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육아휴직이 아직 '정상 경로'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복귀 후 조직 내 압박이나 비공식적인 불이익에 대한 염려는 워킹대디에게 큰 장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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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분명히 좋아졌다. 고용노동부 발표(2025.10.28)에 따르면 2025년 1~9월 남성 육아휴직급여 수급자는 전체의 36.8%로, 불과 7년 전인 2018년의 17.8%에서 두 배 이상 오른 수치다(2022년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육아휴직 사용자 3명 중 1명 이상이 남성인 셈이다.
그런데 현장의 온도는 다르다. 민주노동연구원 '남성 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 격차와 차별'(2024)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사용한 적 있는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71.0%는 육아휴직 신청을 하는 데 눈치가 보이거나 아예 신청이 어렵다고 답했다. '썼다'고 답한 사람들 중 71%가 눈치를 봤다는 얘기다.
더 씁쓸한 수치가 있다. 국가데이터처 '2024년 육아휴직 통계'를 보면 지난해 육아휴직을 시작한 남성의 67.9%가 300인 이상 대기업 소속이었다. 5~49인 규모 중소기업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7.2%에 그쳤다. 대기업 남성은 쓸 수 있고, 중소기업 남성은 사실상 못 쓰는 구조다.
과거의 낙인, 현재의 피해
우리 조직도 예외는 아니다. 지인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했을 때, 상사는 물었다고 한다.
"집에 유산 받을 거 있어?"
육아휴직을 가정의 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돈의 문제로만 귀결시킨 것이다. 이런 시선이 생겨난 데에는 역사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과거 일부 남성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조직에 대한 불만 표현의 수단으로 쓴 사례가 누적돼 왔다. 인사 이동에 불만이 생기면 육아휴직으로 맞서는 식이다. 그 경험이 관리자들 사이에 '아빠 육아휴직 = 회사 불만 표시'라는 공식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실제로 육아휴직 후 퇴사하는 수순의 남성 직원들이 꽤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 남편에게 육아휴직 생각이 있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우리 회사는 기본적으로 남성 비율이 높지만, 육아휴직 쓰면 결국 다 나가던데? 그러니까 나갈 사람만 육아휴직 쓴다는 이야기 아냐? 계속 다닐 거면 못쓰지."
편견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는 그렇게 형성됐다. 문제는 그 편견이 지금도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남성 육아휴직이 아직 '정상 경로'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복귀 후 조직 내 압박이나 비공식적인 불이익에 대한 염려는 워킹대디에게 큰 장애가 된다.
쓰기 전에도 눈치, 쓰고 나서도 불이익. 워킹대디는 이중으로 걸러진다.
선례 없음의 공포
지난해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지상파 기자도 워킹대디였다. 저출생 대책을 심층취재하는 그가 인터뷰 말미에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근데 저도 아이가 어리거든요. 아이랑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기자라는 특성도 있지만 제가 저출생 대책을 심층취재하면서도 당장 제 현장의 한계도 많이 느껴요. 여자 동료나 선후배는 육아휴직 많이 쓰고 그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데, 아직 남자들 세계는 안 그렇거든요. 그럼 평가나 승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서 쓰기가 힘들어요."
저출생 문제를 카메라 앞에서 누구보다 날카롭게 짚던 사람이, 정작 자신의 육아 앞에서는 말문을 닫아야 했다.이것이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다. 기본값이 다르다.
워킹맘에게는 선배가 있다. 어떻게 육아휴직을 쓰고 어떻게 복직했는지, 어떤 상사가 이해해 줬는지, 어떻게 커리어를 이어갔는지.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들이 쌓여 있다. 워킹맘의 고충은 여전히 크지만, 최소한 '생존한 선배의 경로'는 눈에 보인다.
워킹대디에게는 그 지도 자체가 없다. 아무도 먼저 그 길을 걷지 않았으니, 걸어도 되는 길인지조차 모른다. 선례가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경쟁에서 혼자 뒤처질지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다.
미혼 상사와 워킹대디 사이

▲워킹맘에게는 있는 것이 워킹대디에게는 없다. 공감, 선례, 그리고 말을 꺼낼 수 있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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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포는 매일 오후 5시 30분에도 작동한다. 우리 팀에서 있었던 일이다. 상위 직급이 미혼 여성 팀장님이었을 때, 퇴근 무렵 자료 요청이나 갑작스러운 회의 소집이 잦았다. 그 팀장님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하원, 하교 시간이라는 '마감'이 본인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워킹대디 동료는 아이를 픽업해야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육아를 챙기는 아빠라는 이미지가 '열심히 하지 않는 직원'으로 읽힐까봐서다. 이건 그 팀장만의 문제도 아니다.
나 역시 인사이동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상사의 성별이 아니다. 상사가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혹은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다. 그게 내 삶의 매일매일의 피로수위를 달리하게 만든다는 걸 이젠 알기 때문이다.
워킹맘보다 더 이중적인 편견
워킹맘은 적어도 '힘들겠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 '워킹맘의 수업료'라는 제목 자체가 그 공감 위에서 가능한 연재다.
하지만 워킹대디는 두 방향에서 동시에 눈치를 받는다. 한쪽에서는 "남자가 왜 집에 일찍 가냐"는 전통적 성고정관념의 압박이, 다른 한쪽에서는 "여자도 힘든데 남자가 무슨"이라는 워킹맘 중심 담론의 사각지대가 있다. 워킹대디는 어느 쪽의 편도 아닌 곳에 서 있다.
워킹맘에게는 있는 것이 워킹대디에게는 없다. 공감, 선례, 그리고 말을 꺼낼 수 있는 공간.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25)의 연구에 따르면 가족친화적인 조직문화 내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은 갈등이 완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의 도입 자체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사용하는 환경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아직은 그런 조직이 드물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는 오후 5시 30분에 자리를 뜨면서 뒤통수에 시선을 느낀다. 지도 없이 걷고,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치르는 수업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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