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두 할매큰할매 마리안느(왼쪽)와 작은할매가 에델바이스 꽃을 들고 있다.
사단법인 마리안느와마거릿
이 같은 선행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자 미담을 알리려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과 상을 주겠다는 제의가 잇따랐다. 하지만 이들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기자들이 오면 숨었고 수상도 거절하기 바빴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국민포장, 대통령 표창,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 호암상, 보건사회부와 대한간호협회 감사패 등을 받았으나 사양한 상이 더 많았다.
1972년 7월 24일 국민포장을 받을 때도 청와대에 가지 않겠다고 버텨 소록도에서 휘장과 부상을 전달받았다.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는 몇 차례 초청해도 서울에 올라오지 않자 소록도에 찾아와 서훈했다. 호암상도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상금을 좋은 일에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설득을 받아들여 수상한 뒤 새 구급차를 구입했다. 회갑 때도 병원에서 잔치를 열어주려는 기미를 눈치채고 "기도하러 간다"라며 2주 동안 섬을 떠나 있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떠나는 날까지 깊은 감명을 주었다. 애초 소록도에 묻힐 생각이었으나 칠순을 넘기며 체력이 달려 환자를 돌보기 힘들어지자 짐이 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가진 것을 하나씩 주위 사람에게 나눠주며 신변을 정리한 뒤 편지 두 장만 남긴 채 2005년 11월 21일 소록도를 떠났다. 가져간 짐은 입국할 때 들고 온 낡은 가방이 전부였다. 이들이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소록도는 울음바다가 됐다.
모국 생활은 곤궁했다. 국가에서 주는 연금은 최저 수준이었고, 수녀원에 머물 수도 없으니 친척 집을 전전해야 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지급하겠다는 퇴직금은 사양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소록도병원 성당에서도 "한국에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돕겠다"라고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2016년 소록도병원이 개원 100주년을 맞아 초청했을 때도 손사래를 쳤다. "제2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나올 수 있도록 꼭 와 달라"라며 거듭 간청하자 마지못해 마리안느가 11년 만에 소록도를 다시 찾았다. 치매를 앓던 마가렛은 장시간 비행을 견뎌내기 어려워 동행하지 못했다.
이때도 마리안느는 "우리가 한 일은 지극히 작은 일인데 언론에 나가면 한 일보다 높이 평가받는 것 같다"라면서 기자간담회나 언론 인터뷰 등을 극구 사양했다. 그해 대한민국 명예국민증이 주어졌다.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감독 거스 히딩크에 이어 두 번째였다. 명예고흥군민증, 만해대상, 간호대상, 나이팅게일 기장상, 국제간호대상, 대한간호협회 명예회원증 등도 잇따라 주어졌다.
해외 봉사 떠나는 한국의 마리안느·마가렛 후예들
▲음악극 ‘섬: 1933~2019’소록도 한센인과 두 간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극 ‘섬: 1933~2019’의 한 장면. 국립정동극장에서 2019년 초연됐고 2024년 재연됐다. 올해도 9월 22일~11월 22일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국립정동극장
이들의 감동적인 삶은 영화, TV 다큐멘터리, 음악극 등으로 꾸며졌고 살던 집은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됐다. 2016년 소록도병원에 문을 연 한센병박물관에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쓰던 물건과 한국을 떠날 때 남긴 편지 등을 전시해놓았다.
2019년 3월 소록도가 마주 보이는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에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념관 및 기념공원과 나눔연수원이 들어섰다. 마리안느·마가렛선양사업추진위원회도 발족해 2021년부터 고흥군과 함께 마리안느·마가렛 봉사대상을 시상하고 있다.
마가렛은 2023년 9월 29일 오스트리아에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오스트리아의과대에 기증했다. 지난달 말 만 92세를 넘긴 마리안느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몸은 떠났어도 마음은 소록도 한센인들과 함께하고 있다. 국내에는 이들을 본받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도우러 저개발국으로 떠나는 봉사자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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