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3월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지역경제발전과 사회연대금융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사회연대금융 국제심포지엄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축소·폐지한 사회적경제 정책을 복원하고, 더 나아가 사회연대경제를 '기본사회' 실현의 중요한 정책 파트너로 설정하며 사회연대경제의 성장 촉진을 국정과제로 설정했다. 행정안전부가 이를 총괄하는 부처로 지정되어 사회연대경제 종합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연대경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정권의 선호에 맞춰 무늬만 바꾼 임시변통의 정책을 부처별로 발표하고, 정권 후반기에 흐지부지되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동안 형성된 사회연대경제정책의 틀도 근본적으로 혁신할 때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현재 사회적기업인증 제도는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은 후에 인증을 반납하고 이윤추구형 기업이 되는 '퇴행적 변화'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55세 이상 고령자를 고용한 사회적기업과 중증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 규모와 방식이 같은 '규격화의 오류'도 지속되고 있다. 협동조합은 작년 말 기준으로 2만 5천 개 이상이 설립되었음에도 절반에 가까운 협동조합이 휴업 상태에 있다.
더욱이 일반협동조합을 영리법인으로 규정한 협동조합기본법의 문제점으로 인해 조합원 공통의 사회 문제 해결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협동조합의 향기가 퇴색되고 있다. 이처럼 사회연대경제는 기업 간 협력과 연대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들은 행정 업무의 대행 기능에 그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사회연대경제 정책은 이제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목표'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서 시민체감형·시민참여형 협력과 연대형 사회연대경제로 혁신하는 데 이바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사회적기업육성법과 협동조합기본법을 전면 개정해서 상호성과 공익성을 담보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시민들의 참여와 사회연대경제기업 간 협력과 연대를 촉진하는 각종 세제 및 금융지원제도를 도입하고, 주거·건강·돌봄·일자리·교육 등 핵심 정부정책의 중요한 파트너로서 사회연대경제를 설정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가치기반금융협동조합으로 새로운 사회연대경제 시대 열자
시민들의 참여와 사회연대경제기업 간 협력과 연대를 촉진하는 금융지원제도의 마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기반금융협동조합'을 도입하는 것이다. 가치기반금융협동조합은 사회적·환경적 프로젝트의 집행자로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자금의 수요자와 자금의 공급자가 동등한 조합원으로 참여해서 공동소유하고 운영하는 협동조합이다. 사회적 예금자 조합원들은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자신이 예금한 돈이 투자되도록 지정하고, 관심을 갖고 성공을 응원하며 그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혁신적 금융협동조합이다.
가치기반금융협동조합은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연대적 관계와 자금 수요자 간 연대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고, 금융과 실물 부문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에도 매우 유리하다. 자금의 수요자인 사회연대경제기업의 사업 수혜자 혹은 서비스 구매자들이 예금 및 펀드 가입 등 그 사업의 윤리적 투자자로서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 금융협동조합으로부터 지원받아 회생하고 성장한 사회연대경제기업 및 종사자들이 감사와 연대의 표시로 월급통장, 법인통장 및 예금의 거래를 가치기반금융협동조합으로 이전하여 연대의 서클이 확산될 수 있다. 이는 예금 등 수신기능이 없는 일방향 지원금융인 정책금융이나 임팩트금융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효과다.

▲가치기반 금융협동조합의 3대 핵심가치와 3대 사업전략
2026 가치금융 국제포럼
대표적으로 글로벌가치기반은행연맹(GABV) 회원금융기관인 캐나다 퀘벡의 '데자르댕 연대경제신협'은 1971년 설립된 이후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금융기관의 전형적인 모습을 개척해 왔다. 거래의 성사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개발기관을 지향한다. 사람, 집단, 지역사회를 먼저 만나 사업의 잠재력과 자원을 포착하고자 노력하며, 사람들이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을 자격을 갖춰야 하는 게 아니라 금융기관이 사람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혁신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경제 정책을 통하여 단순히 정부의 정책금융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을 경험했다. 이러한 한계에 대한 분석에 기반해 이재명 정부는 '사회연대경제단체 신협 도입 허용' 등을 통해 사회연대금융 활성화를 국정과제로 설정했다.
시민 참여 가로막는 제도 실패 바로잡아야
금융위원회를 포함한 금융 정책당국은 시민 참여에 기반한 사회연대경제가 발전한 국가와 지역에서는 가치기반금융협동조합이 이미 오래전부터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퀘벡 모두 가치기반금융협동조합이 발달했다. 프랑스의 신용협동조합(Credit Cooperatif, 1893)과 윤리은행 협동조합(La Nef, 1988), 이탈리아의 방카 에티카(Banca Etica, 1999)등이 사회연대경제 전반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사회적 가치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데 협력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탈리아 방카 에티카(Banca Etica) 금융협동조합은 사회적 가치 창출 기업에 4억 2070만 유로를 지원했다.
방카 에티카 홈페이지 갈무리
이탈리아 북부 파도바에 본부를 둔 방카 에티카 금융협동조합은 1994년, 사회적경제 조직, 평화 및 환경 운동가,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주체들이 모여 결성했다. 이들의 목표는 제3섹터의 필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금융기관을 시민의 힘으로 직접 설립하는 것이었다. 수천 명의 개인과 18개의 창립 회원 단체가 참여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최소 자본금 650만 유로를 모집했고, 1999년 3월 8일,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인가를 거쳐 파도바에 첫 지점을 열며 공식적으로 은행 업무를 시작했다.
방카 에티카는 2023년 말 기준 조합원 4만 8천여 명, 총자산 28억 6100만 유로, 자기자본 1억 9700만 유로에 달하는 가치기반금융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방카 에티카는 사회주택 건설·재생에너지 시설 확충 등 특정 사회·환경적 프로젝트 지원을 목적으로 발행되는 정기예금상품 뿐만 아니라 임팩트 연계채권도 발행한다. 우리 금융규제 환경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이탈리아에서는 시민들의 의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은 외국금융기관에는 이윤추구형 금융비즈니스를 자유롭게 허용하면서 정작 지역에 뿌리를 둔 신협과 새마을금고, 지역농협은 '제2금융권' 혹은 '상호금융'이라는 이름으로 60년 이상 손발을 묶어 놓고 있다. 또한 2011년에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은 금융과 보험분야에서는 협동조합을 설립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사회연대경제는 신용리스크가 높다는 해묵은 인식이 제도의 실패를 방치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사회적가치 프로젝트에 시민들이 투자할 수 있는 '협동조합형 금융중개기관'의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 나아가 '사회적 상속'이 가능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사회투자를 촉진하고 사회적 예금 및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시민이 참여하고 정부가 협력하는 사회연대경제로 전환하는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장종익 한신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본인
필자 소개 : 장종익 교수는 한신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를 가르치고 있다. 연구주제는 시민이 주도하고 정부가 협력하는 사회연대경제의 발전모델과 사회혁신전략이다. 연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에서 응용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 Strategic Management of Cooperatives: An Organizational Economics Perspective >(2026, Springer) 등의 책을 집필하였고, 이재명정부 국정기획위원회 기획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한국협동조합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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