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이 가져온 한국음식오사카여행을 온 동료들이 가져온 한국음식. 배추김치, 갓김치, 파김치에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된장, 고춧가루, 찌개용 육수까지 공수해왔다. 조미김, 각종 찰떡파이와 추억의 건빵은 덤이었다. 사진에 없는 한국음식까지 포함하면 남은 생활동안 다 먹기도 힘들 정도의 분량이다.
김용국
마지막 날 아침 내가 지내는 오사카 대학에서 함께 숲길과 산길을 걸었다. 선배가 어느 언덕에서 갑자기 발길을 멈춘다. "여기 달래가 있네. 여기 사람들은 먹지도 않나봐." 시간이 없다는데도 한사코 달래를 캔다. 선배는 숙소에서 달래를 씻은 뒤, 뿌리에 흙이 빠지도록 물에 담가두고 떠났다.
공항으로 향하면서 선배는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잘 지내고 간다. 오사카에서 아예 가이드로 먹고 살아도 되겠다"라며 고마워했다. 하지만 정작 고마워할 사람은 나였다. 오사카에서 지치고 힘들 무렵 나타나 나를 위로해 주고 쉼표를 찍어준 두 사람이 나의 구원군이었다.
일행이 떠난 뒤 통장을 확인해 보니 정체 모를 돈이 들어와 있었다. 그 무렵 한국에 도착한 선배가 문자를 보내왔다. "가이드 잘해서 주는 팁이니 남은 두 달 잘 즐기다 와."
그날 저녁은 선배가 캐놓은 달래에 감자,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반찬으론 갓김치에 파김치만 놓았는데도 진수성찬이다. 전부 일본 와서 처음 먹는 음식들이다. 한국 음식이 이렇게 훌륭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날 밤은 후배가 지금 나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던 영화를 보았다. <행복의 속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느 때였더라면 시간 낭비라고 여겼을 테지만 그날은 잠자리에 누워서 노트북으로 느긋하게 감상했다.
영화는 보존지구로 지정돼 차가 다닐 수 없는 일본의 국립공원 내 산장으로 짐을 나르는 짐꾼(봇카)들의 이야기다. 10km의 거리를 80kg의 짐을 메고 오가는 만만찮은 직업이다. 봇카들은 걸음걸이와 짐을 지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서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라고. 각자의 생존방식일 테다.
"자기의 페이스로 가면 괜찮구나"
영화엔 두 가지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이 아들과 함께 별을 보기 위해 밤길을 걸으면서 던지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10초만 눈을 감았다가 하늘을 봐, 그럼 별이 잘 보일 거야."
아들은 열을 세고 하늘을 바라본다. 아까와 달리, 마치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듯하다. 살면서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분히 숨을 고르고 한 번쯤 여유를 갖고 다시 바라보라는 충고로 들렸다.
또 하나는 산장에 짐을 날라 준 뒤 차를 마시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에게 일이 힘들지 않냐고 산장 주인이 질문을 던진 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천천히 가면 돼요. 누가 기다려서 서둘러 갈 땐 지치는데..."
"자기의 페이스로 가면 괜찮구나."
순간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동안 누구를, 무엇을 의식하고 살아온 걸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포장할 이유도 없는데. 그저 묵묵히 내 길을 가면 되는데. 나만의 호흡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빨리, 완벽하게만 가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좋아하는 길도 각자 다르다.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착할 테고, 아주 틀린 방향만 아니라면 누군가와는 또 만나게 될 텐데 나는 왜 그다지도 조급해하고 초초해했던가.
동료들의 오사카 방문과 영화 감상을 통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빠르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행복이고, 그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남은 두 달 오사카 생활은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여정으로 여기며 이렇게 살려고 한다(물론 쉽지 않겠지만).
천천히, 서두르지 말 것, 주위를 신경 쓰거나 비교하지 말 것. 잘하려고 잘 보이려고 하지 말 것. 해야 할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우선할 것.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