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다른 아시아 국가 정상들과 함께 에너지 복원력을 주제로 한 ‘아시아 제로 배출 공동체(AZEC) 플러스’ 온라인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중일 갈등이 지금처럼 격화된 것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 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의해서다. 두 사람의 집권 기간이 겹치는 2013~2020년에 양국은 센카쿠열도(조어도) 문제와 대만해협 문제 등을 놓고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렇게 아베와 씨름했던 시진핑은 '여자 아베'가 지난해 10월 21일 총리로 선출돼 자신의 카운트파트가 되자 싫은 티를 노골적으로 내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대만해협 유사시에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공격적 발언(11.7)을 통해 '아베의 부활'을 시진핑에게 신고했다.
그간 중국과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과의 갈등을 줄이고 북한에 대화 제스처를 보내온 다카이치는 중국의 신경을 건드릴 만한 조치를 이달 21일에 또 내놓았다. 그가 야스쿠니신사 춘계 예대제(정례 대제사)에 맞춰 공물을 납부한 이날, 일본 내각은 무기 수출 목적을 구난·수송·경계·감시·기뢰제거로 제한하는 기존 방침을 폐지했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이 일을 전하면서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의 수출이 전면적으로 해금된다"라고 평했다.
살상무기 수출 허용, 어떤 의미인가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가 총리 재임 중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는 점 때문에도 아베를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이처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중시하는 그가 이 신사의 최대 행사 중 하나인 춘계 예대제 때 공물만 보내고 참배는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언제나 겁먹고 물러난다'는 타코(TACO)처럼, 다카이치도 결정적 순간에 한 발 물러서다는 '다코'라는 비아냥이 나올 수도 있었던 4월 21일이었다. 이날 다카이치는 살상무기 수출 허용이라는 강경 카드를 꺼내 중국에 자극을 가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실린 21일 자 브리핑에 따르면, 이 조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일본 특파원 질문에 대해 궈자쿤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이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갖고 있다"라며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범죄를 "하늘에 사무칠 죄행(滔天罪行)"으로 지칭한 뒤 "일본의 신형 군국주의 망동에 대해 결연히 맞서겠다"라고 발언했다. 이런 반응이 나오게 만들 정도로 이번 조치는 중국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동자 강제징용을 통해 방위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일본은 패망 뒤에 그 생산품 재고분의 상당 부분을 한국전쟁 때 처리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휴전이 이뤄질 무렵에는 새로운 데서 활로를 모색했다.
세종연구소가 발행한 <국가전략> 2014년 제20권 제3호에 실린 김진기 부경대 교수의 논문 '일본의 무기수출정책 변화'는 "일본의 방위산업은 한국전쟁 특수가 축소되면서 무기 수출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라며 "1953년 태국으로의 탄약 수출을 시작으로 그 후 버마·타이완·브라질·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로 수출대상 지역을 넓혀갔으며, 1962년에는 최초로 미국으로도 수출을 하였다"라고 기술한다.
이렇게 확장된 무기 수출에 대한 정부 입장을 정리한 것이 1967년 4월 21일의 '무기 수출 3원칙'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더불어 한일협정 체결의 주역인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중의원에서 천명한 이 원칙은 무기 수출이 금지되는 세 곳으로 공산주의 국가, 유엔(국제연합)이 금지한 국가, 분쟁 중이거나 그 위험성이 있는 국가를 지정했다.
9년 뒤 미키 다케오 총리는 무엇이 무기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각각의 법령에 따라 해석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무기로 분류되는 것만 3원칙의 적용을 받도록 하겠다는 입장 표명이었다. 1976년 1월 25일 자 <조선일보>는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엄격했던 무기수출 금지조처를 다소 완화"해 일부 제트기·수송기·헬리곱터 등의 수출을 가능케 만들었다고 평했다.
그런 식으로 구체화된 3원칙은 민주당 정권인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 의해 2011년에 껍데기만 남게 됐다. 위 세종연구소 논문은 "과거 개별적으로 예외화 조치를 취해왔던 방위 장비품의 수출을 평화공헌·국제협력, 국제 공동개발·생산에 대해 포괄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라는 말로써 이 조치의 의의를 설명한다. 국제평화나 협력을 위해서라면 수출 금지의 예외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 노다 내각의 입장이었다.
이로 인해 껍데기만 남은 3원칙의 그 껍데기마저 없앤 것이 제1기 아베 내각(2006~2007)으로부터 5년 만에 등장한 제2기 아베 내각(2012~2020)이다. 제2기 내각은 2014년 1월에 3원칙을 폐지하고 '새로운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수립했다. 평화 공헌 및 국제협력에 도움이 되고, 일본 안전보장에 도움이 되며, 일본 안전보장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매우 적은 경우에는 무기 수출을 허용한다는 방침이었다.
아베 내각은 일본에 해가 되지 않으면 무기 수출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여자 아베'는 여기에 '살상무기도 된다'며 숟가락을 얹었다. 1967년에 3원칙이 표명된 이래로 가장 강력한 조치가 다카이치에게서 나왔다.
그런데 무기 수출 3원칙이 사라진 데는 자민당뿐 아니라 민주당도 한몫을 했다. 아베 내각이 3원칙의 껍데기를 쉽게 폐기할 수 있었던 것은 노다 내각이 알맹이를 제거해 뒀기 때문이다.
일본·중국 갈등 더욱 커질 듯

▲2019년 11월 18~20일 지바시에 있는 종합전시장인 '마쿠하리 멧세'에서 처음 개최된 국제 무기 전시회 'DSEI 재팬'에 전시된 군용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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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011년에서 2014년 사이에 일본의 주요 정당들이 3원칙에 제동을 건 것은 2008년 이후의 세계정세 변동과 관련이 깊다. 그해에는 베이징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올림픽 폐막(8.24) 뒤인 9월 15일(미국 시각)부터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이로부터 2년 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2위가 됐다.
이 같은 힘의 변화에 대응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에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내놓았다. 중국과의 협력 노선을 수정해, 겁도 주고 달래기도 하며 중국을 억제하는 정책이었다.
이런 시기에 일본에서 나온 3원칙의 사실상 폐기 및 최종 폐기는 무기 수출의 원활화를 통해 방위산업을 진흥시키겠다는 의도뿐 아니라, 국제 방산협력을 통해 일본의 대외 군사협력을 넓히고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담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종연구소 논문은 '새로운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등장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2010년부터 매우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이 격화되어 대화와 협의가 실종된 소위 치킨게임의 양상으로 치닫기 시작한 것은 시진핑 정권과 아베 정권이 거의 동시에 등장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을 의식한 안보정책의 수립, 그리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주변국과의 방산 협력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아베 정권 들어서였으며, 신원칙은 바로 이를 위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십 수년간 일본의 무기 수출 확대를 추동한 요인 중 하나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경쟁심이다. 이런 상태에서 다카이치 내각이 살상무기 수출까지 허용해, 중국 외교부가 '하늘에 사무칠 죄행', '신형 군국주의 망동' 같은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
살상무기 수출을 통한 일본의 공세적 대외 군사협력은 중국 포위라는 효과도 의도할 수 있으므로 다카이치 내각의 이번 조치는 중국과의 갈등을 더욱 조장할 수밖에 없다. 다카이치 내각은 중국과의 긴장 고조로 인해 부담을 많이 느끼는 상황에서도 이런 조치를 내놓았다. 위험한 상황 전개를 굳이 회피하지 않는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거친 분위기를 반영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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