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서원대학교 강의실에서 열린 영화 <1980 사북> 공동체 상영회 이후 감독과의 대화
강화정
국가폭력의 가장 큰 해악을 보다
한 학생이 물었다.
사북 사건을 바라보는 당시 주민 중 일부는 피해자들을 오히려 가해자처럼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이런 것이 서로 상충하는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분들이 어떤 면에서는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감독과의 대화' 중 D의 발언)
감독이 답했다.
"무죄 판결받고 웃던 강윤호 아저씨는 죽을 때까지 자기 이름을 고발한 안재를 용서하지 않았어요. 이완형은 안재의 이름을 불었고요. 안재는 강윤호의 이름을 분 거죠. 이런 경우가 부지기수에요. 저는 이 상황을 보면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설문에서도 학생들은 사북사건을 단순히 가해자 대 피해자의 구도로만 보지 않았다.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전제하면서도, 공동체 내부에 남아 있는 상처와 균열에 주목했다.
국가폭력은 개인의 몸과 삶만 파괴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과 지역 공동체 안으로까지 스며들어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균열을 남겼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아픈 지점이다. '1980 사북'의 이야기는 국가 폭력의 가장 큰 해악이 무엇인지 직시하게 만든다.
남의 상처를 돌볼 때 나의 상처도 치유된다
이재기 노조지부장과 그의 가족을 둘러싼 서사는 영화에서 큰 긴장감을 자아내는 대목이었다. 한 학생이 지부장 가족 이야기를 영화에 담게 된 과정을 묻자, 감독은 영화 작업 과정에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가 '이재기 지부장 부인 폭행 사건을 다룰 것인가'였다고 고백했다. 자칫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피하지 않았고, 이 사건이 명백히 잘못된 일이었음을 영화 속에서 분명히 드러냈다.
감독은 이재기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더 엄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이재기가 지부장 재직 중 횡령한 것으로 알려진 1700만 원이 근거 없이 부풀려진 액수라는 유족들의 항변을 그대로 전하면서, 이재기에 대한 비판이 일차원적인 낙인과 악마화로 엇나가는 것을 경계했다.
나아가 영화는 황인욱의 목소리를 빌려 항쟁 과정에서 일어난 과오에 대해서 광부 측 대표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한 학생은 영화에서 황인욱이 "기업주와 국가는 빠져 있는데, 왜 우리끼리 싸우냐"며 사북사건의 주역이었던 이원갑을 설득하는 장면에 주목했다.
영화 내내 '가해자와 피해자를 허무는 것이 연출의 의도인가?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최종 가해자를 국가로 두고 연출한 것이구나 하고 공감이 되었다. (설문 중 E의 글)
특히, 이원갑이 김순이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는 장면을 인상 깊게 봤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장면을 단순히 감동적인 장면으로만 보지 않았고, "오래된 비난을 멈추고 상처를 직면하는 장면"으로, "늦었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 장면"으로 읽어냈다. 학생들이 주목한 것은 화해 그 자체가 아니라, 화해를 시도해야 할 만큼 상처가 깊고 오래 지속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영화에서 현실로

▲영화 <1980 사북> 스틸컷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는 사실에 기반하지만 동시에 감독의 시선과 해석이 담긴 창작물이다. 학생들은 영화 <1980사북>에 배치된 특정 장면과 표현 방식 속에서 감독의 의도를 읽어내고 질문을 던졌다. 한 학생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배치에 주목했다.
마지막에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한 번 더 나오더라고요. 보통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감독님의 의도가 강하게 담기기 마련인데, 저는 그 장면이 '이 노동의 현장을 현재로 다시 불러와 기억하자'는 의미로 읽혔어요. 감독님께서 왜 마지막에 그 장면을 추가하셨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과의 대화' 중 F의 발언)
이 질문에 대해 감독은 영화의 핵심 키워드였던 '고단했던 노동, 아물지 않는 상처' 가운데 특히 '고단한 노동'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문제 의식을 털어놓았다. 2001년과 2003년 사이 실제로 동원탄좌 갱도에서 촬영된 미공개 필름을 영화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광산 노동의 문제를 근본적인 배경으로 안고 있는 사북사건의 본질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중간에 가볍게 지나가듯 배치된 장면에 주목한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영화 속 장면을 현재 기억과 인식의 문제로 끌어냈다.
자전거 동호회 분들이 갱도 앞 광부 동상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요. 지금 우리가 사북을 어떻게 기억하고 소비하는지 보여주는 장면 같았어요. 어떤 의도로 그 장면을 넣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 '감독과의 대화' 중 G의 발언)
이 질문에 대해 감독은 "질문자가 읽어낸 그대로였다"라고 대답했다. 사북 광부들에 얽힌 사연을 알지 못한 채 광부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잊히고 묻힌 사북의 아픔을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사북항쟁 제46주년을 1주일 앞둔 14일 오전 사북민주항쟁동지회 주최로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 이행을 촉구하는 사북사건 피해자 및 유가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정민
사북사건을 역사 속에 위치 짓기 위해서는 과거사 정리의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 학생이 "이 사건은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사북사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광부들의 폭동으로 규정되어 왔다. 신군부가 붙여 놓은 이름이었다. 광산 노동자들의 저항과 국가 폭력의 문제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이름은 무엇이어야 할까. '정명(正名)'의 과정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기억의 터'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북을 직접 조사한 학생의 질문이었다.
생각보다 정선 지역 안에 이 사건을 기억하는 장소가 많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사북 뿌리관도 규모가 크지 않고, 또 근처의 석탄역사체험관 역시 사북사건보다는 일반적인 석탄 노동자 이야기 위주로 구성되어 있더라고요. 사북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이 또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과의 대화' 중 H의 발언)
국가 사과, 진상규명, 배·보상의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기억 공간의 논의는 다소 성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과 기념의 문제는 과거사 정리와 분리될 수 없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함께 걸어갈 사람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는 예정보다 훨씬 길어졌다. 질문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고,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대화는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학생이 물었다.
"영화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감독은 잠시 말을 고른 뒤, 가해자들, 특히 당시 정보과 경찰과 보안대 소속 군인들의 이야기를 언급했다. 국가폭력은 피해자의 고통만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으며 구체적 가해자들의 책임 문제 또한 드러나야 한다. 학생들의 질문은 앞으로 남은 숙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북사건이 '역사'가 되었는가?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사건은 여전히 왜곡된 이미지와 갈등 속에 머물러 있고, 사건 관련자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점점 늙어가고 있다. 영화 상영 후 설문에 한 학생이 남긴 글이 오래 남는다.
사북의 광부들과 그 가족들이 겪었던 가난과 저항의 기록은 지나간 옛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현대사를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이자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치열함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로 본 사북은 오랫동안 '사태'나 '폭동'이라는 이름 아래 왜곡되어 왔지만, 그들의 가난은 개인의 무능이 아닌, 국가 산업화 과정에서 강요된 희생으로 보였습니다. 광부들의 외침은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달라'는 절규였습니다. 이러한 목소리를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진실을 마주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문 중 I의 글)
사북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밝히는 일, 국가의 사과를 받는 일, 상처 입은 삶과 관계를 회복하는 일, 그리고 이 사건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날의 상영회는 그 지난한 여정을 함께 걸어갈 사람들을 만드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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