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일까 도서관일까잠시 쉬어가도 좋습니다.
이인자
운 좋게도 숲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도서관 여행자에게 가장 설레는 시간, 천천히 서가를 탐색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일터에서 바라보는 서가와 여행자가 되어 마주하는 서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터에서의 서가가 청구 기호와 정배열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검수의 대상'이었다면, 여행자로 만나는 서가는 읽고 싶은 제목을 발견하는 '탐색의 대상'이었다.
나의 손길이 멈춘 곳은 재영 작가의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었다.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실 나는 수선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망가진 것을 묵묵히 고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내 주변에도 책 수선에 진심인 동료가 있다. 한 장씩 떨어진 책장을 조심스럽게 이어 붙이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책의 마음까지도 함께 봉합하려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문장 위로 자꾸 동료의 얼굴이 겹쳤다.
오동숲속도서관은 공부하거나 노트북을 펼치기에는 책상이 다소 작았다. 대신 사람과 책 사이의 간격은 더없이 가까웠다. 2023년 5월 문을 연 이곳은 원래 먼지와 소음 민원이 끊이지 않던 낡은 목재 파쇄장이었다고 한다. 민원의 상처가 깊던 공간이 이제는 책과 숲, 사람의 마음을 쉬게 하는 도서관이 된 것이다.
서둘러 숲을 산책하려고 일어서는 순간,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목조 건물 곳곳에 박힌 수많은 옹이였다. 가지가 부러지거나 껍질이 찢겼을 때, 혹은 병이 들었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세포를 밀어 올리며 단단하게 메워나간다고 한다. 옹이는 나무가 살아있는 동안 입었던 상처의 흔적이었다. 어쩌다 만들어진 상처인지 옹이가 된 사연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끝내 나는 울고 말았다. 옹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시 휴대폰을 충전하는 동안 동화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점심 때 기계가 끓여준 라면이 생각나 <엄마라면>이라는 책을 무심코 골랐다. 그런데 라면 이야기가 아니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가는 아이의 이야기였다. 엄마를 잃은 아이의 마음을 읽다 보니 끝내 눈물이 터진 것이다.
마음의 자국을 돌아보게 한 옹이들
▲옹이를 닮은 내 상처내 마음의 옹이가 궁금해진 날
이인자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길, 예보대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우산을 펴 들다 문득 왼손 등에 남은 흉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몇 달 전, 몸이 아픈 친정엄마를 위해 전복죽을 쑤다가 입은 화상 자국이었다. 흔적은 생각보다 선명하고 오래 남았다.
문득 내 손등의 상처가 아까 본 나무의 옹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프면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론 화가 났다. 그런 못난 마음들을 꾹꾹 눌러 다져가며 끓인 죽이었다. 나무의 옹이가 자신을 메워가며 남긴 흔적이듯, 내 손등의 흉터 역시 엄마를 향한 오만 가지 복잡한 마음들이 오래 부딪치며 생겨난 시간의 자국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오동숲속도서관>을 그저 아름다운 곳으로만 기억하지는 못할 것 같다. 사람이든, 나무든, 상처를 바라보는 시간이 어찌 즐거울 수만 있겠는가. 그래도 내 안의 옹이가 시큰거릴 때면 또 다른 옹이를 만나러 가는 것도 괜찮다. 나무의 옹이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내 상처도 저렇게 단단한 무늬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울고 싶을 때는 어린이 서가에서 슬픈 동화책 한 권을 꺼내 읽어도 좋겠다. 어른이 동화책을 읽다 우는 것이 서가의 옹이를 붙잡고 우는 것보다는 훨씬 덜 청승 맞아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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