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 핵발전소 송전탑 아래에 2025년 산불이 지나간 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의 삶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핵발전소 원자로의 상태에 달려 있고, 핵발전소는 늘 태풍과 산불, 지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정윤영
원자로에서 우라늄을 태운다. 여기서 나온 에너지 30%만 발전기로 가고 남은 열은 온배수로 모두 바다에 버려진다. 원자로 1기에서 배출하는 온배수는 초당 최소 50톤이 넘고, 바다의 평균온도보다 7도 이상 높다. 핵발전소를 '바다 데우기 장치(고이데 히로아키, <원자력의 거짓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다를 뜨겁게 데우는 온배수와 함께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 디메틸폴리실록산 같은 소포제를 비롯해 유해화학물질이 배출된다.
뜨거워진 바다에는 미역이 자라지 않는다. 기장에서 판매하는 미역의 상당수는 다른 지역에서 키운 뒤 기장에서 말려 기장미역이 된다. 핵발전소 배출물질로 사라지는 게 미역과 다시마뿐 일까? 2024년 기장 어민 470여명이 온배수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라며 소송한 결과,
일부 승소 판정을 받았고, 주민의 갑상샘암 발병에 대해 한수원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처음 받은 곳도 기장이다.
핵을 안고 사는 마을 사람들이 생계를 잃고 암에 걸리며 50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작고 소박한 마을에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고 식당과 원룸촌이 생겼다. 복지관과 스포츠문화센터, 해수탕이 지어지고, 학생들은 매년 한수원 장학금을 받고 주민들은 냉동창고 등을 지원받는다. '원전 옆에서 못 살겠다'던 주민들이 달라졌다. 박상현은 '핵발전소 마을이라는 프레임'이 있다며 발전소에 가까워질수록 '연루되어 끌려다닌다'고 했다.
"마을 공동체를 휘감은 다음에 반대하는 사람을 쳐내는 거예요. 예전에 월성(핵발전소)에서 '무료 국수 맛있게 먹었잖아' 이런 현수막 달았잖아요. 주민을 보는 태도가 딱 그거예요.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그냥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요. 이제 지역 주민들은 발전소가 들어온다고 하면 반기게 됐죠."
핵발전소 근처 해변은 예쁜 카페와 유명식당이 생기면서 지역의 명소가 됐고, 주민들은 마치 피폭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지만 박상현은 원자로 돔을 보고 있으면 '흉물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보상만 하면 정말 괜찮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어서다. 핵발전소는 단지 건물이 아니니까. 원자로는 '그냥 쇳덩이'가 아니니까. 고리, 아니 전국의 핵발전 32기를 모두 영구 정지한다고 끝이 아니다.
핵발전소는 방사능의 묘지
고리 2호기 바로 옆에 있는 고리 1호기는 2017년 영구 정지되었고, 2025년 6월 해체 결정되었다. 12년에 걸쳐 해체작업을 완료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핵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없앨 수 없고, 원자로 해체만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고준위 핵폐기물은 우라늄을 태울 때 만들어진 방사성 물질이다. 후쿠시마 사고로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된 플루토늄과 스트론튬, 세슘같은 방사성 물질은 사라지지 않고 비와 바람을 타고 땅과 바다를 오염시키며 생물농축을 일으킨다. 그런 사용후핵연료가 고리 1호기에만 485다발이 있고, 전국에 50만 다발 넘게 쌓여 있다.
고리 2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는 748다발이 저장되어 있다. 포화율은 현재 93.8%. 수명연장으로 저장조 포화시점은 3년 앞당겨졌고, 2028년이면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곳이 더는 없다.
그러자 한수원은 보관 간격을 줄여 포화시점을 늘리겠다며 조밀저장대를 설치하기로 의결했고, 정부는 사용후핵연료를 부지내저장시설에 보관할 수 있도록 2025년 2월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을 통과시켰다.
임시저장시설이라고 하지만, 사실 영구처분장이 될 확률이 높다. 영구처분장은커녕 중간저장시설조차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핵폐기물 문제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핵발전소는 그 자체로 '방사능 묘지(고이데 히로아키, <원자력의 거짓말>)'가 된다.
고리 2호기 이후 3·4호기와 한빛 1·2호기도 줄줄이 연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원안위에서 통과시키면 연장을 막을 방법은 딱히 없다. '비민주적인 환경'에서 핵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주민들이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을 반대하며 함께 시위했던 적이 있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후였다. 이제 사고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사고 장면은 잊혔고 핵발전소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한수원의 논리에 휘말리는' 동안 멀리 사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일'이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을 줄이겠다는 약속들이 있었는데 자꾸 잊히는 것 같아요. 다시 환기하고 안전한 사회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사회로 갔으면 좋겠어요.
핵폐기물은 영화처럼 다른 차원으로 보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핵폐기물을 치운다는 것 자체가 공상과학이에요. 지금까지 지역이 핵폐기물을 떠맡아왔는데, 앞으로도 10만 년(방사능 반감기) 동안 지켜야겠죠. 10만 년이면 한 종(種)이 진화하는 시간인데, 이걸 잘 격리해두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서울에서 기장까지 다섯 시간이 멀기만 한 내가 10만 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해본다. 아무리 세어보아도 10만 년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핵폐기물을 안고 살아야 하는 시간이 그저 영원처럼 느껴진다. 다만 여전히 그 안에는 노동자가 일할 것이고, 그 주변에 사는 생명들이 있을 것이다.
핵발전이 없었다면 그런대로 우린 살아갔을 것이다. 이제 핵발전소가 모두 멈춰도 영원히 썩지 않는 79만 다발의 핵쓰레기가 쌓인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영원히 대물림되는 재난이 됐다. 재난 앞에서 핵산업이 아니라 생명의 편에 서려고 애쓴 흔적들이 해법이 되기를, 그 해법이 함께 대물림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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