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2 16:11최종 업데이트 26.05.2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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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학생들 앞에서 일본어로 한국 사법부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 법률 특강을 마쳤다. 연구보고서 작성이 남아있긴 하지만, 연구원으로서 현지에서 가장 큰 숙제를 마친 셈이다. 모든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정신적 회복이 필요했다. 그동안 바빠서 미뤄뒀던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문득, 매주 나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나카니시씨의 권유가 떠올랐다. "김 상, 오래된 신사를 보면 일본을 제대로 알 수 있어요. 이즈모타이샤라는 유명한 신사가 있어요. 거기는 신들의 신사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도 아주 커요. 근처에 신지코라는 큰 호수도 있는데 자전거 일주하기도 좋을 거예요."

시마네현 자전거 일주, 첫 도착지는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특강을 마친 그날 밤 오사카 우메다에서 심야 고속버스에 미니벨로를 실었다. 밤 11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다음 날 새벽 6시 20분에 이즈모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인구 20만이 채 되지 않는 이즈모시는 한국의 동해 쪽을 마주하고 있다. 알고 보니 시마네현 소속이다. 하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바로 그 지역이라니.

그래도 어쩌랴. 여기까지 온 이상 곳곳을 둘러봐야지. 버스에서 선잠을 잔 탓인지 몸은 피곤했지만, 기지개를 한 번 편 후 가방에 넣어둔 접이식 미니벨로를 다시 편다. 여기서부터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다. 2박 3일간 시마네현에서는 버스나 전철 같은 다른 교통수단 대신 미니벨로만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10km를 달려서 이즈모타이샤에 도착했다. 연간 200만 명이 찾는다는 이곳은 상당히 규모가 컸다. 국보로 지정된 본전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본 신화에 따르면 매년 음력 10월이 되면 800만에 달하는 일본 전역의 모든 신들이 이곳에 모여서 회의를 연다고 한다.

그보다 더 내 눈길을 끈 건 거대한 일장기였다. 높이가 47미터로 일본 최대라고 한다. 일본 생활 반년 동안 일장기를 의식한 기억이 거의 없는데, 위압감을 줄 정도로 거대한 일장기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여기는 일본 땅. 그중에서도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삼고자 하는 지역에 나는 와 있다.

이즈모타이샤의 일장기신사에서 내 눈길을 끈 건 거대한 일장기였다. 높이가 47미터로 일본 최대라고 한다. 일본 생활 반년 동안 일장기를 의식한 기억이 거의 없는데, 위압감을 줄 정도로 거대한 일장기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김용국

지역 명물인 소바로 요기하고 자전거를 타고 이나사 해변으로 향한다. 해변에는 벤텐지마라는 신사가 있다. 섬이라기보다는 작은 암석에 가깝다. 일본은 무인도건 암석이건 가리지 않고 경관이 좋은 곳에는 도리이와 신사를 만들어 신성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습성이 강한 듯싶다.

이즈모타이샤 전경일본 시마네현 이즈모시에 있는 이즈모타이샤. 신화에 따르면 매년 음력 10월이 되면 800만에 달하는 일본 전역의 모든 신들이 이 신사에서 모여서 회의를 연다고 한다.김용국

100년도 더 된, 일본에서 가장 높은 등대

이곳에서 1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100년도 더 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석조 등대(히노미사키 등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경치는 좋지만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들다"는 리뷰가 대다수였다. 자전거로 무리일 듯싶어 망설였지만, 언제 다시 와보겠나 싶어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내 선택을 후회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리도 거리지만 갓길도 없고 꾸불꾸불한 고갯길이 위험천만이다. 터널도 3개나 지나야 했다. 뒤에서 추월해 오는 차들을 의식하랴, 좁은 차도를 오르락내리락하라 체력 소모가 많았지만, 잔뜩 긴장한 탓인지 힘든 줄을 몰랐다.

알고 나서는 시도하지 못할 무모한 도전이었다. 자전거로 등대까지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래도 높이 43미터 등대에서 바라본 절경이 피로를 씻게 해준다. 입장료 300엔. 일본 치곤 저렴한 편이다. 등대 내부에는 엘리베이터도 없다. 신발을 벗어 놓고 160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꼭대기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본다. 여기가 시마네현 최서단이고 왼편이 한국 방향, 동해이다. 저쪽 멀리 어딘가에 독도가 있을 것이고 더 지나면 한국 땅이다. 오랜만에 고국 쪽을 바라보니 심경이 묘하다.

등대에서 바라본 동해시마네현 최서단에 있는 히노미사키등대에서 바라본 등대. 보이는 쪽이 한국 방향, 동해이다. 저쪽 멀리 어딘가에 독도가 있을 것이고 더 지나면 한국 땅이다. 오랜만에 고국 쪽을 바라보니 심경이 묘하다.김용국

근처에는 후미시마라는 무인도가 있다. 사람이 접근하지 않아서인지 수천 마리의 괭이갈매기가 모여 있었다. 그 안에도 도리이와 신사가 있었다. 일본인의 신사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구나 싶었다.

해변의 신사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이즈모시 이나사 해변. 해변에는 벤텐지마라는 신사가 있다. 섬이라기보다는 작은 암석에 가깝다. 일본은 무인도건 암석이건 가리지 않고 경관이 좋은 곳에는 도리이와 신사를 만들어 신성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습성이 강한 듯싶다.김용국

등대를 출발해 다시 벤텐지마로 돌아오니 점심 무렵이다. 식당도 보이지 않아서 점심은 빵 하나로 때우고 숙소가 있는 마쓰에시로 향했다. 자전거로 도로와 논길을 번갈아 가면서 한참을 달렸다. 엉덩이와 다리가 아파지기 시작했지만 쉬지 않고 간다. 수십 킬로를 달렸건만 논밭만 펼쳐져 있을 뿐 그 흔한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자전거로 임진강을 끼고 문산을 거쳐 임진각까지 가는 느낌이랄까.

얼마나 달렸을까. 시마네현의 상징과 같은 호수인 신지코가 보인다. 이제 다 왔나 싶었는데 아직도 멀었다. 호수 둘레만 50킬로미터. 숙소까지는 아직도 15킬로 이상이 남았다. 남은 힘을 다 짜내어서 마쓰에역 근처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다. 이날 하루만 70킬로 이상 자전거를 탔다. 저녁에는 선술집에서 맥주를 곁들여 밥을 먹은 뒤 뻗은 듯 잠이 들었다.

마쓰에성 옆에 '다케시마' 자료관이

다음날은 신지코 호수의 명물인 재첩으로 만든 된장국과 라멘을 맛보았다. 일본에서 해장국 비슷한 국물은 처음 맛보았는데,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2일 차는 하루 종일 굵은 비가 쏟아진다. 자전거를 타기 어려울 정도다. 걸어서 마쓰에성, 현립미술관, 신지코 호수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쓰에성 천수각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몇 안 되는 곳으로 시내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400년 넘도록 성이 잘 유지되고 있고, 주변 경관을 지키기 위해 엄격하게 고도 제한을 하는 점은 부러울 정도였다.

천수각에서 마쓰에시 전체를 내려다본 뒤 걸어서 나오니 시마네현 청사가 보인다. 그곳에 문제의 '다케시마 자료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한마디로,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들어가 보니 현청 건물 일부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자료실은 직원들의 근무 공간을 겸하고 있었다. 의자와 책상 배치로 보아 10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는 규모였다. 이곳에서 비치한 책자나 무료로 배포 중인 각종 자료만 해도 상당했다. 숙박세 등 각종 세금이나 여행에서 소비하는 비용이 이런 일을 하는 공무원들 월급을 주거나 영토권을 주장하는 비용으로 쓰인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다케시마 자료실시마네현청에 자리잡은 다케시마 자료실.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자료실은 직원들의 근무 공간을 겸하고 있었다. 의자와 책상 배치로 보아 10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는 규모였다.김용국

주지하다시피 독도는 일제강점기 전인 1905년 일본이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하고자 시마네현으로 강제 편입하면서 가장 먼저 빼앗긴 대한제국의 영토였다. 그런데도 일본은 '일본 고유의 영토' 운운하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수십 가지 자료를 살펴보니 그들의 주장은 이랬다.

'독도는 한 번도 한국 영토였던 적이 없다. 따라서 일본이 빼앗았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영토인 독도를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 전후 일관되게 평화 국가의 길을 걸어온 일본은 평화적인 해결을 바란다.'

"일관되게 평화 국가의 길"을 걸어왔다는 대목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일본이 말하는 평화적인 해결이란 국제사법재판소로 독도 문제를 끌고 가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분쟁지역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일본으로선 결코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케시마 자료실 내부 모습다케시마 자료실 내부의 모습.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김용국

20년 전의 어느 연설문과 한 사람이 떠오르다

문득 20년 전의 어느 연설문과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른바 '독도 연설'로 알려진 한·일관계에 대한 특별담화문, 연설문을 낭독한 이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대통령 연설문을 유심히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2006년 4월 발표된 이 연설문은 문장 하나하나 가슴에 와닿았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입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 되었던 우리 땅입니다.
(중략)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2024년 윤석열 퇴진 촛불집회에 등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6년 4월 독도 연설 장면오마이뉴스

당시 노무현은 일본을 향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로 한국의 주권과 국민적 자존심을 모욕하는 행위를 중지하라"고 요구했지만, 일본은 그대로다. 최근 한일 정상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셔틀 외교'로 잦은 만남을 갖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과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한치도 변함이 없다. 시마네현의 아름다운 바다와 호수, 등대를 보면서도 마냥 즐겁지 않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신지코 자전거 여행시마네현에서의 마지막 날, 비바람이 거세다. 오사카로 복귀하기 전 아쉬운 마음에 자전거로 신지코 호숫가를 달리는데 맞바람에 쓰러질 듯할 정도다. 반년이 되어가는 일본 생활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도 은연중에 작용했을지 모르겠다.김용국

마지막 날, 비바람이 거세다. 오사카로 복귀하기 전 아쉬운 마음에 자전거로 호숫가를 달리는데 맞바람에 쓰러질 듯할 정도다. 반년이 되어가는 일본 생활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도 은연중에 작용했을지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이웃이 되려면 진정성 없는 웃음 대신 신뢰를 주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노무현의 일갈이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일본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고 그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하는 한, 한일 간의 우호 관계는 결코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이들 문제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한일 간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관한 일본의 어떤 수사도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문화적인 교류도 이 벽을 녹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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