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해도 렌은 번번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간다.
에이유앤씨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은 1900년대 이전과 2010년대 이후를 비교하며, 건강과 청결, 질서 정연함이 사회의 기준이 되면서 우리가 얼마나 더 예민해지고, 불안해지고, 각박해졌는지 고찰하는 책이다. 특히 저자는 한 챕터를 할애해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고도의 질서'가 요구되면서 육아가 어떻게 '리스크'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모든 아이는 '동물'로 태어나며 과거의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자라났다. 육아 역시 지금만큼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질서를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아이는 그 자체로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저자는 "아기는 태어난 순간부터 '동물'로서의 위험과 불쾌감, 불안을 상기시키는 존재이기에 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회로부터 환영받기 어렵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아이라는 리스크를 통제해야 하는 부담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 된다.
현대의 부모는 아이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아이가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위험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덜 '동물적'인 '현대인'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
일본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한국의 노키즈존이 떠올랐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어린이라는 집단 전체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사회에서, 피해나 민폐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아이만을 '힐링 콘텐츠'로 소비하는 모습이 나는 무척 기괴하게 느껴진다. 어른의 기준과 잣대에 맞춘 표백된 모습을 강요받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다.
영화에서 렌은 노인에게 물세례를 맞고 처음 가본 집에서 잠들기도 하고, 축제가 열리는 마을을 지나 캄캄한 숲 속을 홀로 헤맨다. 계곡에서 놀다 달빛 아래에서 늑대처럼 울부짖고, 바닷가에서 웅크린 채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분명 영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발 그만 좀 해'라는 마음의 소리가 계속 올라왔다. 제멋대로인 아이도 아이지만, 부모는 아이를 저렇게 내버려두고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답답했다.
그런데 렌이 끊임없이 걷고 뛰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생명력.'
아이들은 오직 그 순간을 산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직진하고, 옆에서 아무리 불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깊이 몰두한다. 좋아하는 것은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도 지루해하지 않고, 귀가 아플 정도로 깔깔 웃다가도 저렇게까지 싶을 만큼 격하게 분노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원래 동물적이고 통제 불가능하며 다루기 힘든 존재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아이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나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아이들은 화면 속에 있는 예쁜 피사체가 아니라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것을. 그럼에도 내 안의 통제욕구는 자꾸만 아이를 사회가 정한 틀 속에 가두려 한다. 너무나 자유로운 렌의 모습이 시한 폭탄처럼 조마조마했던 이유다.
긴 밤이 지나 동이 트고, 렌은 바닷가에서 잠에서 깨어난다. 저 멀리 용의 형상을 한 배가 보이고, 그 옆에는 바닷속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세 가족의 모습이 있다. 과거의 렌과 엄마, 아빠다. 배가 불에 타고 엄마와 아빠가 떠나자 바닷속의 렌은 울먹인다. 무서워하고 당황하는 과거의 렌을 향해, 현실의 렌은 소리친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렌은 낯선 사람과 풍경을 마주한다. 달리고, 부딪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렌은 이전에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제 렌은 과거의 자신을 껴안아 줄 수 있을 만큼 훌쩍 자란다. 그 과정은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렌 스스로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시간임을, 영화를 보면서 천천히 깨닫는다. 아이들에게는 홀로 방황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건 좋든 싫든 태어나버린 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왜 나를 낳았냐'고 묻던 렌은 삶의 의미를 직접 찾아가게 될 것이다. 아슬아슬하고 용감하게.
▲렌은 과거의 자신을 껴안아줄 수 있을 만큼 훌쩍 자란다
에이유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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