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1 12:04최종 업데이트 26.05.2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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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게릴라칼럼'은 시민기자가 쓰는 지방선거 관련 칼럼입니다.[편집자말]
친구 A가 차린 '정치연구소'는 사실상 '원한해결사무소'가 됐다.챗gpt

친구 A가 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그는 꽤 오랫동안 '지역에서 하는 진보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다. 그는 몇 해 전 고향으로 돌아가 이른바 '지역 활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흔히들 아는 지역 활동이라는 것이 지역의 명망가들과 인맥을 쌓거나, 라이온스 클럽이나 로타리 클럽의 회장 이취임식에 참석하고,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회와 조기축구회에 나가고, 지역구 의원님이나 군수님(혹은 그들의 수족 같은 보좌관들)의 경조사를 챙기며 그들과 밥 먹고 술 마시는 일이다. 실제로 많은 신진 지역 정치인들이 그런 활동을 한다.


다소 비뚤어지게 말했지만, 그런 일들은 사실 꽤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 명망가들과 그런 명망가들이 속한 모임에서 지역의 대소사가 결정되는 일이 잦고, 주요한 정보 또는 긴밀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 그룹과 결속이 생기고, 그들과 교류 하며 지역 발전의 큰 그림을 그리거나 정책적 비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간간이 소식을 건너 들은 A의 지역 활동은 그런 활동들과는 사뭇 멀어 보였다. A는 라이온스 클럽이나 로타리 클럽 대신에 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나러 다녔다. 군수님이나 의원님들 경조사는 하나도 안 챙기는 것 같았지만, 동네 호프집에서 만난 형님과 누님들의 대소사는 뻔질나게도 챙기는 것 같았다. 다행히 지역의 러닝 크루 같은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는데, 인맥을 쌓기보다는 자기 러닝 기록 단축에 더 열중인 것처럼 보였다(하긴 지역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어르신들은 러닝 크루보다는 산악회와 조기축구회에 모이는 법이다).

A는 지난해 사무소를 하나 개소했다. 무슨 무슨 정치연구소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그이의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정치 연구보다는 각종 민원을 해결하고 골치 아픈 온갖 일들에 대한 하소연을 들어주는 곳이었다. 차라리 '원한해결사무소'가 더 적절한 이름이 아니겠냐고 놀리기도 했다. 코로나와 불경기로 문을 닫은 공장 사장님의 경매로 넘어간 아파트 문제, 취업 지원 센터 활용 방안, 연체된 핸드폰값 이야기 같은 게 그 사무소에서 오가고 있었다. '정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가 흔히 아는 말로 그것은 '정치'보다는 '오지랖'에 가깝다. 마을 제일의 오지라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가산을 탕진하고 가세가 기운 이야기는 클리셰다. 여기저기 국회의원 지역사무소를 기웃거리고, 구의원 공천을 찾아 떠도는 정치 낭인의 이야기도 숱하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거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혀를 차면서 '정치병이 들면 약도 없다'라는 고금의 진리를 되새긴다.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에게 '정치'란 강건너에서 일어나는 나라님들의 일이거나, 협잡꾼과 모리배의 일 둘 중의 하나다. 오죽하면 여기저기서 눈치를 보고 이간질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정치질'을 한다는 표현을 쓸까. 오늘날 정치라는 말은 혐오나 줄 세우기의 다른 이름처럼 쓰인다.

얼마 전 이 지면에 쓴 다른 칼럼에는 지방의회고 국회고 의원이 너무 많으니 다 잘라버려야 한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정치인들이란 어차피 나의 삶과는 상관없이 그저 자기 잇속이나 자기 정파의 잇속만을 챙기는 족속들이란 불신이 끝까지 치달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사실 지금의 정치인들은 (특히 지역의 유지들과 결탁해 지역 이권이나 챙기는데 급급한 정치인들은) 그런 말을 들어도 싼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과연 정치란 그런 것일까. '정치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6.3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첫날인 14일 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소 물품 세트를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치 혐오가 문제라는 말은 많이 했지만, 왜 우리가 정치를 혐오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묻는 말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가 정치를 혐오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너무 알 수 없는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 이번 달 카드값과 공과금과 대출이자가 문제인데, 뉴스 화면 속 양복쟁이들은 알 수 없는 말로 금융자본이 어쩌니 공적자금이 어쩌니를 이야기한다. 흔히 보수 정치인이라고 하는 정치인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서민의 편을 자임하는 진보정당이라는 곳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도무지 일상에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단어들을 떠들어댄다. 생활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도무지 '내 일'이 아닌 말들을 떠들어대면서 내 세금으로 월급 받고, 선거 때만 되면 자신들만 나라를 구할 듯 목소리를 높이니 미워할 수밖에.

둘째로는 정치가 말하는 것들이 도통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도 그렇다. 서울에 아파트를 더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싸우고, 부산 엘시티에 사는 현 시장이 시세 차익으로 번 돈이 수 억인지 수십 억인지를 두고 싸우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지금 내 월급으로 서울에 아파트나 부산 엘시티는 죽을 때까지 구경도 하기 힘들다.

성과급으로 십수 억을 내놓으라는 굴지의 대기업 노조가 파업하겠다는데 동네 가리지 않고 모든 정치인이 반도체 경쟁력이니 주가 하락이니, 또는 노동기본권 침해니 말을 얹고 있다. 그런데 그 온갖 말은 또 나랑 무슨 상관인가. 난 삼전닉스의 주식은커녕 노조도 없는데. 정치를 타자화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를 먼저 타자화한 것은 오늘날 정치의 현실이고, 정치를 혐오하지 말라고 하면서 가난하고 비루한 우리의 삶을 먼저 비웃은 것도 현실의 정치다.

그런데, 그래서, 그리고

그런데 현실의 한국 정치가 스스로 혐오를 자처하고 있으니 우리는 계속 정치를 강 건너 나라님 일이나, 모리배와 협잡꾼의 제 잇속 챙기기로 이해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역대 최대의 무투표 당선자가 발생했다. 선관위가 지난 14~15일 후보 등록을 접수한 결과 이번 지선의 무투표 선거구는 307곳, 후보자는 513명이며 이 중 504명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전 최다였던 490명의 무투표 당선을 넘어섰다. 특히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의 지역에서 150여 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우리가 지역 정치를 '지역 유지들과 아삼육인 정치 모리배들이 로타리 클럽에서 표 쓸어가는 일'로 여기는 동안 그것은 더욱 공고한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빚어낼 결과는 지긋지긋하다. 지역에 살고 있는 일상이 지치고 삶이 비루한 우리의 지지가 아니라 아파트와 엘시티를 몇 채씩이나 가진 유지들과 결탁한 지역의 모리배들이 '지방 정치인'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면, 당장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지역의 진짜 정치가 그마저도 설 땅을 잃는다.

읍내 하나뿐이던 공공병원을 없애고 골프모임 같이 하는 원장 선생님의 민간 병원만 남기거나, 로타리 클럽에서 친해진 지역 토호 건설사에 필요도 없는 개발 사업을 몰아줄 수도 있다. 지역 의료기관과 공공기관,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외주화와 비정규직화하며 민간 업체가 돈을 벌게 하는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서울로, 여의도로 가는 티켓을 사러 뻔질나게 서울 출장이나 다닐 수도 있다. 중앙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으면서 이번 지자체 선거에 도전하는 후보들 역시 우리는 이미 너무 흔하게 보고 있다.

번잡한 오지라퍼들에게 기회를

오지랖을 우리는 '연대'라고 부르기도 한다챗gpt

A가 며칠 전에 올린 선거운동 영상을 보다가 피식하고 헛웃음이 났다. 동네 먹자골목을 어슬렁거리면서 '오늘은 어디 가서 술을 얻어 마실까'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낯빛을 보아하니 이미 불콰한 것이 전작도 있어 보였다. '저녁 시간이니까 식사가 좀 될만한 식당에서 1차로 얻어먹고, 그다음에 호프집을 가야겠다'라고 중얼거리는 모습까지 영상에 나오자, 선거운동보다는 차라리 '동네 백수 한량의 브이로그'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웠다.

얼마 전 A는 금융 복지 상담사 양성 과정을 이수하고 자기 정치연구소 (실은 원한해결사무소에 더 가까운)에서 동네 사람들의 가계부채 관련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밥 얻어먹고, 술 얻어 마시면서도 가계부채와 대출이자에 대해 온갖 간섭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같이 일을 하던 시절에도 A는 늘 그랬다. 사회 초년생인 회사 동료들이 모여 온갖 푸념을 늘어놓으면 A는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온갖 오지랖을 부렸고, 자기가 이 일을 해결하는 데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처럼 굴었다. 번잡스럽고 피곤한 스타일의 오지라퍼 아저씨. 하지만 그 오지랖이 귀찮거나 밉지 않았다. 우리의 사소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이곳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행복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것이 곧 자기의 일이라는 것을 그는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 해 전, '오지랖을 우리는 연대라고 부른다'던 트윗이 화제가 된 적 있다. 혐오하지 않고 타자화하지 않는 진짜 정치의 모습은 어쩌면 힘없고 비루한 우리들의 연대, 나약하고 평범한 우리들의 더 넓은 오지랖이 아닐까.

이번 지방자치 선거에는 분명 A와 같은 오지라퍼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많은 수로 로타리 클럽을 기웃거리는 모리배들이 있겠지만) 술 마시며 대출이자 감면에 대해 떠들고, 연체된 핸드폰 요금을 해결할 수 있는 묘수를 같이 고민하고, 취업과 채무와 아이 학원비와 엄마 간병비에 대해 하소연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많은 A들이 (경남 김해시 한 선거구에 출마한 내 친구 말고도) 우리 마을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지어다. 꽤 괜찮은 오지라퍼가 더 넓은 오지랖을 부릴 수 있게 할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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