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 LG 트윈스 팬들의 뒷모습2008년 정규시즌이 끝난 다음 날인 11월 7일 여러 일간지에 실린 LG 트윈스의 광고. 팬을 향한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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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3년 11월 13일, 한국시리즈 5차전이 열린 잠실 야구장 내야에 KT 배정대의 타구가 짧게 떠올랐다가 LG 2루수 신민재의 글러브 속으로 사라지던 순간, 잠들어있던 엘지 팬들 각자의 인생 한 대목이 문득 깨어났다. 축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팬들의 입과 눈에서는 환호성과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30년간 봉인돼 있던 아와모리 소주병이 열렸고, 시리즈 5경기에서 고비마다 홈런 세 개를 날린 15년 차 유격수 오지환이 롤렉스 시계를 손목에 걸었다.
기다림은 끝났고, 서사는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모든 한이 풀리고 모든 원망이 사라져 버리는 듯한 기쁨과 희열.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더욱 짜릿했던 우승의 순간. 그렇다면 트윈스의 팬들은 이제 편안함에 이르렀을까?
우승, 하지만 끝나지 않는 야구
이듬해, 트윈스는 여전히 강했지만 연속우승은 없었다. 40-40에 근접했던 김도영을 앞세운 기아 타이거즈가 맞대결할 때마다 유독 트윈스를 두들겼고, 그 상대 전적만큼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그 때 트윈스 팬들이 떠올린 것은 1995년이었다. 전 시즌 압도적인 우승의 여세를 몰아 다시 한 번 시즌 내내 선두를 질주했고, 20승 투수 '야생마' 이상훈이 에이스 맞대결 세 판을 모두 압도하며 잠실 라이벌 두산이 자랑하던 에이스 '황금박쥐' 김상진을 17승으로 주저앉혔던 그해. 하지만 결국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 채 3위에서 멈춘 뒤부터 스물스물 찾아왔던 내리막길의 기억 말이다.
그런 팬들의 불안감과 선수들의 경각심이 다시 한번 일깨웠을까, 그 이듬해 LG는 다시 한 번 왕좌에 복귀했고 '내친김에 LG 왕조 건설'을 외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말 팬들은 편안하게 야구를 볼 수 있게 됐을까?
지난 3년간 두 번 우승했고, 여전히 순위표의 가장 높은 자리 언저리를 지키는 2026년 LG 트윈스의 팬들은 여전히 괴롭다. 아직 쌀쌀한 밤공기를 버텨내느라 작년 가을에 꺼내놓은 유광잠바를 다시 입는 그들은, 3경기 연속 연장 끝내기 패라는 진기록 앞에서 다시 말을 잃는다. 반 년 전 우승 축포의 기억보다, 30년간 쌓이고 곱씹어진 씁쓸한 기억들이 먼저 깨어나고 오래 뒷맛을 남긴다.
그래서 문득 생각한다. 애초에 우승이란 목적지가 아니라 다음 여정을 위한 아주 짧은 휴게소일 뿐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팬들에게 야구의 본질이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보다 그 컵을 향해 다시 신발 끈을 묶는 그 지루하고도 숭고한 반복에 있는지도 모른다. 트윈스의 팬들이 사랑한 것도 단지 '승리'라는 결과가 아니라 아무리 넘어져도 내일이면 다시 잠실행 지하철에 몸을 싣는 자기 자신의 고집스러운 낙관이었고, 지하철 앞자리에 때 이른 유광잠바를 입고 나온 낯선 이와 서로 시선을 피하면서도 공유하던 서먹한 연대감이었다.
이제 롤렉스 시계는 주인을 찾았고, 봉인돼 있던 술은 비워졌다. 전설처럼 내려오던 '기다림의 서사'는 완성되었다. 그러나 서사가 완성되었다고 해서 삶이 멈추지 않듯, 야구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이 게임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바라는 것이 완벽한 결말이 아니라 '계속될 수 있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우승의 환희는 짧고, 야구 없는 겨울은 길며, 다시 돌아온 봄의 승부는 가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유광잠바를 꺼내 입는다. 지난 세월이 가르쳐준 것은 승리하는 법이 아니라, 패배하고도 다시 사랑하는 법이었기에.
그렇게 트윈스의 팬들은 오늘도 끝나지 않는 게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제 우승했든, 내일 추락하든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오늘 오후 6시 30분,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다시 시작될 그 지독한 반복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주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야구보다 먼저 사라져갈 것이다.
▲2025년 LG 트윈스의 4번째 우승2023년에 이어 3년 사이 두 번째 우승을 달성한 LG 트윈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현재 한국야구 최강의 팀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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