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KDI FOCUS 제132호, 2024)에 따르면, 여성의 출산에 따른 고용상 불이익 증가가 출산율 감소의 약 40%를 설명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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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어렴풋이 안다. 육아휴직도, 단축근무도 거의 없던 시절을 버텨온 여성 선배들이다.
그들은 지금의 제도가 없던 시절에 아이를 낳고 키우며 회사를 다녔다.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버텼고, 버텼으니까 지금 차석급이 됐다. 그 과정에서 아무도 그들에게 '힘들겠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시절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들은 아래를 본다. 후배들은 육아휴직을 쓰고, 단축근무를 하고, 노사 안건으로 제도 개선까지 요구한다. 그들에겐 현재 육아관련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목소리가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나때는 있지도 않았거나, 있어도 그림에 떡이었는데 도대체 뭘 더 바라는거냐?'는 생각이 솔직한 토로에 가깝다.
분노인지 허탈함인지 모를 그 감정을 나는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한다. 그들이 버텨온 시간 위에 내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쓰는 이 제도도 없었을지 모른다.
한국리서치 '2026 세대인식조사'(2026.03.11)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3%가 우리 사회의 세대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조사를 시작한 2021년 이후 매년 80%를 상회하는 수치다. 세대갈등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온 구조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나는 MZ세대도 아니고, 라떼 선배 세대도 아니다. 한국리서치 '2025 세대인식조사'에 따르면 40대는 아래 세대와의 협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비율(45%)과 윗세대와의 협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비율(44%)이 거의 같다. 위아래를 동시에 감당하는 세대. 나는 그 숫자 안에 있다.
선배의 희생 덕분에 내가 이 제도를 쓴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 당당하기가 어렵다. 제도를 쓸 때마다 느끼는 건 단순한 눈치가 아니다. 빚진 감각에 가깝다. 그 감각은 동료를 향한 미안함과는 결이 다르다. 시간을 건너온 감정이다.
선배가 옳고 내가 그른 것도 아니고, 내가 옳고 선배가 그른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같은 구조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근데 이 청구서, 누가 만들었나
그 복잡한 감정이 결국 서로를 향한다. 남편은 그걸 보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여자끼리 싸우는 게 아니라, 이 싸움 안에 여자들만 있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다.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 시대가 만든 청구서를, 지금 여성들끼리 나눠 내고 있다.
선배 세대가 희생했던 건 선택이 아니었다. 제도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희생의 과정에서 지금의 제도가 생겨났는데, 정작 그 제도를 운영할 인프라 — 대체인력, 보상 체계 — 는 여전히 없다. 빈자리를 채우는 건 또 옆 동료다. 구조가 바뀌지 않은 것이다.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 시대가 만든 청구서를, 지금 여성들끼리 나눠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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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KDI FOCUS 제132호, 2024)는 이렇게 밝혔다. 여성의 출산에 따른 고용상 불이익 증가가 출산율 감소의 약 40%를 설명한다고. 이 갈등은 개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 구조 실패의 산물이다.
민주노동연구원 보고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육아휴직과 육아시간 제도가 사회 전반의 일·가정 양립을 견인하는 '척도'가 되려면,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가'를 넘어 '누구에게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가'를 물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답은 인력과 예산의 문제라고.
그렇다고 지금의 제도를 쓰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제도는 쓰여야 제도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쓰는 사람이 빚진 감각을 안고, 남은 사람이 또 빈자리를 채우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노사 테이블에서 터져나오는 그 말은 계속 건너건너 들려올 것이다.
"왜 육아시간 쓰는 사람 편만 드냐."
이 말의 화살이 서로를 향하는 한, 우리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맞서게 될 것이다. 화살이 향해야 할 곳은 따로 있다. 제도를 만들고 인프라를 만들지 않은 곳. 희생을 당연하게 설계한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매년 저출생 대책을 발표하는 곳.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이 생각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선배들은 그때 맞게 살았다. 제도가 없던 시절, 버티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고, 그렇게 버텼다. 나는 지금 맞게 살고 있다. 제도가 생긴 시절,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쓴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를 향해 '지금 네가 틀렸다'고 느낀다. 각자 자신의 때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다. 틀린 건 우리가 아니라, 두 시간을 모두 버티게 만든 구조다. 우리는 서로의 적이 아니다. 같은 구조 안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존해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요즘 것들'이라 부르는 후배들도 결국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다. 우리가 윗세대와 겪어온 이 갈등을, 그들과 또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감정만 다음 세대로 넘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청구서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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