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06 15:13최종 업데이트 26.05.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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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독미군 감축을 검토 중"(트럼프, 미국 시각 4월 29일), "5천 명을 감축할 것"(전쟁부, 미국 5월 1일), "5천 명보다 훨씬 많을 것"(트럼프, 미국 2일)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위협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한국인들은 이것이 주한미군과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고 있다.

독일에는 주한미군보다 많은 3만 6천 명의 미군이 주둔 중이다. 트럼프는 제1기 행정부 때인 2020년 7월 29일(미국)에는 "더 이상 호구가 되고 싶지 않다"라며 1만 2천 명 감축을 발표했다. 주한미군만큼이나 주독미군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감정이 많다.

주독미군은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대륙의 중심부에 주둔해 있다. 이는 러시아의 서진 가능성에 제동을 거는 요소다. 몽골제국의 유럽 지배가 종식된 뒤인 15세기부터 유럽인들은 러시아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다. 미군 주둔이 그 공포심을 감소시키므로, 미군 감축 규모가 크면 당장에 유럽의 방위비 부담이 커진다. 패망 이후 재무장이 억제된 데 대한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경제가 예전 같지 않은 독일에도 당장은 부담이 된다.

헬무트 콜 총리가 부시 대통령에게 건넨 말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위키미디어 공용

G7 회원국 중 4개국이 유럽에 있다.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가 경제력과 더불어 정치력을 유럽 바깥으로 투사하는 데는 미군 주둔의 영향도 적지 않다. 미군의 대폭 감축 혹은 철수로 인해 유럽과 러시아의 긴장이 고조되고유럽의 에너지가 대러관계에서 소진되면, 1840년 아편전쟁 이래 구축된 유럽의 세계적 영향력은 격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독미군을 대폭 감축할 수도 있다는 트럼프의 위협은 독일 통일(1990.10.3.) 당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갖게 만든다. 미국 행정부의 최근 발언들은 2+4(동서독+미·소·영·프) 협상에 기초한 1990년 이후의 현존 세계질서와 직접적 관련을 갖고 있다. 이런 발언들이 현실화되면 독일 통일과 탈냉전 위에 토대를 둔 현존 질서는 변화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1930~2017)가 통일을 주도할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라이너 에펠만(Rainer Eppelmann) 전 동독 국방장관은 한국 <통일연구> 2017년 제11권 제1호에 실린 세미나 발표문에서 "프랑스는 논의의 초기에 명백하게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자국 안보상의 이해관계가 위협을 받는다고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뒤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영국 정부는 독일 통일에 대한 가장 완강한 반대자"였다고 지적했다.

동서독을 분단시킨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 4개국 중에서 2개국이 그런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국제적 협력 내지 용인을 통한 독일 통일의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독일은 외국과의 전쟁 없이 국제적 지지를 받으며 통일을 완성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또 다른 두 전승국인 소련의 경제위기와 더불어 미국의 '주판알 튕기기'였다.

영국·프랑스와 달리 미국은 독일 분단 당시부터 독일 통일을 반대하지 않았다. 미국 입장에서는 동독이 통일의 주역이 된다면 모르지만 서독이 동독을 흡수해 독일 내에서 소련을 약화시켜주는 것은 자국에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 입장을 계승하는 1990년 당시의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마저도 독일인들의 통일 드라이브를 보면서 염려했던 일이 있다.

부시는 통일로 인해 소련군이 동독에서 철수하면 영국군·프랑스군과 더불어 미군의 주둔 명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부시는 주독서군 철수가 주독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려했다. 헬무트 콜 회고록인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는 1990년 5월 17일(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조지 부시와의 미독정상회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회담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유럽 주둔 미군 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부시 대통령은 소련군 철수를 미군 철수와 연계시키지 않을까 걱정했다."

콜 총리는 그 우려를 불식시켰다. 콜은 "서독에도 그런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라고 상대를 안심시켰다. 그는 통일 뒤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가 콜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은 위 회고록에 적힌 콜의 아래와 같은 인식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콜은 부시를 설득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자신의 인식을 이렇게 표시했다.

"두 차례의 대전을 치른 20세기를 경험하고 독일과 유럽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럽으로부터의 미군 철수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군이 유럽에 있었다면 그런 전쟁이 두 번이나 벌어졌겠느냐는 것이 콜의 말이다. 콜이 독일인의 자존심을 억누르고 부시에게 해준 것으로 보이는 이 말이 부시를 안심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는 영국·프랑스가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자국이 주도하는 유럽연합 결성에 대한 독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등의 방법으로 불만을 달랬다. 영국은 막판까지도 불만을 표시했지만,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독일 통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소련이다. 동독의 소멸과 소련군 철수는 유럽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떨어트렸다. 그렇지만 소련은 당시의 경제위기 때문에 통일을 방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소련은 금전 보상을 받아내는 데 주력했다. 자국 군대의 철수 비용과 귀국 소련군의 주택자금까지 서독 정부에 요구했을 정도다.

친서방적 소련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통일 직전에 콜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와 관련된 새로운 금액을 제시했다. 통일 1개월 전인 1990년 9월 7일, 콜을 친구처럼 대했던 고르바초프는 이날 통화에서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꿨다.

독일이 주겠다는 80억 마르크로는 턱 없이 부족하니 180억 마르크가 필요하다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입장이었다. 마음이 급했던 콜은 사흘 뒤 통화에서 '120억 마르크 무상 제공+30억 마르크 무이자 차관'을 약속해야 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이로써 회복됐다.

소련이 돈 문제에 신경을 쓰는 사이, 미국은 주독미군 계속 주둔을 관철시키는 쪽에 신경을 썼다. 독일은 그런 미국을 의식하면서, 소련군만 철수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2+4 협상을 마무리했다.

주독미군 감축 발언... 흔들리는 세계질서

지난 4월 30일, 독일 호헨펠스에 위치한 미 육군 남부 독일 훈련 시설에서 열린 ‘미 육군 합동 결의(Combined Resolve)’ 훈련의 미디어 데이 현장에서 병사들이 철조망 옆에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주독미군의 계속 주둔은 독일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누그러트리는 효과가 있었다. 통일된 독일이 또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잠재웠다. 1991년의 소련 해체와 미·소 냉전체제 붕괴 뒤에도 미국이 크게 약화되지 않고 세계적 위상을 상당 부분 지켜낸 데는 주독미군의 역할도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90년 당시의 백악관 입주자가 트럼프 같은 인물이었다면, 헬무트 콜은 고르바초프에게 그러했듯이 돈을 좀 더 쓰는 방법으로 주독미군을 대폭 감축하거나 아니면 전면 철수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국군과 프랑스군도 더 이상 독일에 주둔할 명분을 가질 수 없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조지 부시는 주독미군 계속 주둔을 관철시켜 탈냉전 하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을 그럭저럭 지켜냈다.

제2차 대전 이후의 세계질서는 독일과 일본이라는 두 전범국에 대한 응징을 기초로 형성됐다. 일본의 경우에는 응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외형상으로라도 양국의 재발호를 견제하는 토대 위에서 1945년 이후의 세계질서는 작동됐다. 독일 분단은 독일의 부활 가능성을 꺾는 것이었다.

독일의 통일은 그 질서를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의 견제를 받을 만한 일이었는데도, 독일인들은 주독미군의 계속 주둔과 통일 독일의 나토 가입이라는 카드로 미국과 세계를 안심시키고 10월 3일을 '독일 통일의 날'로 만들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1945년에 생성되고 1990년에 부분적으로 수정된 현존 세계질서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듯하다. 트럼프는 이 질서에 영향을 줄 주독미군 대폭 감축을 아무렇지도 않게 운운하고 있다. 현존 질서의 구속력은 그만큼 느슨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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