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찾는 공원에도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박은영
일단, 일본에는 혼자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일본에도 러닝 크루는 있다. 도쿄 시내 러닝 명소로 유명한 고쿄(皇居)나 요요기 공원 같은 곳에는 무리를 지어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도쿄 지역을 중심으로 패션이나 스포츠 브랜드들이 주최하는 각종 러닝 이벤트가 열려 뉴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에서 '러닝'이라 하면, 혼자서 조용히 하는 운동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일본의 러닝 인구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남성이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 대부분은 사람들과의 교류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 관리나 스트레스 해소 등을 이유로 달린다. 일본 각지에서 혼자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혼자 달리는 시간을 "효과적인 명상"이라 말하는 일본인도 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다. 그는 전업 작가가 된 서른세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40년 이상 달리기를 취미로 하고 있다. 2007년에는 달리기에 관한 자전적 에세이집 〈달리기에 대해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를 출간하기도 했다.
책에서 그는 "달리기는 기본적으로 아주 개인적인 운동"이라 말한다. 동시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라며 달리기의 매력을 예찬한 바 있다. 내 주변에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혼자 달리는 것을 선호한다는 일본인들이 많다.
한일 양국 간 달리는 속도 차이도 흥미롭다. 물론 러너에 따라 개인차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본에는 천천히 달리는 러너들이 많다. 내가 찾는 공원에는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느리게 달리는 것을 '슬로 조깅'이라 부른다.
슬로 조깅은 후쿠오카 대학의 다나카 히로아키(田中宏暁) 교수가 대중화한 운동법이다. 다나카 교수는 슬로 조깅의 이상적인 페이스를 '니코니코(싱글벙글) 페이스', 즉 '옆 사람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속도'라 말한다.
슬로 조깅은 거리를 늘리기보다, 꾸준히 달리는 것에 초점을 둔 운동이다. 에너지 소비가 높으면서도 신체 부담은 적어, 각종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이 슬로조깅을 각종 미디어나 지자체의 건강 관련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이 운동법이 주목을 받으며, 다나카 교수의 책이 한국어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렇게 천천히, 꾸준히 달리는 것은 일본인들의 스포츠 생활을 상징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의 페이스에 맞는 운동을 부담 없이 오랫동안 이어 나가는 것 말이다. 나는 18년째 일본에 거주 중인데 "좋아하는 운동이 있냐?"라고 물으면 연령대 관계없이 러닝, 수영, 탁구 등 "정기적으로 운동을 즐기고 있다"는 대답이 금세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활을 잘 표현하는 단어가 '평생 스포츠(生涯スポーツ)'라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 유년부터 노년까지 전 생애에 걸쳐 스포츠를 이어간다는 말이다. 일본 정부는 이것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스포츠가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의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는 건강 수명을 늘리고, 의료비와 간병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고령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예방하는 기능도 한다. 또한 운동을 통해 다양한 세대가 교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효과도 있다.
학교에서 운동 즐기는 일본인들

▲학교 강당을 개방해 지역 주민들의 탁구 교실을 열고 있다.
박은영
평생 스포츠 문화의 정착을 위해 일본 정부가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학교'다. 일본의 대부분의 공립학교 시설은 배움의 공간인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운동 시설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초중학교도 방과 후에는 매일 같이 탁구, 배구, 수영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스포츠 교실이 열리고 있다.
우리 아이 또한 매주 금요일 근처 중학교에서 열리는 탁구 교실에 참석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유치원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하다. 아이는 어르신들에게 간식을 받아 오기도 하고, 저학년 아이들과 탁구 연습을 하기도 하며 스포츠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학교는 재학생들에게도 스포츠를 접하는 계기가 된다. 일본 초등학교에서는 고학년이 되면 다양한 스포츠 클럽 활동이 시작된다. 중학교에 진학하면 '부카쓰(部活)'라 불리는 동아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관련 조사에 의하면 중학교 남학생 64.1%, 여학생 49.8%가 스포츠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들의 사교육에서도 스포츠가 강세다. 일본의 대표적인 스포츠 정책 기관인 '사사카와 스포츠 재단(SSF)'의 최근 설문 조사에 따르면 4~11세까지의 아동들의 사교육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수영'이었다. 이밖에 축구, 야구, 체조 등도 상위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의 학부모들이 학업 못지않게 스포츠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학교나 사교육을 통해 접한 운동을 성인이 되어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올해 50살이 된 내 지인 히사코씨는 중고등학생 시절 배구부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이후 취직과 육아로 코트를 떠났다가, 10여 년 전부터 다시 지역 배구단에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연습에 참여하고, 각종 친선 경기에도 출전하고 있다.
히사코씨에게 배구는 인생의 활력소다. "배구가 그렇게 재밌어요?"라는 내 물음에 그녀는 "재밌고말고! 팀원들과 함께 즐겁게 땀을 흘리고 나면 한 주간의 스트레스가 다 풀려"라고 웃으며 답했다. 최근에는 히사코씨의 딸도 엄마와 같은 배구팀에서 뛰기 시작했다. 운동이 가족과의 추억을 만드는 매개체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스포츠를 즐기는 일본인들을 보고 있자면, 나 역시 평생 즐길 수 있는 '인생 운동'을 찾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경쟁과 비교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운동마저도 빠르게, 더 잘하려는 것에 집착하지는 않았나 반성할 때도 있다.
주변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가면 어떠랴. 묵묵히 달리는 일본의 러너들을 보며, 나 역시 내 속도대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리겠다는 다짐도 새삼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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