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모두가 자기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이미지.
JTBC
박해준은 <나의 아저씨>를 쓴 박해영 작가의 새 작품, JTBC 드라마 <모두가 자기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도 출연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영화 감독을 꿈꾸는 황동만의 형, 전직 시인 황진만이다. 용접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가는 인물이다.
황진만은 어쩌면 황동만이 가 보고 싶은 길을 아주 잠시 먼저 걸어 본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시 한 편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던 진만의 삶은 꼬이기 시작했다. 평생 시를 쓰며 살 수 있으리라 믿었던 꿈을 저버린 채, 현실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한 동생의 월세를 대신 내주기도 하며, 묵묵히 생활인으로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모자무싸> 속 진만은 집에 들어설 때 늘 손에 소주병이 든 검은 봉지를 들고 있다. 안주도 없이 술을 들이키는 그에게 동만은 뭐라도 먹으라며 잔소리를 건넨다. 둘은 말없이 한 공간에 앉아 있다가 결국 말을 섞게 되고, 그 대화는 대개 싸움으로 끝난다. "니가 원하는 게 뭐야? 데뷔야? 성공이야? 말해봐! 도와줄게!"라고 소리치는 진만에게 동만은 "불안하지만 않으면 된다"라고 말하며 커튼을 치고,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많은 장면에서 우리는 진만이 철없는 동만을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변변한 벌이도 없는 동만을 위해 월세를 내주고, 친척들과 동료라 믿었던 영화판의 8인회에게 동만이 무시를 당할 때도, 아지트 문에 붙은 '황동만 출입 금지'를 보고 일갈을 날리다 끝내 주먹다짐까지 하는 모습도 그랬다. 그러나 4화의 한 장면에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힌다.
진만은 한 손에 줄을 잡고 페인트 통 위에 섰다. 삶을 내려놓으려 하는 순간이다. 약 2분여간 카메라는 진만의 얼굴을 비춘다. 초점도 생기도 없는 공허한 눈빛이 화면을 채운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이어지는 그 순간, 진만의 얼굴에 빠져든다. 동만은 진만의 손을 꼭 붙잡는다. 마치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처럼.
박해준이 맡은 역할은 대부분 대사가 많지 않다. <나의 아저씨>의 겸덕이 그랬고,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도, 이번 <모자무싸>의 진만도 마찬가지다. 그의 눈빛이 음성으로 전달되는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많은 대사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화면 속 인물을 끝까지 바라보게 만드는 배우 박해준의 '얼굴들'이다.
<모자무싸>에서 우리는 또 어떤 얼굴을 발견하게 될까. 세상을 마지못해 살아가는 진만. 그러나 지켜야 할 존재, 동생 동만이 있어 꾸역꾸역 살아내는 그의 얼굴. 그 얼굴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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