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5 17:43최종 업데이트 26.05.2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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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아이답지' 않은 아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 어딘가 조금은 '이상한 아이들'을 들여다봅니다.[기자말]
'가난한 흑인. 한부모 가정. 마약 중독자 엄마. 동성애자'

영화 <문라이트>의 샤이론은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아이다. 샤이론에게는 세 개의 이름이 있다. '리틀', '샤이론', '블랙'. 영화는 각각 리틀-샤이론-블랙이라는 제목이 붙은 3부로 구성돼 있다. 유년 시절부터 고등학생,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의 모습이 순차적으로 그려진다.

체구가 작고 내성적인 샤이론은 '리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남자아이들의 세계에서 '남성성의 결핍'은 곧 약함의 증거가 되고 괴롭힘의 빌미가 된다. 영화 1부에는 샤이론이 아이들에게 쫓겨 마약 소굴이라 불리는 동네의 한 창고에 숨어드는 모습이 나온다. 마약 판매상인 후안(마허샬라 알리)이 운영하는 곳이다. 창고 안에서 홀로 공포에 떨고 있는 조그만 아이를 발견한 후안은 샤이론을 밖으로 끄집어낸다. 뭐 좀 먹으러 가자며 후안은 샤이론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자. 여기보다 나쁘겠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나오미 해리스)는 샤이론이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맞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그저 방치한다. 자신조차 지킬 힘이 없는 엄마는 점점 더 마약에 빠져들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엄마는 샤이론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친구도, 가족도, 기댈 곳 하나 없는 어린 샤이론에게 후안과 그의 여자친구 테레사(쟈넬 모네)는 안식처 같은 존재다. 후안은 샤이론에게 음식을 내어주고, 잠을 재워주고,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법을 알려준다. 물에 떠오르는 방법을 터득한 샤이론에게 후안은 "넌 세상 한가운데 있는 거야"라고 말하며 기뻐한다. 자존감은 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존중받는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 타인이 꼭 가족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달빛 아래 파란 아이들

후안은 샤이론에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려준다.CGV아트하우스

샤이론은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이유로 소외되고 배척당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 강한 남성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후안은 그런 샤이론을 유머러스하고 다정하며 무엇보다 조심스럽게 대한다. '호모가 뭐냐'라고 묻는 샤이론의 질문에 후안은 테레사와 눈을 마주치며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신중하게 고른다. 후안은 게이라는 말은 괜찮지만 호모라는 말은 참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자신이 게이인지 아닌지는 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고, 지금 당장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이러한 태도는 샤이론에게 함부로 낙인을 찍고 힘으로 억누르는 이들의 거침없음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영화는 진짜 강함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남성성'이 아니라,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섬세함과 존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흑인으로서 쿠바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마약 판매상으로 살아가며 누구보다 많은 위기를 겪었을 후안은 샤이론에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려준다.

해변에서 수영을 가르쳐주던 날, 후안은 샤이론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후안 : "한번은 어떤 할머니를 지나쳐 가고 있었어. 미친 듯이 들떠서 뛰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날 잡더니 그러는 거야.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이제 널 그렇게 불러야겠다. 블루'."

샤이론 : "그럼 아저씨 이름은 블루예요?"

후안 : "아니.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돼.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

달빛 아래에서는 흑인 아이도 백인 아이도 모두 파랗게 보인다. 이는 편견을 걷어내고 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인 동시에, 오직 달빛 아래에서만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안온한 달빛 아래 숨을 고를 수 있는 순간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영화에는 차갑고 더러운 형광등 불빛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마저도 언제 꺼질지 모르는 형광등 아래에서 샤이론의 '다름'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다름을 '틀림'이자 '약점'이라 생각하는 이들의 잔인함까지도 함께.

달빛 아래에서는 흑인 아이도 백인 아이도 모두 파랗게 보인다CGV아트하우스

후안이 세상을 떠난 뒤 아이들의 괴롭힘은 더욱 악질적으로 변한다. 고등학생이 된 샤이론에게 남자아이들은 노골적인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를 드러내며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더 이상 후안이 없는 후안의 집을 찾은 샤이론에게 테레사는 "내 집에서는 고개 숙이지 마"라고 말한다. 이 집에서는 "사랑과 자부심"을 보여주라고. 테레사는 샤이론을 위해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침구를 정리해 주며 언제든 찾아와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테레사의 다정함만으로 샤이론이 매일같이 맞닥뜨려야 하는 혐오의 세계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 긴장 속에 살아가야 하는 샤이론은 "너무 많이 울어서 어떨 땐 눈물로 변해버릴 것 같아"라고 말한다. 잔뜩 웅크린 몸,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영화를 보는 내내 샤이론의 지독한 외로움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렸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영화 속에서 아이들을 볼 때 과거의 내가 아니라 자꾸만 내 아이를 겹쳐 보게 된다. 내 아이가 만약 샤이론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나는 과연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후안과 테레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아이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천선란의 단편소설 <어떤 물질의 사랑>의 주인공 라현은 배꼽이 없다. 성별도 성기도 없는 라현은 남자를 사랑하면 남자가 되고, 여자를 사랑하면 여자가 된다. 라현의 엄마는 이 모든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엄마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두 가지다.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럴 수도 있지.'

엄마는 세상이 "정상이라고 착각하는 것들"에 라현을 끼워 맞추지 않고, 라현이 그저 "너 자체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라현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남자가 되었다가 여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여자 같은'·'남자 같은'이라는 말은 허울에 불과하며, 자신만큼이나 다른 사람들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금씩 이상하고 독특한 존재라는 것을. 라현은 세상이 이토록 다양한데, 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누군가를 규정지으려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사랑

케빈은 샤이론을 처음으로 ‘만져준 사람’이자 첫사랑이다.cgv아트하우스

샤이론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딱 한 명 있다. 샤이론이 처음 '리틀'이라고 불리던 어린 시절부터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냐고,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라고 말해주던 친구 케빈이다. 겉으로 보기에 케빈은 너무나 '평범한 남자'처럼 보인다. 학교에서 그는 섹스 무용담과 주먹질로 남자다움을 과시한다.

하지만 케빈은 샤이론과 단둘이 있을 때만큼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샤이론 역시 케빈 앞에서는 상대의 눈을 마주치며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정상성이라는 틀은 사람들을 "나 자체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감옥이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얼굴을 잠시 벗어던진 두 사람은 달빛 아래 입을 맞춘다. 케빈은 샤이론을 처음으로 '만져준 사람'이자 첫사랑이다.

그러나 행복은 찰나일 뿐. 케빈은 샤이론을 집요하게 괴롭히던 아이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샤이론을 배신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은 약자와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약자를 돕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약자의 위치로 밀려날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케빈은 자신의 성정체성이 탄로 날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피투성이가 된 샤이론은 후안이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무엇이 될지 스스로 결정하기로 한다.

3부의 제목은 케빈이 샤이론에게 붙여준 이름, '블랙'이 된다. 샤이론은 후안이 그랬던 것처럼 근육질로 몸을 키우고 마약 판매상이 된다. 이제 아무도 샤이론을 약하다고 괴롭히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샤이론은 여전히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다. 어릴 적 '리틀'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깊은 외로움 속에 살아간다. 샤이론은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한 소설 <어떤 물질의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 지구에 온 외계인 '라오'가 등장한다. 라오가 관찰한 결과, 눈, 코, 귀, 손가락 크기, 머리카락이 나는 방향, 눈썹 개수까지, 지구에서 똑같은 생명체는 하나도 없다. 라오는 라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웃긴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생각보다 중요해요. 그걸 알아야 해요. 이 지구에 같은 인간은 없어요. 모두가 다 서로에게 외계인인 걸, 모두가 같은 사람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요."

지구에 똑같은 인간은 없고 우리는 서로에게 외계인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저 자기가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세상은 성별, 장애, 외모, 나이, 성적 지향, 출신 지역, 인종, 혼인 상태, 학력 등을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우월함과 열등함을 판단한다. 나 역시 이러한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과연 몇 가지 기준만으로 한 사람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기준이 곧 그 사람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는 누가 만든 것일까.

<문라이트>에서 내가 몇 번이나 돌려볼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짤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샤이론이 케빈이 요리사로 일하는 식당에 들어가는 장면. 영화를 통틀어서 샤이론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내리는 선택은 이 순간이 유일하다. 또 다시 상처받을지도 모르지만, 샤이론은 케빈을 찾아가기로 선택할 용기를 낸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사랑은 우주를 가로지르기도 하는 걸요"라는 라오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흔히 아이의 행복이 부모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 물론 아이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의 믿음과 지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며 아이가 살면서 관계 맺는 사람, 공기처럼 마주하는 사회가 모두 아이의 세계가 된다. 그리고 이 복잡하고 모순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아이의 몫이다.

그렇다면 양육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조금 더 평등하고 조금 더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 교육감 선거 후보로 나온 사람이 거리에 '퀴어 동성애 교육 추방!'이라는 혐오 표현이 버젓이 적힌 현수막을 내건 것을 보고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고 부정하는 행위에 어떻게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일까. 양육자이자 어른이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hongmilmil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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