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7 09:49최종 업데이트 26.04.2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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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가장 큰 사회정책은 부동산 정책이다.

"부동산공화국 탈출은 대한민국 대전환을 위한 핵심 중의 핵심 과제이고, 부동산이나 주택정책에서는 단 0.1%의 결함이나 구멍도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에서 결연한 의지가 읽힌다.

더 주목할 점은 그 해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을 설명하며 "다주택자나 투자·투기용 비거주 주택 보유자, 초고가 주택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나쁜 제도를 만든 정치가 사회악"이며, 문제는 "주택 보유가 많을수록 유리하고 집값이 오르도록 만든 세제·금융·규제 정책"이라는 것이다. 즉, 개인의 선택을 탓하기보다 그러한 선택을 유도한 제도와 시스템이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안전의 중요성도 부동산에 못지않다.

'사고공화국 탈출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며, 재난과 안전정책 역시 단 0.1%의 결함이나 구멍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해법도 부동산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사고공화국의 원인은 단순하다. 안전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사고를 내는 비용이 더 싸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안전에 투자하라는 것은, 이익을 줄이고 비용을 늘리라는 말과 같다.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의 속성상, 안전투자가 쉽게 선택될 수는 없다. 기업만을 비난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중처법 도입에도, 여전한 사고공화국 대한민국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 23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화성 아리셀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와 관련해 박순관 대표의 1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징역 15년 형량은 너무 적다"며 "항소심에서 죗값을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끝까지 싸워 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유성호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됐다. 드디어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에게 철퇴가 내려질 것이고, 기업이나 사업주는 본격적으로 안전에 투자하고 중대재해는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중대재해는 기대만큼 줄지 않고, 대형참사도 끊이질 않고 있다. 사고공화국 대한민국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동안은 법 시행 초기라서 그럴 것이니 좀 더 두고 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제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됐다. 이쯤 됐으면 본격적으로 '제도의 작동성과 효과성'에 대해 의심해 보고, 비판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 웬만한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하여 대응할 만큼 대응했고, 지금까지 대응하지 않았거나 대응하지 못한 사업장은 앞으로도 대응하지 않거나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대응했던 사업장들도 실질적인 현장 안전 확보보다는 서류 작업 중심의 형식적 안전관리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안전관리가 법적 의무를 다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형식적 서류 작업으로 전락했다거나, 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면하기 위한 법적 대응 자료와 절차 마련이 안전관리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정작 현장 안전관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부동산 문제의 원인이 '다주택자나 투자·투기용 비거주 주택 보유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택 보유가 많을수록 유리하고 집값이 오르도록 만든 세제·금융·규제 정책에 있다'는 대통령의 지적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안전관리를 서류와 절차 그리고 형식에 치중하는 것은 기업이나 사업주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다.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단지 제도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형식적 서류나 절차 그리고 법적 대응 자료 준비가 현장 안전관리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단지 유리한 정도가 아니다. 강력한 형사처벌을 전제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그렇게 하도록 했거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법의 취지나 제도가 그런 게 아니라고 항변하고 설득하고 가르치려고 해 봐야 소용없다. 기업은 법과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매우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움직인다

여기에 결정적인 하자가 하나 더 있다. 이익과 손실을 사전(예방)과 사후(중대재해)로 나누어 제도를 설계한 결함이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당장의 이익을 중시한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확실한 수익이 담보될 때만 한다. 반면 미래의 손실에 대해서는 주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먼 훗날 발생할지도 모를 손실을 줄이기 위해 투자하는 일은 일반적인 기업 경영법칙이 아니다.

기업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움직인다. 당장의 투자는 확실한 손실비용이지만, 훗날 있을지도 모르는 사고손실비용은 기대비용이다. 기대비용은 사고확률 x 사고처리비용이다. 사고처리비용은 보상과 처벌에 드는 비용이다. 보상비용은 기본적으로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므로 실질적 사고처리비용은 처벌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산재처벌은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했으므로 산재로 인한 기대비용은 무시할 만했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했지만 기대비용은 여전히 낮다. 중대재해 발생확률이 상당히 낮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대재해처벌법 처벌대상은 경영책임자 개인이다. 기업에 대한 벌금액은 상향됐지만 대부분 기대손실비용은 여전히 예방비용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기업은 안전에 투자하는 것보다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기업의 반응에서 어느 정도 증명되었고, 최근 법원의 판결을 종합해 보더라도 예방 투자보다 사고 이후를 대비한 서류와 대응체계를 잘 갖추는 것이 더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투자와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서류와 형식, 그리고 법적 대응체계만이 그나마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면할 수 있는 방어벽이 되기 때문이다.

예방을 안 했을 때, 더 비싼 대가 치르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와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대전운동본부는 지난해 4월 28일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촉구했다.오마이뉴스 장재완

사고공화국 탈출, 답은 역시 돈이며, 제도다. 제도설계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기업이 사전예방비용과 사후처리비용을 비교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전예방 단계에서 예방투자를 '할 때'와 '하지 않을 때'를 비교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할 때'가 '하지 않을 때'보다 유리하게 해야 한다. 즉, 사고와 무관하게 예방단계에서 법적 안전조치를 지키지 않는 것이 더 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도 안전을 확보하지 않으면 즉각 비용이 발생하도록 해야 한다. 그 핵심은 사용(작업) 중지와 과징금이다. 안전장치를 갖추어야 하는 기계설비는 (사고유무와 상관없이)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으면 사용을 중지토록 해야 한다. 사정상 사용중지가 불가능하면 그 기간만큼 이익을 몰수해야 한다. 그것이 과징금이다. 즉 그에 상응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한다. 이것이 예방 정책이다.

사후약방문격인 중대재해처벌법도 경제적 제재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즉,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투자비용 이상의 경제적 부담을 지도록 해야 한다. 개인경영자 처벌로는 이익극대화의 기업과 자본논리를 이길 수 없다. 중대재해 처벌은 기업의 매출액에 비례한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의 경제벌을 기본 원칙으로 해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돈에는 돈인 법이다. 기업과 자본논리는 기업과 자본의 논리로 다스려야 한다.

안전은 도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그 구조의 이름은, 경제다.
이제 안전도 경제의 논리로 재설계할 때다.

박두용한성대 교수박두용

* 필자 소개 : 박두용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2017.12-2021.12)을 역임했다.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1997년부터 한성대 기계전자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을 역임했고, 서울시 안전자문단장, 노동부, 행안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을 맡은 바 있다. 제품안전학회 회장, 산업보건학회 회장, 국제산업위생학회 회장, 한국안전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대 대학원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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