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19 20:29최종 업데이트 26.05.1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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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도서관을 여행합니다. 도서관 노동자가 낯선 도시에서 발견한 도서관의 매력, 그 안에 깃든 웃음과 감동, 삶의 온기를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책과 사람을 잇는 여행이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기자말]
나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다. 아무리 고민해도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거나 사소한 번민이 마음을 어지럽힐 때면, 머릿속에 광활한 우주를 떠올리며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일명 '잠 테라피'. 잠시라도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자고 일어나면, 모나게 벼려졌던 마음의 모서리가 조금은 둥글어져 있었다.

그런데 오월 만큼은 이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눈부신 초록이 창문을 두드리는 계절, 이 찬란한 시간을 잠으로 허비하는 것이 도리어 자책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월에는 잠 대신 초록빛이 데려다 주는 또 다른 치유를 찾는다. 이름하여 '초록 테라피'다.

'초록 테라피'를 하러 간 곳에서 마주한 향기

오동숲속도서관 전경아쉽게도 아카시아향은 담을 수 없었다이인자

초록이 간절해진 지난 7일, 나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오동숲속도서관'으로 향했다. 지도 앱에만 의지한 채, 몸이 앞으로 기울어질 만큼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15분 남짓 헉헉 대며 올랐을까.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머릿속엔 문득 <헨젤과 그레텔> 속 과자의 집이 떠올랐다. 비축한 당이 떨어져 허기가 밀려온 탓이었다.

그때 마침 월곡청소년센터 앞 배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 안에서 라면을 판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봉지 라면을 끓여주는 무인 기계를 마주했다. 친절한 설명서가 없었더라면 하마터면 생라면을 부숴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라면이 익어갈 무렵, 나 만큼이나 배고파 보이는 손님 한 분이 들어왔다. 짧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무려 전주에서 이곳까지 오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들른 김에 오동숲속도서관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왔다고 했다. 라면을 먹다가 뜻밖에도 도서관 여행의 고수를 만난 것 같았다.

간신히 허기를 달랜 뒤 마침내 도서관 입구에 당도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이 펼쳐졌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 가려는데 자꾸만 발길을 붙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아카시아꽃 향기였다.

비 예보가 있어 습도가 높았던 탓일까, 지금껏 맡아본 향 중 가장 밀도 높은 아카시아 향이 숲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이 조향사라면 이런 향을 만들지 않았을까. 이 향기를 밀봉할 수만 있다면 산소호흡기 통이라도 가져와 가득 담아가고 싶어질 정도였다.

도서관에 들어가니, 역시 소문 대로였다. 세상 밖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또 하나의 숲이 펼쳐졌다. 온통 목재로 이루어진 벽과 기둥, 그리고 서가들. 사방을 둘러싼 커다란 창으로는 초록빛과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예쁜 조명조차 필요 없을 만큼 자연의 빛이 가득 번지고 있었다.

검수의 대상에서 탐색의 대상으로

산장일까 도서관일까잠시 쉬어가도 좋습니다.이인자

운 좋게도 숲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도서관 여행자에게 가장 설레는 시간, 천천히 서가를 탐색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일터에서 바라보는 서가와 여행자가 되어 마주하는 서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터에서의 서가가 청구 기호와 정배열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검수의 대상'이었다면, 여행자로 만나는 서가는 읽고 싶은 제목을 발견하는 '탐색의 대상'이었다.

나의 손길이 멈춘 곳은 재영 작가의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었다.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실 나는 수선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망가진 것을 묵묵히 고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내 주변에도 책 수선에 진심인 동료가 있다. 한 장씩 떨어진 책장을 조심스럽게 이어 붙이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책의 마음까지도 함께 봉합하려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문장 위로 자꾸 동료의 얼굴이 겹쳤다.

오동숲속도서관은 공부하거나 노트북을 펼치기에는 책상이 다소 작았다. 대신 사람과 책 사이의 간격은 더없이 가까웠다. 2023년 5월 문을 연 이곳은 원래 먼지와 소음 민원이 끊이지 않던 낡은 목재 파쇄장이었다고 한다. 민원의 상처가 깊던 공간이 이제는 책과 숲, 사람의 마음을 쉬게 하는 도서관이 된 것이다.

서둘러 숲을 산책하려고 일어서는 순간,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목조 건물 곳곳에 박힌 수많은 옹이였다. 가지가 부러지거나 껍질이 찢겼을 때, 혹은 병이 들었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세포를 밀어 올리며 단단하게 메워나간다고 한다. 옹이는 나무가 살아있는 동안 입었던 상처의 흔적이었다. 어쩌다 만들어진 상처인지 옹이가 된 사연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끝내 나는 울고 말았다. 옹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시 휴대폰을 충전하는 동안 동화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점심 때 기계가 끓여준 라면이 생각나 <엄마라면>이라는 책을 무심코 골랐다. 그런데 라면 이야기가 아니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가는 아이의 이야기였다. 엄마를 잃은 아이의 마음을 읽다 보니 끝내 눈물이 터진 것이다.

마음의 자국을 돌아보게 한 옹이들

옹이를 닮은 내 상처내 마음의 옹이가 궁금해진 날이인자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길, 예보대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우산을 펴 들다 문득 왼손 등에 남은 흉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몇 달 전, 몸이 아픈 친정엄마를 위해 전복죽을 쑤다가 입은 화상 자국이었다. 흔적은 생각보다 선명하고 오래 남았다.

문득 내 손등의 상처가 아까 본 나무의 옹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프면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론 화가 났다. 그런 못난 마음들을 꾹꾹 눌러 다져가며 끓인 죽이었다. 나무의 옹이가 자신을 메워가며 남긴 흔적이듯, 내 손등의 흉터 역시 엄마를 향한 오만 가지 복잡한 마음들이 오래 부딪치며 생겨난 시간의 자국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오동숲속도서관>을 그저 아름다운 곳으로만 기억하지는 못할 것 같다. 사람이든, 나무든, 상처를 바라보는 시간이 어찌 즐거울 수만 있겠는가. 그래도 내 안의 옹이가 시큰거릴 때면 또 다른 옹이를 만나러 가는 것도 괜찮다. 나무의 옹이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내 상처도 저렇게 단단한 무늬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울고 싶을 때는 어린이 서가에서 슬픈 동화책 한 권을 꺼내 읽어도 좋겠다. 어른이 동화책을 읽다 우는 것이 서가의 옹이를 붙잡고 우는 것보다는 훨씬 덜 청승 맞아 보일 테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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