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한 뒤 포수 양의지와 포옹하는 펭수야구란, 그들의 일상을 곱씹어 반성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매개물은 아닐까
두산 베어스
뚝배기 같은 팀, 소문나지 않은 강팀
더구나 베어스는 '스타플레이어'와는 거리가 좀 있는 팀이었다. 90년대 중반, 대학 시절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투수 이상훈과 유격수 유지현이 날고뛰던 잠실 라이벌 트윈스와 엎치락뒤치락 우승을 주고받던 베어스의 에이스 김상진과 유격수 김민호는 신고선수 출신이었다. 2000년대 중반 '초고교급' 박병호과 박경수를 뽑아놓고도 좀처럼 터지지 않는 잠재력에 속 태우던 트윈스의 곁에서,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며 부채질을 하던 베어스의 간판 손시헌과 김현수도 역시 신고선수로 입단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최강'이나 '왕조'니 하는 단어와도, 어쩐지 딱 달라붙는 이름이 아니다. 해태는 80~90년대, 현대는 2000년대 초반, SK는 2000년대 후반, 삼성은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떠올리지만 두산의 전성기는 딱 떠오르지 않는다. 무려 6번의 우승과 9번의 준우승을 경험한 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는 이들이 제법 있을 정도다. 그저 늘 강했지만, 소문나게 압도적으로 강했던 적은 거의 없는 팀이고, 그러면서도 심심찮게 더 강했던 팀을 주저앉히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왕좌에 조용히 올라앉는 팀.
베어스가 강했던 것은 늘 육성하고, 훈련하고, 또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서다. 그래서 화려하진 않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움직이고, 조금 더 버티면서 싸우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혹은 전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달린 끝에 찾아낸 기회의 순간을 잡아내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어스를 늘 지켜보고 교감하며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그런 에너지와 색깔이 오랜 세월 쌓여있다. 옆 동네 LG 트윈스의 팬들이 원대한 꿈을 품고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 야심가라면, 두산 베어스는 발밑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생활인들이다. 그래서 엘지의 잠실에 '내일은'이 울려 퍼진다면, 두산의 잠실에는 '오늘도'가 메아리친다.
왕조보다 미라클! 뚝심! 허슬!
그곳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버텨냈다'는 뿌듯함이 있다. 비록 지더라도 한 경기를 치러낸 것이고, 비록 대단한 성공은 없었더라도 하루를 살아낸 것이 얼마나 대단하냐, 라는 대담한 자기긍정이 있다. 그리고 그 긍정의 배짱은 세상을 장밋빛으로 물들일 수는 없지만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 정도는 되어준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오랫동안 한 걸음 뒤에 머물던 잠실 라이벌인 LG 트윈스가 한발 앞서나가기 시작하고 꽤 현실감 있게 '왕조'를 외치면서 두산 팬들의 마음도 복잡해졌다. '잠실의 주인이 누구냐'는 트윈스 팬의 시비에 응수하던 '누가 더 강하냐'는 답이 입안에서 공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 더 내공 깊은 베어스 팬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대꾸한다. "왕조? 우리는 미라클이다" 왕조를 경험한 구단이 세 개냐 네 개냐 말들이 아무리 많아져도, '미라클', '뚝심', '허슬' 같은 단어들을 쓸 수 있는 것은 베어스뿐이다. 물론 '원년 챔피언'이라는 왕관에 더해서 말이다.
베어스의 야구에서는 유난히 생활의 냄새가 난다. 화려한 꿈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는 기쁨. 거창한 낭만보다 익숙한 응원가 한 소절에서 얻는 위안. 그리고 내일도 다시 야구장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 어차피 살아있는 한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일상을 향하는 마음으로. 베어스의 뚝심을 잡고, 베어스의 미라클을 함께 꿈꾸는 이들의 향기다.
▲잠실야구장의 만원관중요즘엔 일 년 내내 입장권을 사기 위해 시간 맞춰 '광클전쟁'에 참전해야 한다.
연합뉴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