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0 06:49최종 업데이트 26.05.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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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6주년 및 위르겐 힌츠페터 10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내 이름은 원덕기>를 제작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 참여자의 이름을 기재합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광주를 사랑한 팀 원버그(한국 이름 원덕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펀딩 바로가기 https://omn.kr/2i36q[기자말]
팀 원버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 지난 3월 1일 동생을 화장해 뿌린 나무에 꽃을 놓고 생각에 잠겨 있다.이희훈

*<인터뷰① 33년 전 죽은 동생, 한국 '5·18 테이프'에 살아 있다니>에서 이어집니다.

남매는 닮았다. 죽는 날까지 입과 손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기록했던 팀 원버그(Tim Warnberg, 당시 25세)처럼, 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Roxanne Warnberg Wilson, 72)도 팀의 유품을 차곡차곡 정리해뒀다.

지난 3월 4일 미국 미네소타의 소도시 라이스(Rice)에 있는 록산의 자택. 그가 매일 잠드는 침대 머리맡엔 동생이 아끼던 한국 병풍이, 식탁 앞 의자에는 팀의 가죽 재킷과 스카프가 걸려 있었다. 거실에는 팀이 숨지기 전까지 머물던 소파가, 작업실 서랍에는 팀의 일기장·편지·유언 등 문서가, 거실에는 팀이 자주 듣던 한국 음악 카세트 테이프와 LP 앨범, 한복, 하회탈 등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많은 유품 중, 록산은 침대 머리맡에 둔 병풍을 가리키며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사계절 그림이 이 병풍에 담겨 있었다.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팀이 저에게 준 많은 것들은 한국어로 적혀 있어서, 보기에는 마음에 들어도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이건 이해가 돼요. 계절에 따라 삶이 다르게 표현된 점이 정말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침대 위에 걸어뒀어요."

팀 원버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 침대 머리맡에 걸어 둔 동생의 유품. 한국의 사계절을 담은 병풍이다. 2026. 03. 04.소중한

누나의 신념, 기억하는 한 함께 있는 것

사소한 팀의 모습까지 기억하기 때문일까. 록산은 고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작고) 테이프 속 광주의 참상엔 감정을 숨기지 않았지만, 33년 전 숨진 동생의 모습을 처음 봤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는 록산이 가진 신념 때문인 듯했다. 그는 한 인간이 세상을 떠났더라도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록산은 어렴풋이 속내를 내비쳤다.

"저는 팀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영상을 보고 그렇게 놀라진 않았죠. 팀은 우리 기억 속에 살아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쁜 일입니다. 비록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지만, 그렇게 젊고 생기 있는 동생의 모습을 다시 보는 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일이에요."

팀 원버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 지난 3월 1일 미네소타 브레이너드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동생의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인터뷰 영상을 보고 있다. 이 영상은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했다.이희훈

그래서인지 록산이 가장 많이 꺼낸 단어는 "기억"이었다. 취재진은 록산에게 동생을 기억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소개했다.

광주의 단골 음악감상실 DJ였던 친구 이흥철씨, 5·18 당시 들것을 든 팀의 모습을 찍은 나경택 기자, 그리고 함께 들것을 든 노병유 기자, 전남대 의대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한 고진석·안영주씨 등을 언급하며 "팀을 기억하는 광주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록산은 "따뜻하고 감사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비록 우리 가족과 다른 시공간에서 팀을 봤겠지만, 그들이 묘사하는 팀은 우리가 봤던 그 모습들입니다. 그들이 팀을 따뜻하게 기억해준다는 것에 팀도 기뻐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서른여덟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라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죽기 전 팀이 조카들을 보며 '이 아이들이 나를 기억할까'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정말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지네요."

투병 중이던 팀 원버그가 조카들, 지인과 찍은 사진.록산 원버그 윌슨 제공

"한국은 그의 일부였다"

"기억한다면 함께 하는 것"이라는 록산의 믿음처럼, 한국을 떠난 팀은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의대 진학의 꿈을 접고 한국학 연구를 택한 그는 "5·18 외에 다른 한국 사회의 문제에도 계속 목소리"(록산)를 냈다.

또 시대와 장르를 불문한 한국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정철, 김시습, 피천득, 정지용, 고정희, 조세희 등의 작품을 번역하고 이를 분석한 글을 썼다. 끝내 완성하지 못했지만 조종현의 시조집 <자정의 지구>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 중이기도 했다.

197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을 처음 찾았다가 5·18 후 5년 뒤 한국을 떠났던 팀은 1988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서울올림픽 때 통역 봉사를 맡았던 그의 마지막 한국 방문이었다.

팀 원버그의 유품인 카세트 테이프를 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가 지난 3월 4일 미네소타 라이스의 자택에서 내보이고 있다. 팀 원버그가 직접 녹음한 테이프에는 그가 직접 한글로 쓴 신승훈의 노래 제목들이 한땀한땀 적혀 있었다.이희훈

대학원을 다니며 하와이에 머물던 팀은 1991년 겨울 병세가 악화돼 고향 미네소타로 돌아왔다. 그의 일상 중 하나는 한국 노래를 벗삼아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팀의 유품 박스에서 신승훈, 김세레나, 김덕수 사물놀이패, 김민기 등의 노래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와 LP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테이프에 신승훈의 노래를 한 곡, 한 곡 직접 녹음하고 제목을 한글로 적어두기도 했다.

팀은 마냥 아파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초등학교로 강의를 나가 학생들에게 한국을 알렸다. 팀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국을 기억하고 기록했다. 그렇게 "한국은 그의 일부가 됐다"고 록산은 떠올렸다.

"한국어, 평화봉사단원으로서 한센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 그리고 광주에서의 일까지 모두 그의 일부였어요. 그 경험 하나하나는 팀의 삶을 이루는 하나의 중요한 조각이었어요. 그는 한국을 사랑했고, 광주뿐만 아니라 한국의 친구들·자연·문학 등에 영향을 받았어요. 그건 그의 삶의 일부가 됐고, 깊이 스며들었죠. 팀은 아끼던 퀼트(조각보)에도 미네소타주 깃발과 한국 국기를 함께 새겼어요. 둘 다 그의 삶에서 정말 큰 부분이었기 때문이죠."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다가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팀 원버그(오른쪽). 의대 진학을 목표했던 그는 의료 분야에서 봉사를 이어갔다.록산 원버그 윌슨 제공

록산은 팀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한국어로 이야기했다고 회상했다. 팀이 직접 기획한 자신의 장례식 영상 속에도 한국과 연관된 사진이 150장이나 들어 있었다.

"팀은 어머니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는 죽어가는 동안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어요. 팀은 어떤 때는 한국어로, 어떤 때는 영어로 말했어요.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와 이야기했고, 그리고 교통사고 등으로 죽은 한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한국어로 말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쓴 일기장의 서두에, 팀은 한국인 친구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적었다. 록산은 "팀이 가깝게 느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났던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일기장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가장 낙관적인 종교적 순간에 떠올리는 이들은 명회, 우선, 용배, 원버그 할아버지, 쿱 할머니, 그리고 특히 원버그 할머니입니다. 나는 곧 그들과 함께 고통 없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쁨을 느낍니다. 당신이 가장 낙관적인 종교적 순간을 맞이할 때, 죽음이라는 신비 너머의 삶의 경이로움 속에서 당신을 맞이하기 위해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용배'는 팀이 1981년 연세대 어학당에 입학한 뒤 사물놀이를 배우며 사귄 고 김용배(사물놀이 명인, 1986년 작고)씨로, '우선'은 팀이 평화봉사단원으로서 전남대 의대 학생들과 의료 봉사를 한 친구로 추정된다. '명회'는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전 세계 바람에 실린 팀 원버그

팀 원버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 지난 3월 1일 동생의 추모비가 있는 미네소타 브레이너드 그레고리 공원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이희훈

록산과 미네소타의 소도시 브레이너드(Brainerd)를 찾았다. 남매가 나고 자란 이곳의 그레고리 공원에 팀의 추모비가 있다. 팀의 가족은 이곳에 붉은 단풍나무를 심고 화장한 팀을 뿌렸다. 이곳뿐만 아니라 록산의 집 근처 호수, 팀이 공부하던 하와이, 팀의 일부였던 한국까지 전 세계 곳곳의 바람에 그를 실어보냈다.

"팀은 여기에도 있고 저희 집 근처 호수에도 있지만 하와이 북쪽 해안과 (남쪽 해안) 와이키키의 불교 사찰처럼 그가 정말 좋아했던 장소에도 있어요. 그리고 팀의 친구 중 한 명이 한국으로 그의 유해를 가져 갔어요. 팀은 (생전 유언으로) 우리 모두가 자신을 갖도록 해서 각자의 집이나 호숫가 별장에 뿌리도록 했어요. 붉은 단풍나무가 있는 이곳이 그의 단단한 기반이지만, 동시에 그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것이죠."

이처럼 록산에게 팀은 어디에나 있는 존재다. 때문에 올초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국가폭력에 맞선 미네소타 시민들의 저항과 연대를 보고 "팀과 광주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와 미네소타에서 벌어진 일은) 연결된 이야기"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네소타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맞서야 하는, 함께 지켜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팀은 아주 젊은 나이에 이미 그런 태도를 보여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록산과의 인터뷰를 전후로 취재진은 미네소타에서의 저항과 연대의 현장을 찾았다. 무자비한 총격으로 숨진 르네 굿(Renee Good)·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의 피살 현장은 핏자국 대신 꽃과 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스 아웃(ICE OUT)"이 적힌 팻말을 들고 거리에 선 시민들과 공감과 응원의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들도 미네소타의 일상이었다.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 간호사)가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한복판에서 ICE(이민세관단속국) 요원들의 집중 사격으로 숨진 장소에 그를 추모하는 팻말과 꽃, 각종 물품이 놓여 있다. 2026. 03. 02.이희훈

이러한 모습에 록산은 "팀도 갖고 있던 연대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미네소타의 많은 사람들은 이민자나 난민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인종과 언어 때문에 표적이 되는 사람들도 있고 이들 또한 보호하고 있죠. 많은 이들이 그들을 직장에 데려다 주거나 심부름을 해주거나 빨래를 해주는 식으로 돕고 보호하고 있어요. 분명히 팀도 그렇게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실제로 공격당하는 모습을 봤다면 팀이 개입했을까요? 분명히 했을 거예요. 광주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취재진과의 두 차례 만남이 끝나갈 무렵, 록산은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다"고 말했다.

"팀이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Fried Green Tomatoes, 1991년 개봉)>라는 영화에 나왔던 노래를 정말 좋아해서, 반복해 들었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 영화에는 사랑에 빠진 두 여성이 나오는데, 그 중 한 명이 죽어요. 그때 나온 노래가 <나는 너를 기억할거야(l'll Remember You)>였어요. 팀은 그 영화를 본 뒤 그 노래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이야기했어요. 여러분을 만난 이 과정을 겪으며 제가 팀이 기억하기를 바랐던 방식대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광주에서 그가 겪은 일, 그의 따뜻함, 그리고 그의 여정까지 모두 포함해서요. 그는 젊은 나이에 정말 많은 것을 남긴 사람이에요."

팀의 단골 음악감상실 DJ였던 이흥철씨는 그가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와 같은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를 자주 신청했다고 전했다. 록산이 말한 <나는 너를 기억할거야(l'll Remember You)> 또한 밥 딜런이 만들었다. 팀과 같은 미네소타 출신이기도 한 밥 딜런의 1985년 노래 <나는 너를 기억할거야(l'll Remember You)>의 노랫말엔 이런 문구가 있다.

I'll remember you When I've forgotten all the rest
나는 너를 기억할 거야 다른 모든 걸 잊게 되는 순간에도
You to me were true You to me were the best
너는 내게 진실했고 최고의 사람이었어
When the roses fade And I'm in the shade I'll remember you
장미가 시들고 내가 그늘 속에 머물게 될 때에도 나는 너를 기억할 거야
I'll remember you When the wind blows through the piney wood
나는 너를 기억할 거야 소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불 때
It was you who came right through It was you who understood
그 바람을 뚫고 네가 다가왔고 너는 모든 걸 이해했지
Though I'd never say That I done it the way That you'd have liked me to
네가 바라던 방식으로 내가 살아왔다고는 끝내 말하지 못할지도 몰라
In the end My dear sweet friend I'll remember you
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친구야 나는 너를 기억할 거야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이 자주 찾았던 충장로우체국 옆 음악감상실의 DJ 이흥철씨가 친구였던 팀의 사진을 턴테이블 옆에 놓고 있다. 2026. 03. 09.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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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소중한 취재 소중한·전선정·김화빈·이진민·유지영
촬영 강상우·이희훈 편집 콘텐츠팜 호미
CG 김수연 타이틀 김소설 음향 DMC 사운드 비전 내래이션 이승준
펀딩 기획 장유정·이기종·봉주영
영상 제공 5·18기념재단·루먼 형제(Ben&Sam Luhmann)
영상 번역 자문 로버트 그라찬
사진·자료 제공 고진석·나경택·서나래·유경남·변재원·안영주·록산 원버그 윌슨·데이비드 돌린저·폴 코트라이트·캐롤린 투르비필·케빈 페어뱅크스·로버트 그라찬·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외교사료관·박지원 의원실
촬영 협조 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전남대병원·전일빌딩245·국가보훈부·별밭·필로스팅하우스
제작 지원 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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