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12 10:06최종 업데이트 26.05.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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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힘 있는 소수가 AI라는 생산수단을 독점한다. 자료사진.연합=OGQ

인공지능(AI)은 모든 형태의 지적 노동 희소성을 빠르게 없애고 있다. 법률, 코딩, 회계 같은 전문직 역시 현재진행형으로 대체되는 중이다. 여기에 피지컬 AI가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거의 모든 노동은 무한 공급될 것이다. 노동시장은 멈추고, 임금을 통한 분배 메커니즘은 작동을 멈춘다. AI 개발자조차 예외가 아니다. 노동을 매개로 경제 성장의 파이를 나눠 가졌던 지난 200년 자본주의의 분배 모델,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무한 증식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그 안에서 결국 힘 있는 소수가 AI라는 생산수단을 독점한다. 분배 모델이 흔들린 채로 소수만이 이익을 가져가는 이 상황은 두 계급만 낳는다. AI를 지배하는 소수, 그리고 그들이 만든 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기본소득을 '배급받아' 생활하는 절대다수의 사람들. 이것이 자본주의와 AI 결합의 종착점, 디지털 봉건제다.

여기서 어떤 독자는 반문할 것이다. "자본주의와 AI 결합이 문제라면, 자본주의를 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학을 발명한다 해도, 그 자체만으로 '디지털 봉건제'는 피하기 어렵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경제학 이론의 산물이 아니었다. 정치적 투쟁의 결과였다. 자본가·상인 집단이 권력을 쟁취하면서 봉건 질서가 무너졌고, 이 자본가에게 대항하는 투쟁을 통해 아동 노동 같은 야만적 착취가 멈췄다. 새로운 경제 체제는 언제나 사회적 투쟁의 결과였다. 문제는 '지금도 그 투쟁이 가능한가'다. AI는 어떤 정부보다 빠르고 똑똑하며, 잠도 자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정부가 AI 군비 경쟁 중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견제해야 할 대상에 투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답은 모두가 공유하는 오픈소스(open source) AI다. 오픈소스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 수정, 공유할 수 있는 소스 코드를 가진 소프트웨어이다. AI 분야에서도 오픈소스를 활용한 '딥시크'(DeepSeek)가 폐쇄형 모델을 빠르게 추격하며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오픈소스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여자에 대한 효율적 보상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 보상 메커니즘 없는 오픈소스는 결국 거대 기업의 공짜 부품으로 흡수된다.

이 한계의 해법을 보여준 것이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성공한 '오픈소스 화폐'이고, 성공적인 보상 체계를 만들었다. 전 세계의 에너지와 반도체 자원을 동원한 것이 그 예다. 코드가 보상을 약속했고, 전 세계 채굴자들은 그것만 보고도 자발적으로 발전소를 짓고, 데이터센터를 세웠다. 오픈소스 프로토콜 하나로 국가 단위 인프라가 생겼다.

성공의 핵심은 인센티브 정렬이다. 채굴자들은 네트워크 지분(코인)을 보상으로 받으며, 네트워크가 커질수록 자기 몫도 커진다. 정리하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공유하고 함께 운영하는 오픈소스·탈중앙화 AI(decentralized AI, 이하 'DAI')다.

지브롤터의 오픈소스·탈중앙화 회담

지난 4월 20일 영국령 지브롤터에 DAI 운동을 이끄는 사람들이 모였다. 10여 년 전 비트코인을 개척한 1세대와 DAI 분야 선두에 선 기술자·연구자들이었다. 디지털커런시그룹 창업자 배리 실버트가 주최했고, 비텐서 공동 창업자들, 구글에서 10조 원 규모 펀드를 운용한 데이비드 라위,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 크리스 폴 등이 함께했다. 필자는 작년 DAI 리서치 회사를 창업했고, 배리 실버트와의 인연으로 초대받았다.

지브롤터 서밋의 주제인 DAI는 탈중앙화라는 개념 아래 오픈소스로 '지능'을 만드는 운동이다. 만들어진 '지능'을 통해 AI 독점을 막고, 대중을 위한 AI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가장 앞서 있는 자들이 비텐서다. 비텐서는 '서브넷(부분망, 네트워크 내부의 네트워크)'이라 불리는 수많은 AI 프로그램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2026년 5월 현재 128개의 부분망이 운영되며, 각 부분망은 특정한 종류의 AI 작업 - 예컨대 언어 모델 학습, 이미지 생성, 데이터 수집, 단백질 구조 예측 등을 수행한다.

빅테크는 탑다운으로 AI를 만든다. 반면 비텐서의 각 부분망은 풀뿌리로 하나의 스타트업처럼 작동한다. 생존 경쟁에 놓인 스타트업이 관료화된 대기업 사업부보다 문제에 깊이 파고들듯, 부분망이 빅테크 AI 랩을 추월할 수 있다는 게 이 진영의 가설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DAI가 중요한 것은 알겠지만, 실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DAI로 만든 AI는 더 싸면서도 성능이 뒤지지 않는다. AI의 핵심 생산요소인 연산 인프라, 인재, 데이터 모두를 더 낮은 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연산 인프라를 비교해 보자. 중앙화 AI는 소수 기업이 막대한 자본 지출(CAPEX)로 GPU 클러스터를 짓는다. 반면 DAI는 전 세계에 흩어진 자원들과 참여자들을 매력적인 보상으로 끌어모은다. GPU판 에어비앤비 모델이다.

둘째, 인재의 질은 어떤가. DAI는 전 세계 AI 인재를 국적·학벌·소속 무관하게 얻을 수 있다. DAI는 참여자들이 해낸 결과만 보고 평가하고, 보상은 결과에 비례한다. 반면 빅테크는 여전히 대도시의 특정 학력 출신만 채용한다.

셋째, 데이터. 중앙화 플랫폼은 데이터를 칸막이에 가둔다. 정보를 주는 건 다름 아닌 우리인데도, 우리는 지금껏 기업에 무료로 주고 있고, 기업은 그 정보를 공짜로 얻고 있다. DAI 시스템은 데이터 제공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지급한다.

최근 AI 딥시크와 키미(Kimi의) 뛰어난 성능을 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비싸게 투자한다고 좋은 모델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최신 칩 없이도 전 세계 인재가 더 열린 데이터로 협력해 AI를 키운다면, 빅테크와 최소한 동급의 AI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DAI 네트워크는 AI 인재와 데이터, 인프라를 꾸준히 흡수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OGQ

물론 DAI 진영이 마주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첫째, 의미 전달이 어렵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는 단순한 캐치프레이즈에도 대중에 도달하는 데 십수 년이 걸렸다. DAI는 더 어렵다. AI 자체가 추상적인데 부분망·유마 합의 같은 생소한 방식까지 있으니 일반인이 따라오기 어렵다. 일반인이 이해해야 대중 투자가 가능하다. 둘째, 상대가 강하다. 비트코인의 경쟁자였던 국채는 가치가 누수되는 중이었지만, DAI의 상대인 빅테크는 국가가 나서서 집중 투자를 퍼붓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DAI 네트워크는 AI 인재와 데이터, 인프라를 꾸준히 흡수하고 있다. 언젠가 AI 주식이 흔들릴 때 초기 투자 매몰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사람이 DAI로 올 것이다.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상승하면 DAI 시총이 증가하며 인재도 인프라도 더욱 확충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3월 10일에 큰 사건이 있었다. 비텐서의 부분망 3번이 720억 매개변수의 거대 언어모델 'Covenant-72B'의 사전 학습을 완성했다. 광범위한 지식 측정 지표인 광범위 지식 이해(MMLU) 제로샷 점수 67.1로 메타에 라마-2-70B 모델을 능가했고, 이는 학술 논문(arXiv)으로 검증되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분산 대규모언어모델(LLM) 사전 학습으로 기록됐다. 대규모 AI 모델은 거대 데이터센터를 가진 거대 기업만 만들 수 있다는 명제가 처음으로 깨진 것이다.

한국은 이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 비트코인을 사기로 배척하거나 개발자들의 장난감 정도로 무시한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DAI는 대안적 AI 인프라이자 네트워크다. 그렇게 인식해야 의미 있는 미래 AI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짤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소버린 AI를 탈중앙화 AI 생태계 위에서 구축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빅테크와 정면승부하며 수십조 원을 쏟아붓는 길은 이미 희망이 없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조달도 어렵지만 글로벌 최정상급 AI 연구자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것은 더 어렵다. 더구나 그 투자를 정당화할 만큼의 AI 점유율을 빅테크로부터 빼앗기도 어렵다.

반면 DAI를 활용하면 훨씬 적은 투자로 같은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DAI 네트워크에는 이미 전 세계 GPU 인프라와 AI 연구자·엔지니어 커뮤니티가 연동되어 있다.

게다가 한국에는 결정적 강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유동성을 가진 암호화폐 시장이다. 국내 거래소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DAI 프로젝트의 토큰을 충분히 지원한다면, 한국은 자연스럽게 DAI 생태계의 허브가 될 수 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를 통해 동인도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것과 같은 구조다. 그렇게 보면 이 논의는 향후 DAI가 주류로 자리 잡을 때 한국이 글로벌 AI 정책 논의에서 의미 있는 발언권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은 '돈을 누가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묻게 했다. 현대인은 그 질문 위에서 새로운 금융 질서의 가능성을 열어 갔다. 지금 DAI는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지능은 누가 지배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와 AI의 결합이 그대로 굴러간다면, 위에서 말했듯 도착지는 '디지털 봉건제'다.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빅테크라는 새로운 영주들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대항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지브롤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결국 같은 직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 초창기, 비트코인 초창기와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직감이었다. 늦지 않게 합류해야 한다. 한국도, 인류도.
덧붙이는 글 이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2953

필자 이준행은 대원외고, 하버드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맥킨지앤 컴퍼니 등을 거쳐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를 설립했다. 2023년 고팍스를 바이낸스에 매각한 후 지금은 분산형 AI 플랫폼을 활용한 미디어/컨텐츠 사업을 하는 Brightmount, inc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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