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당시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 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형근이 누구인가?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평생을 반공 이데올로기로 살아온 인물이다. 안기부에서 그의 행적은 정치공작과 불법 고문으로 점철되어 있다. 다양한 공안사건을 맡으며 수없이 많은 이들을 고문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피해자들의 수많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받은 적도 없다.
국내 정치에 개입하기 위한 노골적인 정치공작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혐의도 받아왔다. 그가 벌인 공작정치의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단편은 엿볼 수 있다. 19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홍사덕 후보를 "첩을 두고서도 사생아는 팽개치고 3명의 처녀와 6명의 유부녀를 농락한 파렴치한 후보"라는 유언비어가 담긴 유인물을 몰래 살포하다 발각된 안기부 직원들은 정형근이 국장으로 있던 대공수사단 소속이었다. 정형근이 안기부를 떠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제1차장을 맡고 있던 1995년, 부활을 앞둔 지방선거의 연기를 검토하는 안기부의 '여론 수집 문건'이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버릇은 버리지 못했다. 정보통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1999년, 전직 안기부 직원들을 고용해 당비로 사설정보팀을 운영해 온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그의 고급 정보가 어디에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05년에 호텔에서 유부녀와 함께 있다가 발각되자, 묵주를 받기 위해서 그랬다고 항변한 일은 애교에 가깝다.
그는 단 한 번도 고문과 조작, 정치공작 등 자신의 과거를 시인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으며, 피해자에게 사과한 적도 없다. 그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민주주의를 마음껏 유린하고, 우리 사회 최상층에서 온갖 혜택을 누려온 인물이다.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에 대해서도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정형근은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 전 대표를 '민주당에서 파견한 분대장'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동훈의 후원회장이 되어 돌아왔다. 한동훈이 이런 인물에게 기댄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한동훈은 내란 세력과 결별하고 합리적 보수를 다시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당선을 위해 내란을 옹호한 극우와 손을 잡은 것이다. 한동훈이 선거에 이겨서 화려하게 돌아오더라도, 그것이 계파의 재구성일지언정 합리적 보수 재건의 신호탄일 수는 없다.
새로운 구도는 가능할까?
보수는 극우의 민낯을 드러내며 점차 권력에서 멀어지는 중이다. 어차피 지지율 하락이 불가피하다면, 중도 확장보다 확실한 지지층을 견고하게 지키려는 선택이 실리적으로 틀린 계산은 아니다. 그러나 혐오와 배제의 언어로 무장하고, 과거 반공 독재 시절의 향수에 젖어 있는 이들이 여전히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극복해야 할 일이지, 견뎌야 할 일은 아니다.
한동훈이나 이준석에게 보수 혁신의 기대를 걸 수 없다면, 아예 우리가 알던 보수를 대체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됐다. 진보정당이라는 버거운 이름표를 달고 있었던 민주당에 합리적 보수, 중도 보수라는 원래의 이름을 찾아주고, 민주당 왼쪽에 새로운 진보적 정치세력을 양성하는 방식 말이다. 퇴행적 극우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그들이 보수를 대표하는 것은 막는 방식 말이다.
이런 구도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 정치의 성장을 기대하던 이들이 오랫동안 꿈꿨던 미래상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런 미래상의 희망을 엿볼 수 있을까?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낡은 법과 제도는 거대 양당에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양당 구도에 강력하게 결합해 있는 정치 문화는 쉽게 극복되기 어렵다. 그래서 대안적 진보도, 대안적 보수도 등장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혁신 동력을 잃어버린 극우가 여전히 보수의 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 민주주의가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한동훈과 이준석에게 또 기대를 걸 것이 아니라면, 포기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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