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CJ ENM
사실 가족들은 안온한 삶을 누리던 애리조나에 정착하기를 바랐다. 늘 가족을 배려했던 버트였지만, 이번 만큼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이주를 강행했다. 아이러니하게 그 고집의 이유는 가족이었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그는 아내와 아들 새미 그리고 세 명의 딸에게 안정적인 삶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버트의 기대와 달리 캘리포니아로는 곪아있던 가족의 상처를 터트려버렸다. 아내 미치는 버니를 그리워하며 우울증에 걸렸고 새미는 새 학교에서 유대인이라고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애써 정신과 치료까지 받던 미치는 결국 가족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의 이혼과 왕따의 시련으로 방황하던 새미를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카메라'였다. 땡땡이의 날이라 부르는 졸업여행의 기록을 맡게 된 새미는 자신을 괴롭힌 두 친구 중 한 명은 빛나는 영웅으로, 다른 한 명은 한심한 진상으로 그려내며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이후, 전교생에게 공개된 영상은 대히트를 치지만 영웅과 진상으로 그려진 두 친구는 왜곡된 이미지로 그려진 자신들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놀란 새미. 이 사건을 계기로 감독이 사실을 뒤바꾸거나 새로운 상징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가 감동과 공포를 동시에 줄 수 있는 예술이라는 것도 함께.
세기의 거장이 내놓은 자전적 이야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새미는 아버지의 뜻대로 대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를 결정한다. 결국 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새미. 한참 후 그 결심은 <죠스> <쉰들러 리스트> <인디애나 존스> 그리고 <쥐라기 공원>이 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제 눈치를 챘으려나. 맞다. 새미 파벨만은 세기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더 파벨만스>는 그가 일흔여섯에 꺼내놓은 자전적 이야기다. 영화 속 인물과 에피소드는 대부분 사실에 가깝다. 예술을 사랑한 어머니와 천재 공학자 아버지 사이에서 겪었던 갈등과 유대인으로 차별받았던 아픔은 < ET >와 <쉰들러 리스트> 같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영화 속 버트 파벨만은 가족들의 합의 속에 아내를 버니에게 보내주지만, 스필버그의 아버지, 아놀드 스필버그는 가족들이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도록 자신이 이혼을 주도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15년 후에야 이 사실을 안 스필버그는 연락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를 만나, 그가 사망할 때까지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더 파벨만스> 속 부자 간 관계는 전후 미국 사회가 겪었던 세대 간 갈등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버트는 새미가 영화를 찍는 것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지만, 사실 취미 정도로 치부했다. 아마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 불확실한 예술의 세계보다 안정적인 관료와 직장인의 삶을 원했으리라.
새미는 가족을 캘리포니아로 데려온 아버지를 원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버트의 그 결정 덕분에 할리우드 문화를 체득하고 감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반문화의 기치를 걸고 기존 질서를 부정하던 보헤미안 운동 또한 사실 이전 세대가 이룬 물질적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더 파벨만스>는 당시 미국 사회와 보헤미안 문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관점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켜주고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프리츠 메이텍의 평행이론

▲앵커 포터
윤한샘
영화를 보는 도중, 머릿속에 이름 하나가 스쳐갔다. 프리츠 메이텍. 1965년 샌프란시스코 앵커 브루잉을 인수하며 크래프트 맥주의 신화가 된 인물이다. 아이오와주 출신인 그는 가전 업계 거물 '메이텍 일레트로닉'의 증손자로, 소위 금수저 집안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탁기 집 손자'라는 꼬리표를 거부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미국 문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 경영대학원 진학을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를 뒤로하고 다른 길을 모색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다름 아닌 맥주. 당시 중고차 한 대 값도 안 되는 5000달러에 폐업 직전이었던 앵커의 지분 51%를 매입한 뒤, 뜬금없이 양조장 경영을 시작한 것이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기존 질서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한 프리츠 메이텍은 전형적인 맥주 보헤미안이었다. 자신이 보유한 메이텍 일렉트로닉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현금으로 양조장을 유지하고 바닥부터 맥주를 배우며 맥주 운영에 온 힘을 쏟았다.
이런 노력으로 1974년 그가 선보인 맥주가 '앵커 포터'였다. 시장을 뒤덮고 있는 라거를 비웃듯, 사라진 영국 검은 에일, 포터를 부활시킨 것이다. 이후, 앵커는 1975년 '리버티 에일', 이듬해 '올드 포그 혼' 같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녀석들을 선보였다.

▲올드 포그 혼
윤한샘
'리버티 에일'은 영국IPA를, '올드 포그 혼'은 영국 발리 와인(barley wine)을 미국 홉, 캐스케이드를 넣어 재해석한 맥주들이었다. 두 맥주 모두 발효 후 홉을 넣는 드라이 호핑 방식을 사용해 캐스케이드가 가지고 있는 시트러스 향을 극대화시켰다. 기존 양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진보적인 스타일이었다.
사라진 영국 맥주에 미국 자생 홉으로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한 앵커 맥주들은 이후 잭 맥올리프, 캔 그로스맨, 짐 코흐처럼 젊고 열정적인 양조사에게 영감을 주었고, 뉴 알비온, 시에라 네바다, 보스턴 비어 컴퍼니 같은 크래프트 양조장이 설립되는 거대한 동기가 되었다.
앵커는 맥주가 술이라는 상식을 무너뜨리며 크래프트 맥주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했다. 내가 <더 파벨만스>를 보면서 프리츠 메이텍이 떠오른 이유도 여기 있다. 스필버그가 아버지가 사준 카메라로 영화적 성취를 이루었듯, 메이텍 역시 가문의 부를 발판 삼아 대중 맥주에 균열을 내는 크래프트 맥주를 빚어냈다.
두 사람 모두 거대 자본과 기술적 토대를 마련해 준 '아버지의 질서' 위에서 성장했으나, 안락한 길을 거부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보헤미안적 반란을 꾀했다. 그리고 자신의 지평선을 결코 가운데 두지 않았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부활을 꿈꾸며, 거꾸로 걸린 깃발
▲리버티 에일
윤한샘
영화에서 새미는 대학을 중퇴한 뒤 존 포드를 만나지만, 스필버그는 이미 열다섯 살에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자신이 동경하던 감독을 만난 후, 거대한 스튜디오 사이를 밝게 걸어가는 새미. 영화는 그의 뒷모습을 담던 카메라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지평선을 화면 아래로 내린 채 마무리된다.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그가 지평선을 가운데 두지 말라는 존 포드의 조언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앵커는 그렇지 못했다. 스필버그와 메이텍 사이를 잇던 평행이론은 2017년 삿포로가 앵커를 인수하면서 깨지고 만다.
앵커를 수중에 넣은 삿포로는 2021년, 로고를 현대적으로 바꾸고 맥주 향미에 대중성을 높였다. 지평선을 가운데로 끌어온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안타까운 일이었다.
팬들은 극렬하게 반발했고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자 삿포로는 누적된 적자를 빌미로 2023년, 미련 없이 앵커의 문을 닫아버렸다. 자본의 옷에 크래프트의 지평선을 억지로 맞춘 결과였다.
1975년 태어난 <죠스>와 '리버티 에일'. <죠스>는 지금이라도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리버티 에일'은 더 이상 마시기 힘든 맥주가 되었다. 앵커의 카메라가 지평선 밑으로 떨어질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샌프란시스코 앵커 양조장에는 부활을 바라며 거꾸로 걸려있는 깃발이 여전히 펄럭이고 있다.
사라지지 말아야 할 고집을 기억하며. 꿈, 예술, 보헤미안, 크래프트 그리고 앵커를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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