찰 주도 사회기여 협동조합의 우수 사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행원 사회적협동조합 5개년 자산규모 변화 추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한국 불교의 가능성과 방향
동국대학교 불교학회 법사 지안스님은 세계에는 이미 사찰, 스님 단위의 소박한 실천이 지속가능한 수익성, 사회기여 모델로 발전해 자리 잡은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선운사, 금강정사의 사례를 보아 알 수 있듯, 이미 적지 않은 사찰이 지역 공동체의 구심점으로서 속세에 긍정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대학생 불교동아리의 활성화, 사찰의 환경운동 참여, 도심 포교당의 확대, 사찰 텃밭을 활용한 먹거리 나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명상 프로그램 등 크고 작은 실천 가운데 한국의 불교는 이미 산에서 내려와 대중의 삶 한가운데 머물려는 의지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부에서 사찰경영을 가르치는 자헌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일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뒤 홀로 머물지 않고 사람들 곁으로 걸어 나오셨듯, 사찰 역시 담장 밖으로 나가야 할 때라고 봅니다. '산에서 내려온 사찰'은 사찰이 물리적 위치를 옮긴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대중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또한, 사찰이 산을 내려오는 것은 불교의 권위를 내려놓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이와 삶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사찰은 지역사회의 가장 따뜻한 이웃이자, 함께 내일을 고민하는 도반이 되어야 합니다."
글: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구지원·최재원 기자(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윤진 ESG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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