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08 20:23최종 업데이트 26.05.0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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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동훈 무소속 후보의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 후원회장 인선 논란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말]
한동훈, 부산 북갑 예비후보 등록무소속 한동훈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예비후보가 4일 오후 부산 구포동 북구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한민국 보수에도 여러 계보가 존재한다. 이승만의 건국을 정통성의 뿌리로 삼는 보수가 있고, 박정희의 산업화와 경제개발을 보수의 성취로 내세우는 보수가 있다. 또 김영삼의 민주화를 보수의 확장된 유산으로 포섭하는 흐름도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역시 개인의 배경이나 정권의 성격으로 볼 때 큰 틀에서는 '박정희 계보'의 연장선에 놓인 정치다. 역대 보수 정권이나 대통령들이 다양한 공과가 있지만, 보수의 역사적 자산으로 관리하려는 흐름은 있다.

하지만 단 하나, 보수조차 끝내 끌어안지 못하고 폐기한 이름이 있다. 바로 전두환이다. 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학살 책임은 단순한 정치적 과오가 아니다. 그것은 보수 내부에서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으로 남았다. 그래서 보수는 필요할 때마다 전두환과 거리를 둬왔다. 역사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형근이 가담했던 전두환 체제의 본질

정형근은 바로 그 카테고리의 인물이다. 정형근은 단순한 원로나 보수 정치인이 아니다. 검사 출신인 그는 1980년대 공안통치의 핵심 실무 라인에 있었고, 수많은 공안사건과 고문정치의 그림자와 연결돼온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고 김근태 전 의원, 서경원 전 의원 고문 사건 등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안기부 공안수사단장까지 지낸 그의 고문 책임과 악행에 대한 기록과 증언은 차고도 넘친다. 그런 그가 훗날 국회의원이 되고, 그 지위를 이용해 법적 책임은 비껴갔을지 몰라도, 역사적 책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혹은 의원직이라는 제도적 지위를 얻었다고 해서, 그가 가담했던 체제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역사는 법정보다 훨씬 긴 기억을 갖는다. 법적 책임의 소멸과 역사적 책임의 소멸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고문은 단순한 시대의 과오가 아니다. 인류가 보편적으로 금지하기로 합의한 반인권적 범죄다. 민주주의 국가는 그것을 '시대적 맥락'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독일이 나치를 단순한 과거 정치세력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르헨티나가 군부독재의 협력자들을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법정에 세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반인권범죄에는 시효가 없다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 문명이 합의한 원칙이다. 그런데 한동훈은 이런 인물을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 자리에 앉혔다.

한동훈 측의 해명은 더 문제적이다. 부산 북구갑에서 3선을 했고, 지역 신망이 높고, 윤석열 계엄 이후 자신을 지지했으며, 후원회장일 뿐이라는 논리다. 몰역사적이며 편의적이다. 정치적 필요가 있을 때 역사를 소환하고, 정치적 부담이 될 때 역사를 외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 보수 정치가 반복해온 패턴이다.

쓸모 있으면 된다? 한동훈 정치의 한계

지난 2008년 11월 26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이 쌀소득 보전 직접지불금 불법수령사건 실태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에 출석, 건보공단 관계자들과 답변자료를 검토하고 있다.남소연

지역 기반이 탄탄하고, 계엄 국면에서 내 편을 들었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결국 "쓸모 있으면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가치의 언어가 아니라 조잡한 세력의 언어다. 정치의 목적이 결국 지역 기반 관리와 세력 규합에 불과하다면 모를까, 국가의 미래와 정치의 방향을 말하는 지도자라면 최소한 넘지 말아야 할 상징의 선은 있어야 한다.

"과거를 묻지 않고 미래를 위해 함께 간다"는 말은 듣기엔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이런 질문 앞에 멈추게 된다. 그렇다면 전두환도 말년에 "계엄은 잘못됐다"고 말하면 정치적 후견인이 될 수 있는가. 친일·반민족 행위자도 해방 후 대한민국을 지지한다고 말하면 역사적으로 복권될 수 있는가. 아니다.

민주주의에는 타협 가능한 과오와, 결코 정상화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고문과 쿠데타는 후자다. 그 선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결벽이 아니다. 민주주의 공동체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이번 인선의 본질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한동훈 정치의 한계를 드러낸 일이다.

한동훈은 그간 "새로운 보수"를 말해왔다. 과거의 적폐와 결별하고, 상식과 원칙 위에 서는 정치, 그 언어는 분명 많은 사람의 기대를 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그가 손을 잡은 것은 미래의 가치가 아니라 과거의 잔재다. 정치인은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 누구와 함께 서느냐로 증명된다. 이번에 한동훈은 스스로를 증명했다.

6.3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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