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그르노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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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반도체 클러스터 분산 주장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과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고도로 집적된 산업생태계가 생명인 메모리와 최첨단 파운드리 제조에 집중되어 있다. 분산이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프랑스 남부의 도시 '그르노블'이 좋은 사례다. 그르노블은 파리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나텍(MINATEC) 같은 세계적 연구소, 입자 가속기 등 거대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밀집된 두뇌, 정부 출연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글로벌 강소기업,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연구, 생산 인프라, 강한 앵커 기업, 알프스가 보이는 우수한 정주 여건이 그르노블의 성공 요인이 되었다. 현재 그르노블은 반도체 패키징과 AI 반도체 분야에서 유럽 내 가장 핵심적인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그르노블과 유사한 수준의 성공 요소를 어느 정도 갖춘 지역들이 없지 않다. 모든 지역마다 반도체 산업을 유치하겠다는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을 극복하고 '가능한 지역'부터, 전략적 투자를 통해 지역 반도체 거점을 만들어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삼겠다고 생각하면, 지금과 사뭇 다른 발전 전략을 도출할 수 있다.
지역 반도체 전략에서 늘 제기되는 우려는 인재다. 지역에 인재가 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는 현상에 절반만을 보고 한 이야기다. 인재가 없어서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가 머물 수 있는 압도적인 환경을 먼저 제시하지 못한 것이 이유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포항공대가 성공적으로 지역에 정착할 수 있었던 비결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40년 전, 포항이라는 지방 도시가 세계적 연구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당시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파격적인 정주 여건을 선제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이 글로벌 강소기업을 키워내고, 교육·의료·문화를 망라한 미래형 정주 여건을 제시할 수 있다면, 우수한 인재가 스스로 지방에 정착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글로벌 강소기업 창출 지원은 물론, 인재 육성과 고급 인력 지방 정주를 위한 특별 지원 등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획기적인 균형 발전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공존을 위한 실용적 투 트랙
결국 반도체 산업의 생존과 지역 균형 발전은 서로를 배척하는 대립의 가치가 아니다. '집중을 통한 초격차 사수'와 '전략적 분산을 통한 국가적 도약'은 선후(先後)를 다툴 문제가 아니라 함께 풀어내야 할 공존의 과제다.
우리 몸의 심장이 중심에서 강하게 박동하며 혈액을 공급하듯, 수도권의 반도체 클러스터는 반도체의 국제 경쟁력을 지탱하는 심장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그 혁신의 에너지는 동맥을 타고 전국의 지역 거점으로 끊임없이 흘러가야 한다.
용인은 지키고 지방은 키워야 한다. 이미 수립된 용인 클러스터 계획은 SMR과 지능형 용수 순환 시스템 같은 혁신적인 자원 해법을 결합해 차질 없이 실행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제2, 제3의 그르노블을 만들기 위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지역 특화 반도체 거점 육성과 미래형 정주 여건 조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다.
기술의 진보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과 국가 정책이 강제해야 할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실용적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수도권과 지방이 각자의 전략적 역할을 맡아 하나의 유기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만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를 지키고 국가 균형 발전의 백년대계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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