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해 8월 8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답은 음모가 아니라 구조다. 워싱턴에서 한반도 정책을 실제로 다루는 집단은 놀라울 만큼 제한돼 있다. 의회 군사·외교위원회의 한반도 담당 보좌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데스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주한미군과 국방부의 아시아 정책 부서, 그리고 한국 자금이 직간접으로 유입되는 워싱턴의 한반도 석좌직들이 그 핵심이다.
이 다섯 자리를 수십여 명이 회전문처럼 돌고 돈다. 워싱턴 주요 싱크탱크의 한반도 석좌 대부분은 한국 정부 산하 공공외교 기관과 한국 주요 재벌 그룹의 출연으로 운영된다. 국무부와 NSC에서 한국을 담당했던 인사는 퇴직 후 한국 재벌의 고위 임원, 한국군에 무기를 파는 미국 방산 기업의 대외정책 책임자, 또는 같은 자금이 흐르는 싱크탱크 석좌로 옮겨간다.
주한미군 사령관 출신 4성 장군들은 한미동맹 예비역 단체 이사진에 자리 잡고, 현직에서는 환수 조건이 미충족됐다고 선언하고 퇴역 후에는 그 충족 여부를 평가하는 자문위원이 되며, 다시 그 자격으로 의회 청문회 증인으로 호명된다.
결론을 떠받치는 언어도 늘 같았다. '조건에 기초한(시간에 기초하지 않은)'이라는 표현은 2014년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공식화된 뒤, 역대 모든 주한미군 사령관이 의회 증언에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반복해 왔다. '시기상조의 위험', '한국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문구 역시 30년 동안 분석 보고서, 청문회, 신문 칼럼에 되풀이됐다. 이처럼 표현이 균질하다 보니, 이런 문구를 쓰느냐 여부가 네트워크 안 사람인지를 가르는 표지처럼 기능할 정도다.
여기에 한국 내부의 변수가 더해진다. 한국 보수 진영은 이 네트워크의 발언을 '미국 전체의 우려'로 포장해 국내 정치 자원으로 써 왔고, '대미 공공외교'라는 이름으로 동원된 한국 정부와 재벌의 자금이 거꾸로 그 네트워크를 떠받쳐 왔다.
이 네트워크의 작동 결과는 한국의 전작권 환수 시도 좌절의 역사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환수 시점을 2012년 4월로 못 박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2015년 12월로 늦췄고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아예 시한을 없애 '조건에 기초'라는 무기한 형식으로 바꿨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환수 완성을 약속했으나, 마지막 능력 평가 절차가 미군 측의 거듭된 보류로 끝내 마무리되지 못했다.
영화 〈부당거래〉의 명대사 그대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한시적 호의가 70년 이어지는 사이, 미국 측은 전시작전권을 자국의 권리처럼 말하고 행동해 왔고, 한국의 일부 진영은 그 권리화를 '미국 전체의 입장'으로 포장해 헌법적 통수권 회복을 '안보 포기'로 규정해 왔다.
이제 비정상을 끝낼 때다
한국 언론이 인용해 온 '워싱턴의 우려'는 미국 전체의 입장이 아니라, 워싱턴 내 소수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목소리에 가깝다. 정작 미국 다수 여론은 의회 승인 없는 자동 군사 개입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고, 전작권 이양의 헌법상 최종 결심 권한도 의회나 군부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점을 분명히 하며 전작권 이양에도 비교적 우호적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에게 전작권은 양수겸장의 카드다. 한국이 환수에 나서면 미군 부담 경감이라는 이익을 얻고, 머뭇거리면 그 사실을 명분으로 다른 청구서에서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 지난 글(
https://omn.kr/2hy8h)에서 짚었듯, 전작권 이양 지지 이면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기정사실화해 한반도 밖 작전을 정당화하고, 한국을 후방 군수기지로 만들며, 미·일 동맹 중심 지역 질서에 한국을 하위 단위로 편입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도 양수겸장이어야 한다. 미국이 환수 시점과 이후 조건을 따로 떼어 유리한 것만 가져가지 못하도록, 한국이 먼저 환수 시점과 조건을 하나의 패키지로 제시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한반도 외 작전에 대한 협의권, 핵우산·확장억제의 구체적 조건, 한미연합사 해체 뒤 지휘구조 재설계를 모두 한 세트로 묶어야 한다. 조기 환수만 좇다 독소조항에 서명해서도 안 되고, 미군이 결정권을 쥔 군사 평가 절차에 매달리다 환수 시기를 또 놓쳐서도 안 된다.
전작권 환수는 군사적 평가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문제다. 양국 정상이 먼저 환수 시점을 못 박고, 군사 실무를 그에 맞춰 정렬시키는 톱다운 방식이 회복될 때, 환수 이후 조건 협상에서도 한국이 유리해진다. 환수를 미룰수록 트럼프 정부의 요구는 한국 의사와 무관하게 굳어지고, 한국이 손볼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다. 오히려 조기 환수 추진이 한국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자국 군대의 전시작전권을 70년 넘게 외국군 사령관에게 맡겨 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패전국 일본과 독일조차 겪지 않은 일이다. 50개가 넘는 미국 동맹국들도 마찬가지다. 전작권을 미국에 맡겨야만 동맹이 유지된다는 낡은 통념에서 벗어날 때다. 이재명 정부 임기 안에 비가역적 결말을 내야 한다. 이번에도 미루면, 또 7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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