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군 화천읍에 있는 산천어커피박물관
이길상
내가 두 번 이상 방문했던 또 다른 박물관은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에 있는 '산천어커피박물관'이다. 커피박물관 이름에 지역 축제의 상징인 산천어가 붙었다. 미국에 살며 30여 년간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1000여 점의 유물을 기증한 제임스 리의 애정이 담긴 박물관이다. 몇 번 방문했지만 아쉽게도 물품 기증자인 제임스 리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결국 인맥을 동원해 연락이 닿았다.
마침 춘천커피페스타 바리스타 대회가 있는 날 제임스 리를 만날 약속이 잡혔다. 이날은 아침을 포기하고 일찍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 시내 카페에서 제임스 리를 처음 만났다. 친절함과 교양이 몸에 밴 분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춘천 교외에 있는 자택을 방문했다. 2층에 보관하고 있는 미공개 물품들을 구경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물품들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그라인더, 1940년대에 만들어져 진공 포장된 채 보관 중인 미개봉 원두, 커피 가루로 그린 초대형 그림도 있었다. 바리스타 대회 참석 일정으로 인해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졌다.
몇 개월 후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아서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지난번 방문 때 보지 못한 수집품들을 구경했다. 그런데 더 많은 미공개 수집품을 제임스 리가 충청남도 고향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온갖 이야기를 품은 물품들이 창고에 갇혀 박물관을 차리고 싶은 자치단체나 개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제임스 리와의 만남 이후 여러 지방자치단체, 박물관, 대형 카페 등과 제임스 리 소장품을 이용한 커피 박물관 설립을 추진했다. 긴 협의 끝에 김포시에 있는 카페 포지티스페이스566에서 이 소장품을 인수하였다. 수집한 귀한 물품을 제공한 제임스 리, 물품의 가치를 인식하고 인수를 결정한 포지티브스페이스566 이강 대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포지티브스페이스566은 2023년에 좌석수 2190개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의 카페다. 역사적 물품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고, 꼼꼼히 기록하여 전하는 것은 품위 있는 나라의 후손인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다.
해외에서 수집한 물품을 기꺼이 기증하여 설립한 말베르크와 산천어커피박물관 이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커피박물관이 정말 많다. 내가 방문한 곳만 해도 경기도 양평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강릉 '커피커퍼 커피박물관', 강릉 '테라로사 커피박물관', 제주 '커피박물관 바움', 부산의 '부산커피박물관'과 '국제커피박물관', 파주 '헤이리커피박물관', '충주커피박물관' 등이다.
모두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고맙고 훌륭한 박물관들이다. 커피 공화국 대한민국 이미지에 색깔을 더해주는 장소들이다. 이 중에 점심을 반납하고 볼만한 박물관, 재방문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곳이 얼마나 될까?
내가 아침을 포기하고, 점심을 포기하고 찾아간 곳은 박물관이었다. 그러나 내가 진짜 만나고 싶었던 것은 전시 물건이 아니라, 물건이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물품 그 자체로는 죽은 역사다. 물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살아 있는 역사다. 수집은 개인의 열정이고 선택이지만, 기록은 사회의 책임이다. 죽은 역사를 살릴 줄 아는 우리 민족, 살아 있는 역사의 가치를 아는 우리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의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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