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 가게 발권기 첫 화면은 일본어로 적혀 있었다. 외국인이라면 화면 맨 아래쪽에 적혀 있는 영어, 한국어, 중국어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유튜브 캡처
30분 정도 지나자 직원이 발권기에서 메뉴를 주문하라고 안내했다. 이제 이중가격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발권기는 혼자 서서 화면을 보고 주문하는 구조였는데 첫 화면에 일본어로 적혀 있었다. 외국인이라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어 보였다. 십중팔구 화면 아래에 적혀 있는 영어, 한국어, 중국어 중 하나를 선택하기 쉬운, 아니 일본어를 모른다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발권기 중앙에는 일본어로 주문할 수 있는 사람이 적혀 있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이렇다.
① 일본 거주 & 일본어를 아는 사람
② 일본 국적 & 일본말을 하는 사람
문구대로 해석하자면, 일본어를 이해하더라도 일본인이 아니거나 일본에 거주하지 않는 단순 관광객은 자국어로 주문하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 밑에는 "다른 언어를 선택하는 경우 상품 종류와 가격이 다릅니다"라는 안내가 적혀 있다. 이 모든 것이 일본어로 적혀 있으니 외국 여행객들은 그런 사정을 알 도리가 없다.
한국어 메뉴를 선택해 봤다. 거의 모든 메뉴가 2000엔대였다. 뒤에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어 하나씩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일본 라멘치고는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초기화면으로 돌아가서 일본 메뉴를 선택했다. 가격대가 갑자기 1000엔대로 떨어졌다. 가게 추천 메뉴를 곱빼기로 주문해 봤다. 1460엔(1만 3500원)이 나왔다. 일본어를 몰랐다면 이보다 1000엔 정도는 더 냈어야 한다.
고기나 파 등 토핑 없이 기본 라멘만 주문하면 세금 포함 900엔대로 먹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 등으로 주문했을 땐 1500엔 정도가 된다. 얼핏 보아도 일본어 메뉴와 외국어 메뉴는 적어도 500엔, 많게는 1000엔 이상 차이가 났다. 게다가 일본어 메뉴에 있는 면의 단단함 정도, 국물의 농도, 기름의 양 조절 등을 선택하는 과정이 외국어 메뉴에는 없었다.

▲라멘 가게 앞에 놓인 패스트 패스 안내 입간판. 직원에게 물어보니 1인당 500엔을 더 내면 대기 없이 바로 주문과 입장이 가능했다.
김용국
대기 줄이 거의 없었는데도 주문까지 50분 걸렸다. 그사이 대기 줄에 없던 남성 2명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들은 발권 후 곧바로 카운터석에 앉았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패스트 패스'라고 했다. 1인당 500엔(4600원)을 더 내면 대기 없이 바로 주문과 입장이 가능했다. 놀이공원 패스트 트랙이 라멘집에도 있을 줄 몰랐다. 일본인 지인에게 물었더니 "일본 라멘집에서 흔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라멘은 차슈와 반숙 계란, 시금치, 김이 토핑으로 나왔다. 반찬은 없고 탁자에 소스 몇가지만 놓여 있다.국물맛을 보니 짠맛이 아주 강했다.
김용국
자리를 안내 받고 라멘이 나오기까지 1시간 걸렸다. 라멘은 차슈와 반숙 계란, 시금치, 김이 토핑으로 나왔다. 반찬은 없고 탁자에 소스 몇가지만 놓여 있다. 라멘은 짠맛이 아주 강했다. 한국에서도 어지간히 맵고 짠 맛에는 반응하지 않는 내가 짜게 느낄 정도라면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바삐 움직이는 직원에게 "일본어 메뉴와 외국어 메뉴는 맛과 가격이 다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짧게 답한 뒤 주방으로 들어갔다. 점주가 이중가격에 대해 유튜브에서 해명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어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스페셜과 프리미엄만 제공하고 있다"며 "종류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두 가지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언어만 다를 뿐 동일한 메뉴로 구성된 라멘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가게를 나온 오후 6시 30분경 바깥에선 본격적으로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금발 여성 2명이 눈에 띌 뿐 외국 관광객은 많지 않아 보였다. 서른 명 이상이 대기 중인데 이제 줄을 선다면 라멘을 먹기까지 2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였다.
일본 라멘을 여러 군데서 먹어봤지만, 여기가 이 정도로 줄을 서서 먹을 정도의 맛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중가격제로 외국인에게 돈을 더 받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연초에 중국인이 화를 낸 심정이 이해가 갔다.
▲오후 6시 30분경 라멘 가게 바깥에선 본격적으로 긴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김용국
'차별' 아닌 '구별'이라지만
유튜브를 확인해 보니 해당 라멘 가게 점주의 의중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점주는 논란을 의식한 듯 이중가격에 대해 몇 차례 영상을 올렸다. 그는 "가게마다 룰이 있다. 우리 가게의 룰은 일본인 퍼스트 정책"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 외국인은 회전율이 떨어진다. ▲ 음식을 늦게 먹는다. ▲ 응대에 어려움이 있다. ▲ 입맛을 맞추기가 어렵다. ▲ 코로나 시대 등 어려울 때 도와준 건 외국인이 아닌 일본인이었다. 따라서 일본인을 우선시하기 위해 외국인 이중가격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프리미엄급 맞춤형 메뉴를 제공하기 위해 가격을 달리 책정했다는 말과는 모순된 주장처럼 들렸다.
점주는 "외국에서도 이중가격은 드문 일이 아니고 법률 위반이 아니다"라며 "이번 문제로 인하여 더 이상 외국인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다. 점주는 이중가격이 "차별이 아닌 구별"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은 '일본인, 그다음으로 일본과 관계되는 사람'을 우선할 뿐 "모든 손님을 전부 소중히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차별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본 전통문화 중에 '오모테나시'가 있다. 최선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고 환대한다는 뜻이다. 오모테나시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관광객들은 안 와도 그만'이라는 식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한 해 4000만 명 이상을 관광객으로 받는 나라에서.
의외인 것은 적지 않은 일본인이 점주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곳이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는 이중가격을 포함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있고 정부 차원의 대책도 나오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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