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밖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 환영식을 지켜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렇다고 미국의 이런 한계가 곧 중국의 승리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중국은 미국의 빈틈을 볼 수 있고, 그 빈틈을 활용할 힘도 갖고 있다. 세계 제조업과 공급망에서 중국을 빼고는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희토류, 핵심 광물의 흐름을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이 흔들릴수록 중국은 자신을 더 안정적인 경제 파트너처럼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힘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중국은 많은 나라를 자기 경제에 의존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중국 질서에 기대게 만들지는 못한다. 의존과 동의는 다르다. 중국산 제품과 중국 시장은 필요하지만, 중국의 규칙과 정치 방식까지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국의 경제력은 세계적 흡인력으로 곧장 바뀌지 않는다.
중국의 생산력도 같은 문제를 낳는다. 중국은 압도적으로 많이 만들 수 있지만, 그 물량이 세계시장에 쏟아질수록 다른 나라 산업에는 위협으로 다가간다. 값싼 중국산 제품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각국 정부와 기업에는 일자리와 산업 기반이 밀려난다는 불안으로 다가간다. 중국의 공장은 중국의 힘이지만, 동시에 세계가 중국을 경계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희토류와 핵심 광물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쥔 공급망 카드는 강력하지만, 그것을 압박 수단으로 자주 꺼낼수록 다른 나라들은 대체 공급망을 찾기 시작한다. 중국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불편함을 중국에 대한 신뢰로 바꾸지는 못한다.
중국식 정치 질서 역시 많은 나라가 자발적으로 따르고 싶어 하는 보편 모델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결국 중국은 세계를 공급할 수 있지만, 세계를 설득하지는 못한다. 중국은 강한 국가지만, 아직 매력적인 질서는 아니다.
승부 없는 정상회담
그래서 베이징의 정상회담은 승부의 자리가 되기 어렵다. 미국은 중국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고, 중국도 미국의 빈틈을 패권의 기회로 바꾸지 못한다. 두 나라는 서로를 압박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바로 이 모순 때문에 정상회담은 승리의 선언보다 불안의 관리에 가까워진다.
미국은 중국의 제조망과 희토류 공급망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서도 중국이 가진 영향력을 계산해야 한다. 반대로 중국은 미국의 관세가 어느 선에서 멈출지, 반도체 수출 통제가 어디까지 갈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이 어떤 언어를 쓸지 확인하려 한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우호가 아니라, 미국의 압박을 계산 가능한 범위 안에 묶어두는 일이다.
따라서 회담 뒤 농산물이나 보잉 항공기 구매 약속이 나오더라도 그것을 곧바로 미중 화해로 읽기는 어렵다. 그런 합의는 숫자로 보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유용하지만, 두 나라 사이의 근본적 불신을 없애지는 못한다.
희토류와 반도체는 더 이상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안보의 언어가 되었고, 대만 문제에서는 문장 하나가 힘의 균형을 흔들 수 있다. 이번 회담은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의 회담이 아니라, 서로를 완전히 이기지 못하는 두 강대국이 불안을 관리하는 회담이다. 그리고 강대국들이 불안을 관리할 때, 그 비용은 두 나라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중이 관세, 희토류, 반도체, 대만, 중동 문제를 서로 거래하고 조정하는 순간, 그 여파는 주변국으로 번진다. 한국은 그 주변부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그 여파가 직접 닿는 나라다.
한국은 미중 관계가 나빠질 때만 불안한 것이 아니다. 두 나라가 갑자기 가까워질 때도 긴장하는 나라다. 대만, 반도체, 희토류, 중동 에너지, 대중 수출, 조선과 방산까지 한국의 주요 이해가 미중 협상의 옆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중이 서로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이해가 자동으로 반영된다는 보장은 없다.
미중 갈등이 격해지면 한국은 선택을 압박 받고, 미중 거래가 깊어지면 한국은 자기 이해가 빠진 합의를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위험한 것은 미중 갈등만이 아니다. 한국의 이해가 빠진 미중의 거래도 위험하다. 미중이 서로를 이기지 못해 불신을 관리하는 시대에는, 중간에 선 나라들이 더 정교하게 자기 자리를 계산해야 한다.
냉전이 아니라 헤징의 시대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미 공군의 대형 전략 수송기인 C-17 글로브마스터 III가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 착륙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촬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AFP 연합뉴스
냉전은 줄을 세우는 질서였다. 어느 진영에 설 것인가가 세계정치의 가장 큰 질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미중 경쟁은 그렇게 단순하게 둘로 갈라지지 않는다. 지금 많은 나라는 강대국을 선택하려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이 만든 위험을 피하려 한다.
미국은 필요한 보호막이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부담이 되었다. 중국은 필요한 제조망이지만, 깊이 기대기엔 위험한 힘이 되었다. 그래서 각국은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 두 강대국 모두를 이용하면서도 두 강대국 모두와 거리를 남겨두려 한다.
국제정치에서는 이런 위험 분산의 태도를 헤징이라고 부른다. 한쪽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 위험을 나누는 방식이다. 냉전의 세계가 진영을 고르는 세계였다면, 지금의 세계는 위험을 분산하는 세계에 가깝다.
앞으로 도래할 시대는 한 강대국이 다른 강대국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라, 강대국을 끝까지 믿지 않는 시대다. 안보와 무역, 기술과 에너지는 한 진영 안에 묶이지 않고 여러 갈래로 얽힌다. 각국은 줄을 서기보다 거리를 잴 것이고, 충성을 약속하기보다 위험을 나눌 것이다. 이것이 베이징 정상회담 너머로 보이는 다음 세계의 윤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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