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뿔소
이하늬
오록스는 멸종했지만, 놀랍게도 그 외형적 위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남은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의 '큰뿔소'입니다. 이들은 오록스의 특징을 놀라울 정도로 많이 지니고 있어, 고대 이집트인들이 길들였던 오록스의 후손이 아프리카로 넘어가 독자적인 품종으로 고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큰뿔소의 가장 압도적인 특징은 단연 이름처럼 거대한 뿔입니다. 이들의 뿔은 최대 2.4m까지 자라며, 그 밑동의 지름 또한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큼 굵습니다. 수의학적으로 볼 때 이 거대한 뿔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닙니다. 더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혈액을 뿔로 보내 열을 식히는 '냉각 시스템' 역할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그 거대한 뿔을 가지고도 좁은 숲길이나 가시덤불 사이를 놀라울 정도로 잘 통과한다는 것입니다. 큰뿔소들은 머리를 이리저리 부드럽게 움직여 뿔의 위치를 조절하며 좁은 통로를 지납니다. 이는 진화적으로 숙달된 놀라운 공간 지각 능력입니다. 몸길이 250~300cm, 몸무게 최대 730kg에 달하는 이들은 적갈색의 매끄러운 피부를 뽐내며 사바나의 태양 아래 서 있습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아프리카 유목민과 큰뿔소의 관계입니다. 우간다의 와투시족, 마사이족, 삼부루족에게 이 소들은 단순한 가축 이상의 존재입니다. 이들은 큰뿔소를 영적인 존재로 숭배하며, 결코 함부로 도살하거나 고기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젖조차 짜지 않고 오직 그들의 존재 자체를 가문의 재산이자 명예로 여깁니다. 유일하게 이용하는 것은 그들의 배설물인데, 이를 말려 땔감이나 건축 자재로 사용합니다.
오록스가 유럽에서 인간의 정복욕과 탐욕에 의해 사라져갈 때, 아프리카 유목민들은 이 거대한 생명을 신성시하며 수천 년간 공존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박물관의 뼈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오록스의 그림자를 큰뿔소의 위엄 속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늘 잃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1920년대 독일의 헤크 형제는 살아남은 소들 중 오록스의 형질을 가진 개체들을 선택 교배하여 조상을 '부활'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도는 나치즘이라는 광기와 결합하며 추악하게 변질되었습니다. 아리안족의 야성을 상징하는 도구로 오록스를 이용하려 했던 그들은, 복원 연구를 명분으로 폴란드의 비아워비에자 숲 주민들을 내쫓고 학살하는 만행을 방조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헤크 소'는 겉모습이 조금 닮았고 성격만 난폭해졌을 뿐 실제 오록스의 거대한 체구와 생태적 품격은 되찾지 못했습니다.
멸종이 남긴 교훈
동물원에서 멸종위기 종들을 돌보다 보면 종종 무력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좁은 방사장 안에서 정형 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을 치료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멸종위기 동물을 단 한 마리라도 더 살려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의 종이 사라지면 그와 연결된 수많은 곤충, 식물, 미생물이 연쇄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그물의 끝에는 결국 인간이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것은 단순히 '동물 한 마리'가 아니라 인류를 지탱하는 '생명 유지 시스템' 그 자체입니다. 오록스의 멸종은 우리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합니다. '조상을 잃은 생명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 식탁 위 풍요의 근원이었던 오록스를 지키지 못한 실수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오록스의 거대한 뿔이 다시는 유럽의 숲에서 돋아날 수 없을지라도, 그들이 남긴 교훈만큼은 우리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 내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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