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11 11:57최종 업데이트 26.05.1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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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강원 인제군 남면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초록빛 신록과 봄 햇살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인제군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요? 이렇게 질문하면 사람들의 답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누구냐에 상관없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할지 모른다.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더 성장하여 풍요로운 나라에서 살기를 바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경제가 잘 성장하는 만큼 사람들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분배나 복지 정책이 잘 설계된 나라를 원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게 쉬운 질문은 아니다. 저런 질문 앞에 있으면 나도 생각이 많아진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시기마다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다만 요즘의 생각을 묻는다면 나는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다.

'안전한 나라'에 대한 사람들의 상은 다양할 것이다. 각종 산업 재해를 포함하여 한국 사회는 크고 작은 사회적 재난을 여럿 겪어왔다. 그게 천재지변으로 인해 피할 수 없는 비극이라도 참혹한 일일 텐데, 이 사회에는 미리 대비만 제대로 하거나 안전 규제만 잘 지켰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가 정말 많았다.

아마 보통의 경우 떠올리는 '안전한 나라'라 함은 이런 식의 사고를 막을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진 나라일 것이다. 여기에 나는 '안전한 나라'에 비슷하지만 다른 결의 의미를 추가하고 싶다. 바로 권력자의 부당한 권력 행사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나라이다.

12·3 내란이 보여준 헌정 시스템의 한계

12·3 내란 이야기다. 미리 부연하자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쿠데타와 계엄, 내란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왜 하필 12·3 내란이냐고 질문할 수 있다. 모두가 문제이긴 한데 다만 후자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군인들이 부당하게 국가권력을 잡고 독재를 통해 민주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사람들을 탄압했던 역사가 있었다. 그 이후에 그런 일을 막겠다고 한 것이 87년 9차 개헌을 통한 제6공화국 수립이었다. 그리고 다소의 부침이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 민주공화국은 체제 따라 유지되고 있다는 게 우리가 가진 믿음이었다. 그런데 이 믿음을 일거에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실제로 이루어진 게 2024년 12·3 내란이었던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권우성

12·3 내란을 위한 비상계엄은 선포 몇 시간 만에 국회에서 해제가 결의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까지 가기에 변수는 정말 많았다. 만약 더불어민주당이 당시 국회 다수당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는 텔레그램 단체 메시지를 통해 자당 의원들을 계엄 해제 표결 장소인 국회 본회의장이 아니라 당사에 모이라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정작 국회에 있던 본인은 표결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계엄해제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고작 18명만 참석할 수 있었고 추 후보는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추 후보뿐만 아니라 당시 국민의힘 여러 의원이 본회의장 진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나경원 의원은 후에 '국회를 둘러싼 시민들 때문에 진입할 수 없었다'는 사실 관계에서 벗어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여당인 이런 국민의힘이 국회 다수당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계엄 해제에 적극적이었을 것이라 믿을 수 있나?

위기 막을 수 없는 시스템은 고쳐야

다행히 당시는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었고 이들은 계엄 해제안을 의결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러니 마음을 놓아도 되는 것이었을까? 그렇지만도 않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순탄하게 국회에 들어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의회를 막았고 의원들은 담을 넘어 겨우 국회에 들어갔다. 군은 국회에 헬기를 타고 내려왔으며 윤석열은 이들에게 본회의장에 진입해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미 국회가 계엄 해제를 결의한 이후에도 2차 계엄을 위해 군을 움직인 시도가 확인되었다. 아니, 아예 대통령조차 계엄을 두 번 세 번 선포하면 될 일이라고 말한 게 드러나지 않았나. 즉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게 아니라 여러 우연과 노력이 겹쳐서 간발의 차이로 겨우겨우 큰 사고를 막아낸 것이다.

12·3 내란은 한순간의 해프닝이 아니었다. 윤석열과 내란 동조 세력이 오랜 시간 기획하고 준비한 주권 침탈 행위였다. 그리고 그 기획과 준비가 실제로 실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상식을 벗어나 막무가내로 권력을 휘두르는 최고 권력자 앞에선 우리 사회가 안전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체제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대통령 개인의 양심과 책임에 많은 걸 기대고 있었다. '적어도 멀쩡한 사람이라면 이런 긴급 권한을 자기 사익을 위해 쉽게 사용하진 않겠지'라는 전제가 체제에 깔려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권력자가 우리의 상식을 아득히 넘어선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런 사람이 대통령직에 오르는 걸 우리 사회가 막을 능력이 없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답은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는 헌정 시스템을 다시 고치는 것밖에 없다.

국회의원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

우원식 국회의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개헌안 표결을 다시 시도하기 위해 이날 본회의 개회를 선언한 우 의장은 국민의힘이 개헌안과 50개 민생법안 전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며, 개헌안을 상정하지 않고 산회를 선포했다.남소연

지난 8일 39년 만에 추진된 개헌이 결국 무산되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직접 손 편지를 쓰고 여러 방송에 나와 개헌의 필요성을 호소했음에도 그렇게 되었다. 물론 개헌은 쉬운 일이 아니고 그래야만 한다. 헌법은 국가를 구성하는 나라의 최고 규범인데 개정이 너무 쉽다면 우리 사회를 떠받드는 체제가 안정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핑계나 지렛대 삼아 필요한 일조차 하지 않는 건 명백히 문제다. 이번 개헌안에는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국가책임을 명시하고 부마항쟁과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 시 국회의 승인 받는 걸 의무로 하고 48시간 이내에 승인 받지 못할 시 계엄의 효력이 상실되는 내용도 담겼다. 즉 대통령의 계엄권을 지금보다 더 큰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이다.

이번 개헌안에는 최근 경험한 국가적 위기, 우연과 여러 변수가 겹치고서야 겨우 막을 수 있었던 국민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막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위해 근본적으로 제도를 바꾸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개정안에 논쟁의 여지가 있는가. 이번 개헌안에는 권력 구조나 임기제 형태를 바꾸는 내용도 없었다. 지방분권의 국가책임, 민주화 정신 수호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계엄권의 제한이라는 내용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야당인 국민의힘은 의원 전체 표결 불참을 선언하며 개헌을 제대로 표결할 수 없게 막았다. 심지어 8일 개헌안이 재상정되려 하자 필리버스터를 선언하며 다른 민생 법안을 인질 삼아 개헌의 물꼬를 끊었다.

국민의힘의 개헌 반대 명분이 얼마나 황당한지 많은 이들이 지적했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지금의 국회 환경이 거대 여야가 협치하기에 얼마나 어려운 지도 이해해 보겠다.

하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이 모든 걸 뒤로 제치고, 오직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에 놓고 개헌에 대해 판단해줄 수 없을까. 2024년 12월 3일, 진영과 정파를 넘어서 모든 국민이 느꼈던 그 불안을 생각해 줄 수 없을까.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대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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