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14 11:57최종 업데이트 26.05.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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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노동조합(DGB) 제23차 정기연방대회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연설하는 동안 참석자들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한 피켓을 들고 있다.EPA 연합뉴스

민주주의의 위기에 이어 이제 복지국가도 위협 받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일까? 백 년에 걸쳐 힘들게 쌓아 올린 독일 사회복지의 탑이 흔들리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리 자신이 열심히 흔들어 댄다. 12일 베를린에서 열린 노동조합 총회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연설하던 중 거센 야유와 휘파람 세례를 받았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종일 톱뉴스로 다뤘다.

메르츠 총리는 광범위한 사회개혁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문제는 그가 말하는 사회개혁의 내용이다. 지금의 사회복지제도를 완화해야만 한다고 했다. 독일 복지제도는 너무 비대해졌으니 살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보험을 기초 보장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위협했다. 연금과 건강보험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달라고도 했다.

메르츠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반복해서 독일의 피고용자들을 모욕하는 발언을 해 왔다. 독일인들이 게을러졌다는 것이다. 주 4일제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니 하는 요구는 근로의욕의 부족을 말하는 것이며 이로써는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없다고 거듭 경고했다.

노총의 입장 역시 분명하다.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혼동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복지를 삭감한다고 해서 새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연방 노동부 장관은 6월에 새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예고했다. 그에 따르면 8시간 노동제는 더 이상 법으로 보호 받지 못하고, 대신 주간 최대 시간 상한선만 적용된다. 주 40시간을 지키는 선에서 하루 근무 시간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8시간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8시간 노동제는 노동운동이 쟁취한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였다. 착취에 맞선 보호의 상징으로 읽혔다. 메르츠는 시간제 근무에 대한 권리를 폐지할 뿐 아니라 공휴일도 하루 줄일 예정인데, 그것이 5월 1일 노동절이다. 이런 식으로는 그가 말한 개혁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끌어내기 어렵다.

노동절은 공휴일이기에 앞서 독일 피고용자들에게는 역사적 투쟁의 기억이 새겨진 날이다. 8시간 노동제와 주 5일제, 단체교섭권과 사회적 보호 등 오랜 투쟁으로 쟁취한 모든 권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해마다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그 기억을 되살리는 중요한 날이다. 한때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며 쟁취한 '사회적 파트너십'이라는 노사관계는 분명 진화를 의미한다. 노사 양측의 자발적 의지와 상호 신뢰의 상징을 이날 기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5월 1일이 춤추는 축제의 날로 변했다고는 하나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했던가? 그러므로 5월 1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자는 메르츠의 제안은 역으로 5월 1일에 거리로 나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입증한다. 노동 쟁의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사회민주당은 물론 그 제안을 전면 거부했다.

5월 1일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자유, 평화, 연대’라고 적힌 현수막을 든 사람들이 ‘혁명적 노동절’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5월 1일, 베를린의 뜨거운 행진을 몸소 체험했다. 베를린에 둥지를 튼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노동절에 직접 거리로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그동안 외면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폭력에 대한 반감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베를린의 노동절 시위는 '불타는 크로이츠베르크' 이미지와 늘 겹쳤다. 크로이츠베르크구는 극좌파와 자율주의 세력의 핵심 무대다. '베를린의 설득'이라는 별명이 붙은 포장석이 날아다니고 화염병이 허공을 가르며 경찰과 시위대가 전투를 벌이던 영상들은 '노동절=폭력'이라는 등식을 깊게 박아놓았다.

다른 하나는 내 직업적 정체성에 기인한 거리감이었다. 몇 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평생을 프리랜서를 고집하며 정규직 근로계약서를 될수록 피해 다녔던 내가, 붉은 깃발이 넘실거리는 "노동계급의 투쟁 행렬"에 끼는 것 자체가 기만처럼 느껴졌다. 노동절의 가치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마음은 늘 품고 있으나,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왠지 맞지 않는 옷 같았다.

1일 독일 베를린 시청 앞 광장에서 온몸애 손글씨 피켓을 붙이고 홀로 시위하는 노인. 손에 들고 있는 피켓에는 "자본주의는 어디서나 군비 강화를 위해 복지국가를 파괴한다"고 써 있다.고정희

그러던 올해, 나는 '<오마이뉴스> 취재'라는 분명한 명분을 내세워 길에 나섰다. 직접 체험한 베를린의 5월 1일은 왜 이날이 전설이 되었고, 관광 코스가 되었는지 그리고 노동 쟁의가 더 이상 거리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이 시대에도 왜 이날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했다.

베를린의 5월 1일은 한때 "도시가 불타는 날"이었지만, 이제는 노동절 집회, 거리 축제, 공원 파티, 그리고 여전히 '혁명적'이라 불리는 야간 행진이 겹치는 복합적인 도시 이벤트가 되었다. 시내 곳곳에서 90개 이상의 집회가 열렸고 시위 참여 인구가 7만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7만 명은 경찰에 등록한 숫자이고 이들을 따라다니던 구름 같은 거리의 인파는 집계되지 않았다.

그중 핵심적인 양대 시위는 독일노총(DGB)이 주관하는 시청 앞 공식 행사와 저녁때 오라니엔 거리에서 벌어지는 '혁명적 노동절 데모'다. 정오 무렵, 시청 앞 광장의 공식 행사는 아무 잡음도 흥분감도 없이 밍밍하게 끝났다.

오라니엔 거리

오라니엔 거리를 가득 메운 데모 행렬. '국제 연대'라는 깃발을 날리는 것으로 보아 여러 인종이 결속한 그룹으로 보인다.고정희

오후 6시 크로이츠베르크의 오라니엔 거리. 이곳이 사실은 베를린 5월 1일의 가장 중요한 장소다. 이미 전통이 되어 버린 '혁명적 데모 행렬'이 여기서 출발한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 되너(Döner, 케밥의 독일식 명칭)를 굽는 냄새와 맥주, 담배, 그리고 어디선가 터진 연막탄의 매캐한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사람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등록한 단체들이 인근 광장에서 행진을 준비하는 동안 구경꾼들이 인도를 가득 메웠다. 인파에 떠밀리던 나는 운 좋게 거리 카페에 자리 하나를 얻었다.

오라니엔 거리는 왕복 2차로의 좁은 '동네 골목'이다. 넓은 대로 다 놔두고 하필 이 비좁은 거리에서 행진을 시작하는 까닭은 이곳이 바로 1987년 불타는 노동절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구역의 폭력을 동반한 행진은 200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베를린시 당국은 해마다 반복하는 폭력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크로이츠베르크구 전체에서 거리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축제 인구를 유입함으로써 폭력 잠재력을 희석하겠다는 의도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마이페스트(MyFest)라는 이름이 붙은 이 축제는 음식, 콘서트, 여러 단체의 프로그램이 뒤섞인 매우 혼성적인 거리 축제로 자리 잡았고 해마다 관광객을 포함하여 수만 명이 찾아드는 이벤트가 되었다.

행렬을 기다리는 동안 인도를 점령한 구경꾼들이 누구랄 것도 없이 '국제 연대(International Solidarity)'라는 구호를 외쳤다. 190여 민족이 섞여 사는 베를린에서 이보다 더 절실한 구호는 없을 것이다. 드디어 행렬이 나타났다. 노동절 행렬이라기에는 현수막의 구호가 너무나 다채로웠다. 체 게바라의 초상이 나부끼고 군비 증강 반대 현수막이 지나갔다. 가자 지구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과 나이가 적힌 흰 천을 날개처럼 매달고 지나가는 여인들도 있었다. 교사들은 군비 증강 대신 교육시설에 투자하라고 요구했다.

행렬의 후미를 장식한 과격파 집단 '블랙 블록', 연신 터뜨리는 연막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아 보였다.고정희

행렬의 후미는 역시 안티파(Antifa, 반파시즘)와 '블랙 블록'이 장식했다. 검은 옷,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억압을 깨부수자"라고 쓴 현수막으로 몸을 가린 그들이 연막탄을 터뜨리며 지나가는 그 긴박한 장면이 구경꾼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보라색 풍선을 매단 방송차가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며 그 뒤를 따르면서 파티를 예고했다. 폭발적인 저항의 기운과 탐닉적인 파티의 분위기가 한 무대에서 교차하는 풍경이었다. 이런 고조된 감정이 일주일 40시간 근무의 단조롭고 고된 일상에 청량제가 되고 충전기가 되는 듯했다.

5월 1일은 양분화된 사회 - 피고용자와 고용자, 기득권과 비기득권, 공권력과 민중, 전쟁을 일으키는 쪽과 희생당하는 쪽 - 에서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 온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 국제적 연대를 외칠 수 있는, 그래서 이 시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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