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18 10:52최종 업데이트 26.05.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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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톤보리, 글리코상, 타코야키, 유니버설스튜디오, 우메다, 난바.... 오사카,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입니다. 오사카라는 지명 뒤에 무슨 말이 가장 어울릴지 AI에게 물었더니 '여행'이라고 답을 합니다. 여기, 오사카 여행이 아닌 오사카살이를 시작한 특이한 중년 남성이 있습니다. 마천루가 즐비하고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는 오사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오사카 주민으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독거 일기를 시작합니다. 반년간 펼쳐질 좌충우돌, 실수 만발 오사카 생존기를 시작합니다.[기자말]

오사카대학 특강 장면지난 4월 28일 오사카대학에서 <한국의 사법기관(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제목으로 일본어 특강을 진행하는 모습. 약 30명의 학생과 교수 등이 참석했다.김용국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반년간의 대학 연구원 생활에서 가장 큰 고난이자 시련이 찾아왔다. 일본어 법률 특강. 일본 학생들 앞에서 한국 법원 이야기를 해야 했다. 우리말로도 힘든 걸 일본어로 하라고?

작년 직장에서 6개월 객원 연구원 파견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그 뒤엔 모든 걸 직접 해결해야 했다. 대학과 숙소를 정하는 일부터 비자 발급 등 각종 행정 절차까지. 가장 어려웠던 건 대학 선정. 알고 보니 내가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간택'을 받아야 했다. 일본 대학은 대부분 조건이 까다로웠다. 예컨대 특정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그 대학 전공 교수를 직접 섭외해야 한다. 교수에게 연구 주제와 계획 등을 설명한 뒤, 그 교수가 수락하여 추천을 해주면 비로소 대학에서 행정 처리를 시작한다.

막막했다. 몇 군데 대학에 메일을 보냈더니 대부분 '일단 교수 추천을 받은 뒤 다시 문의하라'거나 '교수의 정보나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일본 대학 홈페이지에도 교수의 사진은 물론, 메일 주소나 사무실 전화번호나 위치 등이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공개된 한국과는 달랐다.

일본 대학 연구원, 이렇게 험난한 과정이라니

특강 안내 포스터지난 4월 28일 오사카대학에서 특강을 진행했다. 특강을 안내하는 포스터에 적힌 특강 제목은 <한국의 재판소(법원), 헌법재판소의 의의>이다.김용국

고심 끝에 그동안 일본 연구원 생활을 경험한 동료들을 수소문하여 연락을 취했다. 다행히 몇 군데 대학의 공식 메일과 교수 개인 메일 주소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한 군데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일본행을 접어야 한다. 나는 사회 초년생이 직장 입사원서를 쓰는 심정으로 간절한 사연을 담은 메일과 연구계획서를 준비했다.

일본에선 선물도 편지도 포장이나 격식이 중요하다. 특히나 부탁하는 입장에선 말할 것도 없다. 연구계획이 아무리 좋아도 격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첫인사와 마지막 인사에 문제는 없는지, 내용은 오해가 없는지, 호칭과 경어를 제대로 사용했는지 몇 번 확인한 뒤 일본어에 능통한 몇 사람의 '자문'을 거치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본 대학은 객원연구원을 받기 전에 몇 가지 심사를 거쳤다. ▲연구 주제와 계획이 적정한지 ▲교수와 정기적인 소통이 가능한지 ▲수업이나 학회 등에 참가할 의지가 있는지 ▲대학에 기여도 있는 활동이 가능한지 등이었다. 그중 기여도가 가장 중요한 듯했다.

여러 대학과 몇 달간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의견을 조율했다. 긍정적인 회신이 온 곳은 두 곳이었다. 그중 오사카대학 교수에게서 회신이 왔다. 요지는 '우리 대학에 연구원으로 와서 한국 법률과 관련된 특강 등으로 기여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일단 일본으로 가야 했다. 나는 교수에게 바로 답장을 보냈다. "일본어 특강 잘할 수 있습니다. 두 번도 가능합니다." 이런 무모한 답장이라니. 열정이 통했는지 허가 결정이 났다.

"일본어 특강 잘할 수 있습니다"

파워포인트로 특강 준비오사카대학에서 <한국의 사법기관(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제목으로 한 일본어 특강을 앞두고 연구실에서 파워포인트와 대본을 준비한 뒤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김용국

이것이 고난의 단초가 되었다. 막상 일본에 도착한 그때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어려운 법률용어를 일본어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법대생들을 상대로.

내가 선택한 일이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 탄핵심판과 내란죄 재판을 일본에선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 주제로 특강을 해보면 어떨까 제안했더니 교수는 좋다고 했다. 교수와 몇 차례 상의 끝에 '한국의 사법기관의 현재와 미래'로 주제를 잡았다. 한국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헌재)가 권한이 분리되고 서로 독립되어 있는 반면, 일본은 최고재판소에서 모두 담당하고 있다.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주요 판례 등에 비중을 할애하기로 했다.

담당 교수는 부담을 덜라는 뜻으로 내게 여러 번 "김 선생, 학생 몇 명이 참가하는 수업이니 그냥 즐기세요"라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겨울부터 시작된 구상은 봄까지 이어졌다. 특강 날짜가 4월 말로 확정되었다. 그 뒤 연구실에서 몇 날 밤을 새우고 없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대본과 파워포인트를 만들었다. 수차례 토론도 거쳤다. 완성본이 나오자 교수는 이렇게 제안했다.

"특강 내용이 좋으니 포스터를 만들어서 희망자 누구나 참여하도록 합시다. 특강 장면은 촬영해서 나중에 홍보자료로 사용하겠다고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헌법 전공 교수와 대학원생들도 참가하고 싶다고 하네요. 못 오신 교수님은 강의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고 싶다고 합니다."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참가 범위도 늘어났고, 이젠 대충 하면서 즐길 상황이 아니었다. 더듬거리면서 겨우 일상생활을 할 정도의 일본어 수준으로, 전문 분야 특강을 준비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스트레스가 쌓여갔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번역한 대본을 일본어 선생의 도움을 얻어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고쳤다. 틈나는 대로 읽기를 반복했다. 내 목소리로 거듭 녹음하여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했다. 또 AI로 녹음해서 일상생활에서, 심지어는 자면서도 계속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부터 아무리 열심히 한들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는 없다. 특강에 오는 이들은 내 일본어 실력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제대로 설명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여기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한국에선 왜 대통령이 자주 탄핵당하는 거죠?"

오사카대학 특강 장면지난 4월 28일 오사카대학에서 <한국의 사법기관(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제목으로 일본어 특강을 진행하는 모습. 약 30명의 학생과 교수 등이 참석했다.김용국

드디어 특강 당일. 올해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강단에 섰다. 30명에 가까운 학생, 교수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인사를 마친 나는 일본어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일본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을 저도 좋아합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이 시간, 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여러분과 저에게 모두 소중한 시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후 한국의 대법원과 헌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일본 사법제도와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과 헌법개정으로 탄생한 헌재가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도 소개했다. 학생들은 헌재의 판례가 한국사회의 변화를 가져온 점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헌재는 호주제 폐지, 동성동본 금혼 위헌 결정으로 가족제도의 변혁을 가져왔고, 양심적 병역거부(대체복무제) 인정, 간통죄와 낙태죄 위헌 결정 등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 신장에 기여해 왔다. 또한 역대 세 차례의 대통령 탄핵심판(인용 2회, 기각 1회)을 통해 권력자도 헌법 위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일본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한국에선 왜 이렇게 자주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형사처벌을 받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보수정당인 자민당이 1955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일본에선 정권 교체도 생소할 정도인데 임기 도중에 대통령이 쫓겨나고 감옥에 가는 상황, 수십만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모습을 일본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는 탄핵심판을 보수와 진보의 싸움 정도로 인식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답을 해주었다.

"최근 탄핵심판의 쟁점은 보수냐, 진보냐 이런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대통령이 파면에 이를 정도로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했느냐 아니냐 이것이 핵심입니다. 과거 군사 정권의 비상계엄하에서 한국인들은 군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고, 고문과 폭행을 당하는 등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2024년 비상계엄 때도 많은 한국인은, 일본을 예로 들자면 진도 7 이상의 지진과 같은 충격과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헌법은 비상계엄의 요건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로 아주 엄격하게 해놓았습니다. 2024년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중대한 헌법 위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1심 법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을 내란 주모자로 인정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였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구성에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하는지, 대체복무제 시행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위헌결정 후에도 법이 개정되지 않을 땐 강제력이 있는지 등등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강의가 끝난 뒤 교수는 "일본 학생들이 이렇게 질문에 적극적인 건 아주 드문 일"이라고 했다.

일본 헌법 교수의 난처한 질문

가장 난처한 질문은 헌법 전공 교수가 던졌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대법관 증원법, 법왜곡죄 신설, 재판소원법 등이 추진된 이유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고 물었다.

일본 교수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낯이 뜨거워졌다. 딱히 부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에둘러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대법원의 슬로건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구현'입니다. 그런데 정작 일반 국민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법원의 설득이 부족했거나 오해를 샀거나 신속과 공정을 다 잡을 만한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대법원이 헌재와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기관이 되리라 믿습니다."

어느덧 예정된 90분이 끝나간다. 나는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야말로 법이 더 이상 악인을 지키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무리 인사를 했다. "여러분과 저는 언어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법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법을 잘 알고 잘 활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길에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큰 탈 없이 끝났다는 사실에 성취감과 홀가분한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녹초가 되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전혀 미련이 없었다. 만일 조금 더 연구원 생활을 한다면 몇 차례 토론 수업을 진행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날 저녁 교수는 "100% 성공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만족해했다. 교수는 일본식 코스 요리를 예약해 놓았다는 인근 식당으로 초대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일본어로 90분을 떠들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일본어로 답변을 한 것을 보면 뭔가 초인적인 힘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두 번째로 일본 학생 앞에 서다

교토 류코쿠대학생들과의 만남지난 5월 7일 류코쿠대학 국제학부 박현국 교수의 제안으로 국제학부 대학생들과 함께 한국 문화와 공무원 사회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특강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와 일본사회가 어떻게 다른지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학생들과 공유하는 자리였다.박현국

일본 학생들 앞에 선 경험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교토에서도 있었다. 류코쿠대학 국제학부 교수로 있는 박현국 선생을 만나기 위해 교토를 찾은 5월 7일이었다. 나를 마중 나온 박 선생은 대뜸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김 선생, 5분 후에 제 수업인데 학생들에게 한국 문화와 공무원 사회에 대해 얘기를 좀 해주면 어떨까요. 질문도 받고, 자유롭게 얘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제학부 학생들이라 다들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예? 그게 제가 아직 일본어가..."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어요. 그냥 편하게, 특강도 아니니까. 괜찮으시겠죠?"

특강이 아니라지만, 별다른 준비도 없이 일본 대학생들 앞에 서게 되다니. 난감했으나 거부할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낯선 강의실에선 나는 다섯 달 생활을 통해 일본과 일본 대학에서 느낀 점을 서투른 일본어로 투박하고 솔직하게 얘기해 나갔다.

"일본 사람은 친절하고 상대의 입장을 중시하기 때문에 싫은 내색이나 솔직한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땐 일본인들의 진심을 잘 알 수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이에 반해 한국인은 대체로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의사 표현도 적극적이에요.

또 일본은 조직 내의 조화를 우선하는 와(和) 문화가 중요하죠. 저는 조화도 좋지만 조직에 문제가 있으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저 같은 사람은 일본에서 직장생활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웃음)."

이제 반 년간의 일본 생활도 저물어간다. 그동안 다양한 일을 겪었지만 두 차례 일본 대학 강단에 선 일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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