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한 도서관 피크닉도서관에서 즐기는 신나는 책소풍
이인자
종합자료실에 들어서니 '책과 함께한 도서관 피크닉'이라는 북큐레이션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자의 마음에 쏙 드는 코너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손이 간 책은 <타샤 튜더의 나의 정원>이었다. 개나리꽃을 닮은 표지가 봄을 닮아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일구기 위해 바쳐온 그녀의 일생을 읽는 시간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삶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2, 3층 종합자료실에는 빈 자리를 찾기 쉽지 않았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 지어지는 대부분의 도서관들은 예전처럼 칸막이형 열람실을 따로 두지 않는다. 개성 있는 개방형 좌석들은 웬만한 북카페보다 더 감각적이고 세련되었다. 새로 지은 도서관에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이 근처에는 카페나 독서실을 열기 힘들겠다고. 경쟁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도서관에서 건강 체험까지
이 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은 생활 SOC 복합시설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건물 안에는 도서관 외에도 '건강생활지원센터'와 '청소년문화의집'이 함께 입주해 있었다. 건강생활지원센터는 혈관 건강 측정부터 심폐소생술 체험, 체형 분석까지 기본적인 검사들이 가능했다.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내가 근무했던 도서관에도 이런 시설이 가깝게 있다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기실 몇몇 얼굴들이 떠올랐다.
도서관이 지역 사회의 어르신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큰 글자 도서를 구비하고 건강 잡지를 비치 하는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 주민의 삶을 직접 살피는 공간이 될 수는 없을까. 도서관에 온 김에 자신의 건강도 확인할 수 있다면 도서관을 더 자주 찾지 않을까 싶었다. 어쩌면 이런 시설 간의 연결이야말로, 노령화 시대를 대비한 더 현실적인 도서관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건강생활지원센터도서관 온김에 건강도 체크할까?
이인자
나 역시 혈압 측정과 체형 분석 등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그러다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평소 내가 왼쪽 다리에 훨씬 더 많은 힘을 주고 서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머리와 어깨, 다리의 통증도 모두 왼쪽이었다. 나의 왼쪽이 그토록 고단한 삶을 묵묵히 지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낯선 도시의 도서관에서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건강 체크를 마치고 도서관을 나서는데, 못내 아쉬운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 개관한 지 이제 겨우 다섯 달. 아직은 비어 있는 서가와 공간들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빈 자리는 결핍이 아니라 기대이기도 했다. 그 기대는 이 공공도서관을 아끼고 사랑하는 지역 사람들 모두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떤 책을 고르고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 빈자리를 채워갈지 궁금해졌다.
보물 같은 공간 한 군데 더, 제천 독립서점으로
어렵게 제천까지 와서 도서관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여기서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기에는 나의 하루가 채 안녕하지 못한 기분이었다. 또 다른 보물을 하나 쯤 더 찾아보고 싶어 향한 곳은 '안녕, 책'이라는 독립서점이었다.
붉은 벽돌의 도서관이 웅장한 교향곡 같은 장소였다면, 이 작은 독립서점은 다정한 기타 연주곡 같은 곳이었다. 작은 독립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두 가지 마음을 안고 들어선다. 사람들이 조금은 북적였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내가 사고 싶은 책 한 권쯤 꼭 있었으면 하는 마음. 다행이었다. '안녕, 책'에서 그 두 가지가 모두 존재했다.
▲안녕, 책 독립서점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다락방
이인자
서점 안 다락방은 참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도서관의 '책바람길'이 위로 솟구 치는 설렘이었다면, 서점의 다락방은 마음이 바닥으로 향하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온종일 그곳에 뒹굴 뒹굴하며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몰랑몰랑 피어올랐다. 서점의 이름처럼, 이제는 내가 이 도시에 인사를 건네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제천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일기예보처럼 봄의 단비가 알맞게 쏟아졌다. 아주 적지도, 아주 많지도 않은 적당한 양이었다. 어둠이 차선을 지우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제천을 빠져나갈 때까지, 영월로 향하는 도로표지판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꼭 들러달라고 내 눈앞에 자꾸만 나타나는 알고리즘 같기도 했다.
만약 영월의 도서관들이 월요일에 문을 열었다면, 나는 이날 제천에 올 수 있었을까. 이 도시의 붉은 도서관과 작은 서점, 내 왼쪽의 고단함은 끝내 만나지 못했을 세계였을 것이다. 어쩌면 차선은 목적지를 잃은 발걸음이 기어이 가고야 마는 간절한 마음, 그래서 더 뜨거운 마음일지 모른다. 그것이 내게, 영월보다 제천이 더 뜨거웠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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