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은 샤이론을 처음으로 ‘만져준 사람’이자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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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론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딱 한 명 있다. 샤이론이 처음 '리틀'이라고 불리던 어린 시절부터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냐고,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라고 말해주던 친구 케빈이다. 겉으로 보기에 케빈은 너무나 '평범한 남자'처럼 보인다. 학교에서 그는 섹스 무용담과 주먹질로 남자다움을 과시한다.
하지만 케빈은 샤이론과 단둘이 있을 때만큼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샤이론 역시 케빈 앞에서는 상대의 눈을 마주치며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정상성이라는 틀은 사람들을 "나 자체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감옥이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얼굴을 잠시 벗어던진 두 사람은 달빛 아래 입을 맞춘다. 케빈은 샤이론을 처음으로 '만져준 사람'이자 첫사랑이다.
그러나 행복은 찰나일 뿐. 케빈은 샤이론을 집요하게 괴롭히던 아이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샤이론을 배신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은 약자와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약자를 돕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약자의 위치로 밀려날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케빈은 자신의 성정체성이 탄로 날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피투성이가 된 샤이론은 후안이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무엇이 될지 스스로 결정하기로 한다.
3부의 제목은 케빈이 샤이론에게 붙여준 이름, '블랙'이 된다. 샤이론은 후안이 그랬던 것처럼 근육질로 몸을 키우고 마약 판매상이 된다. 이제 아무도 샤이론을 약하다고 괴롭히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샤이론은 여전히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다. 어릴 적 '리틀'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깊은 외로움 속에 살아간다. 샤이론은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한 소설 <어떤 물질의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 지구에 온 외계인 '라오'가 등장한다. 라오가 관찰한 결과, 눈, 코, 귀, 손가락 크기, 머리카락이 나는 방향, 눈썹 개수까지, 지구에서 똑같은 생명체는 하나도 없다. 라오는 라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웃긴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생각보다 중요해요. 그걸 알아야 해요. 이 지구에 같은 인간은 없어요. 모두가 다 서로에게 외계인인 걸, 모두가 같은 사람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요."
지구에 똑같은 인간은 없고 우리는 서로에게 외계인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저 자기가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세상은 성별, 장애, 외모, 나이, 성적 지향, 출신 지역, 인종, 혼인 상태, 학력 등을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우월함과 열등함을 판단한다. 나 역시 이러한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과연 몇 가지 기준만으로 한 사람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기준이 곧 그 사람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는 누가 만든 것일까.
<문라이트>에서 내가 몇 번이나 돌려볼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짤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샤이론이 케빈이 요리사로 일하는 식당에 들어가는 장면. 영화를 통틀어서 샤이론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내리는 선택은 이 순간이 유일하다. 또 다시 상처받을지도 모르지만, 샤이론은 케빈을 찾아가기로 선택할 용기를 낸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사랑은 우주를 가로지르기도 하는 걸요"라는 라오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흔히 아이의 행복이 부모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 물론 아이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의 믿음과 지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며 아이가 살면서 관계 맺는 사람, 공기처럼 마주하는 사회가 모두 아이의 세계가 된다. 그리고 이 복잡하고 모순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아이의 몫이다.
그렇다면 양육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조금 더 평등하고 조금 더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 교육감 선거 후보로 나온 사람이 거리에 '퀴어 동성애 교육 추방!'이라는 혐오 표현이 버젓이 적힌 현수막을 내건 것을 보고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고 부정하는 행위에 어떻게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일까. 양육자이자 어른이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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